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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00년](1) 령도력이 발전한 력사과정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18 10:40:28 ] 클릭: [ ]

령도과학에 대한 연구는 조직의 발전과 령도력의 제고가 반드시 동시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조직의 규모 증대는 령도력도 따라서 제고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조직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강대한 령도력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 중국공산당이 탄생 시에는 규모가 아주 작았지만 점차 장대할 수 있었던 관건은 그의 강대한 령도력에 있었다.

1. 대혁명시기: 령도력의 발인(发轫)단계

중국공산당의 출현은 근대 이래 중국의 사회 진보와 혁명 발전의 객관적인 수요이다. 중국공산당의 성공은 설립 초기에 이미 과학성과 강대한 령도력을 갖춘 데서 비롯됐다. 이 시기에 시작 단계에 처한 중국공산당의 령도력은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면에서 나타났다.

맑스주의의 류입으로 중국공산당은 리론 무기를 장악하고 리론 인도를 갖추게 되였다. 1919년 5.4운동 이후에 맑스주의가 국내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전파됨에 따라 한패의 조기 맑스주의 신앙자와 전파자들이 생겨나면서 맑스주의와 중국 로동운동의 결합을 추진시켰다. 맑스가 말했 듯이 “비판의 무기는 당연히 무기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고 물질 력량도 물질 력량으로야만이 짓부실 수 있다. 하지만 리론이 군중을 장악하게 되면 물질 력량으로 변할 수도 있다.” 모택동동지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인들은 맑스—레닌주의를 터득한 후에 정신상에서 피동으로부터 주동에로 전변했다.”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맑스주의 리론을 지도로 하여 창립된 홍군과 농촌근거지의 투쟁은 충분한 긍정을 받았으며 ‘중국 혁명운동은 이때로부터 정확한 리론기초가 생겼다.’ 맑스주의 리론은 중국 혁명의 실제와 결합하여 초보적으로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의 강대한 령도력의 리론적 무기로 되였다.

공산주의가 지향하는 미래와 민족 독립, 인민 해방의 위대한 사명은 중국공산당이 일찍 미래를 지향하는 단계에 들어서도록 했다. 령도과학 연구자들은 령도력은 바로 모두를 동원하여 공동한 념원을 위해 분투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예술이라고 지적했다. 1921년 중국공산당의 설립 초기, 바로 당의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분투목표로 하며 민족 독립, 인민 해방을 실현하는 것을 위대한 사명으로 한다고 제기했다. 공동한 념원의 지도 아래, 세개의 높은 산을 뒤엎고 토호를 타도하고 밭을 나누었으며 해방되여 주인이 되는 등 사회혁명의 리념이 신속히 광범한 공동인식으로 되였고 중국공산당이 강대한 호소력과 영향력을 갖추게 했다.

인민군중에 의거하는 것은 당의 령도력이 지구적으로 힘을 얻게 하는 원천이다. 중공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강령을 통과하여 로동자, 농민과 병사들을 조직하여 사회혁명을 실행하고 무산계급독재를 건립하자고 명확히 지적했다. 중공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한 〈공산당의 조직 규약에 관한 결의안〉에는 ‘당의 일체 운동은 반드시 군중 속에 심입하여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중공 제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한 〈농민운동에 대한 결의안〉에서도 중국 민족혁명에서의 농민의 중요한 지위를 강조했는바 중국 혁명은 농민과 결합해야 하고 농민은 민주혁명의 중요한 력량이라고 했다. 중공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한 〈정치결의안〉은 당의 총로선은 군중을 쟁취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로부터 볼 수 있다싶이 중국공산당은 시작 단계에 이미 로동자, 농민을 대표로 하는 광범한 인민군중이야말로 당의 력량의 중요한 원천이기에 반드시 광범한 인민군중을 단결하고 더욱 많은 충실한 추종자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당의 건설을 강화하여 당의 령도력을 부단히 다졌다. 중국공산당은 설립 시에 자신의 건설을 매우 중시했다. 중공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채택한 중국공산당 강령은 바로 당의 건설을 강화하는 것을 중대한 문제로 삼고 강조했다. 중공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의 창건사업을 원만히 완수했다. 중공 제3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의 자신 건설을 강화하는 면에서 일련의 중요한 규정을 하여 당의 여러 가지 제도를 진일보로 보완했다. 중공 제4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의 사업 중점을 당 자신의 조직건설로 바꾸었다. 중공 제5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의 조직건설에서는 많은 혁신성과를 거두었는데 처음으로 당의‘지도원칙은 민주집중제'라고 제기한 것 등이 포함된다. 중공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의 조직건설의 주요 임무를 명확히 했다. 이로부터 중국공산당이 대혁명시기에 시종 당의 자신건설을 중시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의 령도력의 지속적인 발전에 튼튼한 조직적 보장을 제공했다.

