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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91] 멜로디 없는 노래 〈추억 속의 당신〉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18 07:19:12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 -91](허동철편7)

허동철: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애창의 리유가 "고생끝에 락을 보신 우리의 어머니"라는 구절이 있었기에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동북 3성 음악회에서 창작 1등상을 받았고 전국 민족단결 가요 응모에서 3등상을 받았으니 작사가로서의 면목은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이 노래가 서안교통대학 교정가요 10수,〈인민일보〉에서 선정한 ‘새시기 금곡예선곡 100수’또 《중국례의경전대전》(中国礼仪庆典大全)에도 올랐으니 정말 생각 밖이였습니다.

가사 창작에 정진하고 있는 허동철 작사가.

이 《중국례의경전대전》에는 세계명곡들인 〈생일 축하합니다〉, 〈올림픽행진곡〉, 〈국제가〉, 〈국가〉, 〈중국인민해방군군가〉등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끼여 있었으니 더욱 놀랐지요. 그리고 《중국례의경전대전》책가위에는‘중국고전 10대 명곡’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중국례의경전대전》의 곡을 쭉 배렬한 가운데 제일 첫 곡과 두번째 곡이 중국의 유명가수 염유문(阎维文)이 부른 〈오래오래 앉으세요〉(祝妈妈长寿)였습니다. 이 두 곡은 반주가 서로 달랐을 뿐입니다.

《중국례의경전대전》에 오른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이렇게 앞자리에 나란히 배치된 것을 보고 한참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저 스스로 결론을 내렸는데 이 편집의 지도사상이 바로 사람을 근본(以人为本)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어머니가 이 세상을 낳았다는 편집지도사상이 있었기에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앞자리에 놓았다고 나름대로 생각하였습니다. 꼭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2001년에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20세기 경전작품집 《세기민족의 노래》에 입선되여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국가민족사무위원회, 국가라지오텔레비죤방송총국이 공동으로 발급한 ‘영예증서'를 받았습니다. 이 영예증서에는 "허동철 작사, 방룡철 작곡, 한동오 번역으로 된 조선족가요 〈오래오래 앉으세요〉가‘세기 민족의 노래’(世纪民族之歌)에 입선되였으므로 이를 축하하여 증서를 발급함"이라고 썼습니다. 이 노래가 이렇게 널리 퍼지고 국가로부터 대우를 받게 되였습니다.

중국당대예술계 명인록에 오른 허동철.

“사람이나 작품이 이름이 나는 것은 7분의 성적에 3분은 불어댔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싶이 저의 이 노래도 여러 매체에서, 14억의 중화 여러 민족들이 함께 나팔수가 되였기에 이렇게 이름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최고의 가수 염유문과 같은 유명가수들이 불러 대중화를 하였습니다. ‘빠이두'(百度)검색사이트에만도 〈오래오래 앉으세요〉검색어가 독창, 2인창, 제창, 독무, 쌍무, 사교무, 광장무, 하모니카독주, 피아노독주, 후르쓰합주, 로인생일파티, 환갑연 등에 씌인 수자가 도합 1만 9200개를 웃돕니다.

그러니 유럽에서까지도 중국에서 왜 〈오래오래 앉으세요〉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가를 연구한다고 연변대학예술학원 리정교수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중국조선족가요백년사’프로에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이 정도로 영향력이 미치자 저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것을 또 한번 절실하게 느끼게 되였습니다.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정성스레 부르고 있는 중국 최고의 가수 염유문(영상자료 사진).

이 노래가 장장 40년간 줄곧 인민대중들 속에서 애창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고생끝에 락을 보신 우리의 어머니"라는 구절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리정교수는 “이 노래는 울음보따리를 헤쳐놓은 슬픔의 소리이기도 하고 어깨춤이 절로 나오도록 흥을 돋구는 웃음보따리이기도 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난 노래모델인 장모님도, 이웃의 어머님도, 은사님도 다 눈물을 흘렸다고 앞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리정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기도 하고 슬픔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그럼 왜 슬픔의 노래이기도 한 것일가요? 바로 이 "고생"에는 지난날 고달프게 살아 온 우리 선조들의 고난사도 담겨있고 일제의 철제밑에 강토를 짓밟힌 우리 민족의 수난사도 비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민족 문화유산의 뿌리인 민요, 대표적인 민요-〈아리랑〉의 해설사를 보고나서 “일제의 통치밑에 억눌렸던 우리 민족의 감정과 분노가 이 노래에 얹혀 호소되였던 까닭에 끊임없이 흘러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넘어서 널리 불려지게 되였다.”고 한 말의 뜻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였던 것입니다.