그 외에도 대혁명시기에 중국공산당의 령도력은 공산국제와의 련계를 강화하고 제일 광범한 통일전선을 쟁취하며 민주혁명의 령도권을 쟁취하자고 명확히 제기한 등 면에서도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초창기 이 정당의 령도력의 모형을 이루었으며 나중에 령도력이 부단히 강화되는 데에도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2. 연안시기: 령도력의 형성 단계

중국공산당의 령도력은 연안시기에 초보적으로 발전, 형성되였다. 이 시기의 령도력 발전과 형성의 표지성 사건은 중공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모택동사상을 당의 지도사상으로 삼은 것인데 당은 스스로의 리론 터전이 생겼다. 선거를 거쳐 모택동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앙 령도집체가 산생되였고 당중앙 령도의 견강함과 유력함을 확보했다. 이는 전 당이 계속하여 분투하는 데 전진방향을 가리켜주었고 정치상, 사상상, 조직상에서 심후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당의 정치로선을 확정함에 따라 당이 령도하는 전진방향이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되도록 했다. 중공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의 정치로선을 확정했다. 즉 ‘군중을 발동하고 인민력량을 장대시키며 우리 당의 령도 아래 일본침략자를 물리치고 전국 인민을 해방하여 신민주주의 중국을 건립하는 것'이였다. 이로써 전 당, 전국 인민의 분투목표와 목표를 실현하는 길을 천명했으며 아울러 당의 령도는 혁명에서 승리를 거두는 관건임을 천명했다.

실사구시한 사상로선을 확립하고 당이 령도하는 사상방법, 사업방법을 형성했다. 1938년, 모택동은 연안에서 처음으로 ‘공산당원은 반드시 실사구시의 모범이 되여야 한다'고 제기했다. 중공 제7차 전국대표대회는 ‘실사구시'를 당의 기본로선으로 확정했는데 이는 당에서 정확한 정치로선을 제정하고 관철, 집행하는 사상기초로 되였으며 동시에 당의 사상작풍 건설을 강화하고 령도능력을 제고하는 중요한 내용으로 되였다.

3대 법보를 총화하여 당의 호소력, 영향력과 전투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도록 했다. 1939년, 모택동동지는 〈‘공산당원’발간사〉에서 ‘18년 동안의 경험은 우리더러 전선을 통일하고 투쟁으로 무장하는 데서 당의 건설은 중국공산당이 중국 혁명에서 적을 전승하는 3대 법보이고 세개 주요한 법보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위대한 성적이며 중국 혁명의 위대한 성적이다.'고 지적했다. 3대 법보의 경험총화와 전승은 당시의 혁명형세에서 중국공산당의 령도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무기를 형성했고 중국공산당이 후날에 옹근 혁명을 령도하는 행정에서 중대한 실천적인 지도적 의의가 있다.

3대 작풍을 형성하여 당의 정신풍모를 제고시켰으며 당의 정신력량을 강화했다. 1945년, 모택동동지는 중공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련합정부를 론함〉이라는 정치보고를 했는데 당의 3대 우량한 사업작풍을 정식으로 제기했다. ‘맑스—레닌주의를 리론사상으로 하여 무장된 중국공산당은 중국인민 속에서 새로운 사업작풍을 산생했는데 이는 주로 리론과 실천이 서로 결합된 작풍, 인민군중과 긴밀히 련계하는 작풍 및 자기비판하는 작풍이다.’ 이로써 당의 령도활동의 전개와 완성에 과학적인 리론지도가 생겼고 광범한 군중토대가 생겼으며 자기수정과 혁신능력이 생겼고 당의 령도효능이 눈에 띄는 제고를 가져왔다.

연성권력의 영향력을 중시했으며 령도방법을 더 중시했다. 이 시기에 중국공산당은 령도권의 취득과 유지에서 "권력에만 의거하지 않고 위신, 의지력, 풍부한 경험, 다방면적인 사업 및 탁월한 재능에 의거해야 한다"고 예민하게 의식했다. 1940년 3월, 모택동은 “이른바 령도권은 하루종일 구호만 웨치거나 억지다짐으로 타인을 우리에게 복종하게끔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정확한 정책과 자신의 모범적인 사업으로 당외인사들을 설복, 교육하여 그들이 우리의 건의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연안시기에 당은 연성권력을 발휘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대대적으로 제고시켰다. 물론 그때에도 당은 마찬가지로 과학적인 령도방법을 운행하는 것을 중시했다. 즉 일반과 개별이 서로 결합하고 지도자와 군중이 서로 결합하는 령도방법이다. 하여 당의 령도의 과학화 수준이 더욱더 높아졌다.

3. 사회주의혁명 건설시기: 령도력 강화단계

1949년, 중국공산당은 중국인민을 이끌고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시기에 들어섰다. 당이 직면한 임무도 근본적인 전변을 가져왔는바 당의 령도실천은 새로운 국면에 직면했다. 당의 령도력은 새로운 실천, 탐색과정에서 재차 앞으로 추진되였다.

혁명당에서 집정당으로 전변되는 관건적인 절점에서 전략적 분명과 전략적 정력을 유지했다. 중공 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모택동은 전국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만리장정의 첫 발자국을 내디딘 것에 불과한바 이 승리를 공고히 하려면 더욱 기나긴 시간과 더욱 큰 기력이 있어야 되기에 전 당 동지들은 반드시‘두가지 반드시'를 잘 지켜야 한다고 전 당에 귀띰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중국공산당은 혁명당에서 집정당으로 전변하는 관건적인 전환점에서 명확한 전략적 정력을 유지했다. 당내에서 정신이 해이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택동은 당내의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귀띰했다. 우리는 ‘수도에 시험치러 가는’마음가짐으로 위대한 력사적 전변의 고험을 받아야 하는바 수도에 가서 시험에서 합격하여 전국 인민의 지지와 옹호를 받음으로써 당이 진정으로 부끄럽지 않은 령도자로 되여 중국공산당의 명확한 자기인지를 재차 반영하는 동시에 아주 강한 변혁 령도력도 과시해야 한다.