 장백산에 올라 성스러운 기운을 만긱하고 있는 허동철.

저와 방룡철선생의 합작을 두고 원 연변작가협회 최국철 주석은 "황금파트너"(黄金搭档)라고 하더군요.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 둘이 합작한 노래는 《방룡철작곡집》에 들어간 것 만도 32수나 됩니다. 그리고 둘이 합작한 노래 중 거의 20수나 히트를 치고 상을 받았습니다.  합작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서로 궁합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방룡철선생은 곡만 잘 짓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 대한 감수도 남다릅니다. 가사를 척 보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당장에서 지적합니다. 기실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에서 가사 "나풀 춤을 춥니다"가 원래는 "노래를 부릅니다"로 된 것을 방룡철선생님이 제기하여 고친 것입니다. 

저도 노래가락에 좀 민감하고 곡에 대해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습니다. 노래를 한번 들으면 좋고 나쁨에 대해 여느 작사자보다 좀 괜찮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방룡철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써달라고 하면 금방 그 자리에서 고칩니다. 절대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방룡철선생님과 합작하게 된 것입니다.

원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서기로 계셨고 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으로 사업하셨던 리덕수 서기께서는 “노래 〈오래오래 앉으세요〉는 자애, 인의, 효심의 정신적 경지를 펼쳐낸 경전으로서 연변을 빛내고 조선족을 광채롭게 하였다. 이는 허동철선생과 방룡철선생의 영광일뿐만 아니라 조선족의 자랑이기도 하다.”(2017년 필자에게 보낸 서한)고 고무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수십년간 선후로 방송, 신문 문화사업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과외로는 수필, 시(동요) 같은 문학작품도, 번역도서(두권)도 냈지만 그래도 가사 창작과 번역의 외길만 걸어 왔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1954년 고성소학교 제1회졸업기념(뒤줄 좌로 9번째 허동철).

저는 어릴 때부터 동요를 사랑했고 음악에 대해, 노래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학교때부터 하모니카도 불었고 중학교때에는 피리도 불고 기타도 쳤습니다. "고개고개 고개길 학교 가는 길…" 하는 〈학교로 가요〉, ‘해볕은 쨍쨍 호랑나비 훨훨…’하는 〈꽃동산〉과 같은 동요를 즐겨 부르면서 문학의 정서와 기량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북경 민족대학을 나온 후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에서 사업하면서 전문 가사를 취급하게 되였는데 한문노래며 외국민요, 고전가요도 전문 번역하고 지방가사를 전문 편집하기도 하고 과외로 가사창작도 하였습니다. 그럼 무엇때문에 가사를 전문 편집하고 가사를 창작하는 이 외길만 걸었을가요?

조선족은 춤 잘 추고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 소문났고 연변은 그래서‘가무지향'으로 불리웠습니다. 조선족은 이런 민족적 특징이 있는데다 또 노래는 주로 방송으로 살아나지 않습니까? 방송에 의해 전파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는 방송국의 편집으로서 이 우세를 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노래는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기타 민족들과도, 더 많은 세상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아주 유력하고 간편하고 빠른 예술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가사는 비록 다른 문학쟝르보다 짧고 간단하지만 고도로 함축된 그 힘, 곡의 도움까지 받아 발하는 그 힘은 그 무엇으로도 비길 수 없다는 것을 저는 노래를 들으면서 느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저명한 작곡가 정률성이 지은 "전진 전진 전진 우리의 대오는 태양 따라 조국대지를 누빈다"로 시작된 〈팔로군행진곡〉, 이 노래가 중국 팔로군에게, 우리 인민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습니까. 또 지금도 얼마나 큰 힘을 주고 있습니까. 몇천발의 폭탄, 총알이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이 노래의 힘은 그 무엇도, 이 가사의 힘은 다른 그 어떤 문학쟝르도 대체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제가 가사의 외길만 걷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가수 밥딜렌이 지은 〈바람이 불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밥딜렌은 가수로서 노벨상을 탄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면〉이라는 이 가사로 몇년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사의 힘은, 비록 짧은 것이지만, 비록 간단한 것이지만 그 무엇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적성에도 맞는 이 가사 번역, 가사창작의 외길만 걸어온 것을 아주 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작사자는 작곡가와 합작해야 하고 편곡자와도 합작해야 하고 가수와도 합작해야 하는데 저는 이젠 퇴직했으니 조건이 여의치 못합니다. 그래도 저는 가사창작 외길을 멈춘 것이 아니라 그냥 가고 있는데 ‘멜로디 없는 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멜로디 없는 노래’가운데 올림픽주제-세계평화를 주제로 한 〈작은 뽈이 큰 지구를 흔든다〉(小球振动地球)와 중국의 두개 100년 목표를 주제로 한 〈부흥호렬차는 달린다〉등이 있습니다. 그중 〈추억속의 당신〉이라는 주덕해동지를 노래한 가사도 있습니다.