당의 기풍을 바로 잡는 것으로 당의 자신 건설을 강화하고 당이 중국 인민의 령도 핵심으로 되도록 확보했다. 새중국이 설립된 후 당조직은 신속하게 발전하였지만 혁명년대에 형성되고 유지해온 우량한 전통이 집정조건하에서 매우 큰 도전을 받았다. 이에 대비해 1950년에 중공중앙은 통지를 발부하여 전 당, 전 군에서 정풍운동을 전개하여 전 당의 작풍을 엄격히 정돈할 것을 요구했다. 1951년에는 또 계획적이고 질서있게 정풍을 시작하였고 전국에서 세가지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당정기관의 청렴을 견지하고 탐오랑비를 반대하였는바 당과 인민군중의 피와 살로 이어진 련계가 새로운 력사적 조건에서 공고해지고 강화되였다. 당의 위신이 전에 없이 높아졌고 진정으로 중국인민의 령도핵심으로 되였다. 동시에 당내 교육의 상태화, 당과 국가에 대한 감찰감독의 규범화, 당의 령도 체제기제의 건립 보완, 민주당파와 협력하고 함께 일하는 관계의 확립 등은 당의 령도력에 대한 강화에 중대하고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국내의 주요 모순과 임무에 대한 새로운 판단은 당의 령도력의 제고에 방향이 더욱 명확하게 했다. 중공 제8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국가 정치생활의 주요 임무, 국내 주요 모순과 주요 임무, 사회주의 사상문화건설의 방침 등에 대해 계통적인 분석, 연구판단을 했으며 각기 상응한 론단을 제기했다. 전 당의 공통인식을 모으고 전 당의 력량을 집중하여 생산력과 사회주의 새 문화를 건설하는 데 중대한 지도적 의의가 있는바 당의 령도력이 더욱 정밀하고 고효률적으로 방출되도록 했다.‘문화대혁명'으로 당의 령도력이 재차 고험을 받았는데 후에 제때에 반성하고 교훈을 섭취함으로써 당의 자기수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역시 당의 령도력에서의 보귀한 구성부분이다.

4. 개혁개방시대: 령도력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단계

1978년 당중앙 11기 3차 전원회의 이후, 등소평동지는 ‘자신의 길을 걸어 중국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를 건설하자'고 제기했다. 당의 사업 중심은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현대화건설로 전이되였다. 개혁개방의 새 형세, 새 임무 및 나타나는 새 문제에 직면하여 등소평동지는 1980년 1월에 처음으로 ‘당의 령도를 견지하기 위해 반드시 당의 령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중대한 명제를 제기하고 “당의 령도를 어떻게 개선하는가 하는 이 중대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는다면 당의 령도를 견지할 수 없고 당의 위신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하여 지적했다.

당중앙 13차 전국대표대회 보고는 ‘세번에 나누어 가는’발전 전략을 제기했는데 전략목표를 제정하고 분해하는 면에서의 중국공산당의 령도력을 보여주었다. 개혁개방 초기, 당의 령도력 건설의 핵심주제는 반드시 당의 령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거듭 천명하는 것으로서 당의 령도를 강화하고 보완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당의 령도력을 진일보 강화시켰으며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근본적인 정치적 보장을 제공했다.

1989년 당중앙 13기 3차 전원회의 이후, 강택민동지를 주요 대표로 하는 중국공산당원들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이 갖다준 심각한 변화에 대비해 과단하게‘어떠한 당을 건설하고 당을 어떻게 건설하는가 하는 이 중대한 현실적인 문제는 당과 국가의 전도, 운명에 관계된다’고 제기했다. 이 시기, 당의 건설은‘새로운 위대한 공정'의 높이에로 승격했으며 ‘추호의 소홀함도 없이 당의 령도를 강화하고 개선하여 당의 건설이라는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전면적으로 추진했다.’이 토대우에서 당의 건설의 총목표를 제기했다. 즉 ‘우리 당이 세계적으로 형세가 심각하게 변화하는 력사 행정에서 시종 시대의 앞에서 달리게 하고 국내외의 여러 가지 모험, 고험에 대비하는 력사 행정에서 시종 전국 인민의 주력군으로 되게 해야 하며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력사 행정에서 시종 견강한 령도핵심으로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련의 중요한 주장과 관건적인 조치들은 당의 령도력을 강화하는 데서 중요한 추진역할을 놀았다.

당중앙 16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호금도동지를 주요 대표로 하는 중국공산당원들은 개혁개방을 심화하는 단계에서 당의 령도력을 강화하는 면에서 심입된 탐색을 했다. 이 시기의 기본 판단은 심각하게 변화하는 국내외 형세하에서 당은 집정 고험, 개혁개방 고험, 시장경제 고험에 직면했으며 이 세가지 고험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복잡하고 준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비해 당의 집정능력 건설 강화와 당의 건설을 제고하는 과학화 수준 등 두가지 면에서 당의 령도력을 제고시키고 당의 집정능력 건설, 선진성과 순결성 건설을 당건설의 주선으로 삼았다. 이로 하여 당건설의 과학화 수준이 진일보로 제고되고 맑스주의 집정당 건설 규률에 대한 인식과 파악이 더욱 심화되였고 당의 령도력이 진일보로 되는 강화를 가져왔다.

5. 새시대에 진입하여 령도력이 현저하게 제고되고 보완된 단계

당중앙 18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습근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은 전면적으로 엄하게 당을 다스리는 새 경지를 개척하고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을 형성했다. 이를 지도로 하여 당의 령도를 견지하고 강화하는 실천에서 진일보로 되는 심화를 가져왔으며 당의 령도력은 진일보로 탄탄해지고 현저하게 제고되였다.

2013년, 습근평 총서기는 무한에서 부분적 성, 시 책임자 좌담회를 소집하고 “개혁개방 임무가 무거워질수록 당의 령도를 더더욱 강화하고 보완해야 하며 당의 령도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업의 견강한 령도핵심임을 더더욱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중앙 19차 전국대표대회 보고는 중국공산당의 령도는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고 중국특색 사회주의 제도의 가장 큰 우점이라고 명확히 지적했다. 이 과학적인 론증은 당의 령도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업을 긴밀히 결합시켰는바 중국특색 사회주의 실천에 대한 새로운 승격이다. 그후 이 론단은 당규약에 기입되여 당의 전면적인 령도가 법치궤도에서 견강하고 유력하게 실시되도록 보장했으며 새시대에 당의 령도력을 강화하는 법리준칙으로 되였다.

당의 령도력의 현저한 제고는 당과 국가 정치체계에서의 기타 정치력량간의 관계를 진일보로 명확히 했다. 19차 전국대표대회 보고는 당이 최고 정치 령도력량이기에 일체 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중국공산당의 ‘령도'의 확고한 핵심지위를 진일보로 강화했다. 그와 동시에 습근평 총서기는 당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 령도를 견지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차례 론술했으며 전 당이 핵심의식과 일제히 보는 의식을 강화하고 마음속에 당을 품고 당성 립장과 정치 의식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 외에도 당이 령도를 견지하는 체제기제를 보완하고 당의 령도의 전면 보급을 확보하며 당의 령도가 견강하고 유력하도록 하는 데서 체현된다. 례를 들면 당중앙 19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당과 국가기구 개혁을 심화하는 것을 통해 계통이 완벽하고 과학적이고 규범적이며 고효률적으로 운행되는 당과 국가기구 직능체계를 구축한다고 제기했다. 그중에는 전반 국면을 총괄하고 각측을 협조하는 당의 령도체계 등이 포함된다. 당의 령도 체계기제를 건립하고 보완하며 국가 치리체계와 치리능력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로써 당의 령도에 더욱 명석한 도경 선택과 제도 보장이 생겼다.

이 시기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당은 자신이 강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당의 령도와 당의 건설을 긴밀히 련계시키고 새시대 당의 건설 총목표를 명확히 했다. 정치건설을 통솔로 하고 당내 정치생활을 규범화하며 깨끗하고 공정한 정치생태를 구축하며 민주집중제의 여러 가지 제도를 보완하고 락착하며 지도간부의 정치능력 제고를 중시함으로써 당의 령도력 건설과 정확한 방향을 확보하였으며 당의 령도력이 더욱 고효률적으로 방출되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으로 전 당을 무장하고 소질이 높은 전업화된 간부대오를 건설하고 기층조직 건설을 강화하고 집정능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등 조치들은 당을 더욱 견강하고 유력하게 했으며 당의 령도력 또한 더욱 증강되였다.

/출처: 학습강국, 번역: 유경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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