허동철 작사가가 가장 우러르는 주덕해동지의 영상.

지난 2002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대중가요응모에 참가하기 위해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작곡한 방룡철선생님의 장남이며 연변대학예술학원에서 작곡리론을 가르치고 있는 방권일선생을 몇십년 만에 찾아가 〈한 삼백년 살아볼가 한 오백년 살아볼가〉라는 노래를 합작하게 되였습니다. 그 때 방권일 교수가 하는 말이 연극 《주덕해》를 보았는데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며 주덕해를 노래하는 가사를 써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쓴 가사가 〈추억 속의 당신〉입니다. 이 가사는 독창, 합창, 랑송이 어우러질 수 있는 교성곡 가사입니다.

해란강아 말하라

장백산아 화답하라

선조들이 개척한 이 땅

저 서산마루에

배움의 전당 우뚝 세워놓고

변강건설의 재목을

조국건설의 기둥감을

그 많이 길러 낸 이가

그 누구인가를

 

사과배 주렁진 만무과원아

벼파도 설레는 평강벌아

너도 말하라

너도 화답하라

두렁길에 력력한 그 발자국

남긴 이가 그 누구인가를

 

세월의 모진 풍랑 헤치며

힘겹게 다녀온 당신

민족자치기발을 추켜들고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한 당신

만민의 가슴속에

길이길이 살아있으라

“문화가 없는 민족은 장래가 없다”고 한 주덕해동지는 1949년에 몸소 연변대학 터전의 첫삽을 뜨고 제1임 교장으로 되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그의 문화교육면에서의 업적의 하나로 삼았습니다.

그 다음 연변의 사과배를 우리 민족의 과일로, 연변을 ‘사과배의 고향'으로 불리우게 한 것을 주덕해동지의 또 하나의 업적으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주덕해동지는 50년대에 화룡 서성향 명암촌의 최일선 원예사를 여러번 찾아갑니다. 고기붙이며 사탕과자를 가지고 가족들도 거느리고 함께 찾아가 최일선과 친구로 사귑니다. 그러면서 그더러 사과배묘목 5만그루를 키워 룡정과수원을 만무과원으로 만드는데 공헌하도록 합니다.

주덕해동지의 기념비 앞에서.

저는 주덕해동지의 문화교육면에서의 업적, 경제건설에서의 업적, 파란만장한 혁명력사 이 세가지를 소재로 가사를 썼습니다. 방권일선생은 가사가 마음에 든다고까지 했는데 북경음악학원으로 박사공부를 떠났고 또 박사공부를 마친 그 길로 부랴부랴 안휘사범대학 예술학원으로 떠나는 바람에 합작이 중단되였습니다.

여건은 여의치 않지만 이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돐에 즈음하여 멜로디 없는 노래 〈추억 속의 당신〉을 아름다운 멜로디에 실어 연변의 9월 푸르른 창공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도록 나름대로 힘써 보겠습니다.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하늘과 남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 이 세가지를 “인생 3락”(人生3乐) 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이 세가지 락중 마지막 한락이라도 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허락하는 때까지‘멜로디 없는 노래’라도 그냥 짓는 한편 우리 민족 최고 학부의 대학강당에라도 올라 학생들에게 창작담도 들려 주면서 우리 민족 가요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영재들을 키워내고 싶은 것이 저의 간곡한 소원이자 꿈입니다! (끝)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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