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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118] 이야기대왕 황구연로인과 김재권(박용일편3)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3-10 11:22:37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18](박용일편3)

오늘은 우리들이 다 잘 알고 있는 중국 3대 이야기대왕 중의 한 사람인 황구연로인과 그의 이야기를 수집 정리하여 전집을 펴낸 김재권선생님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야기왕 황구연로인은 1909년 2월 27일 조선 경기도 양주군 은하면 도하리의 한 선비의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이야기대왕 황구연로인

황구연로인은 조선왕조초기 정승이였던 황희의 22대 손으로서 다섯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슬하에서 천자문을 배웠고 일곱살에 서당에 들어가 소학, 대학, 론어, 맹자, 주역, 춘추 등 책을 다 읽었습니다.

황구연이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논뚝 길을 걷다가 인기척에 놀라 물에 뛰여드는 개구리를 보고 “저 개구리들이 네가 오니 무서워서 물에 뛰여드는구나”라고 하자 황구연은 고개를 저으면서 “할아버지 아니예요. 발가벗은 개구리들이 나를 보고 부끄러워 물속에 숨는거예요.”라고 대답하여 할아버지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릴때부터 총명한 황구연로인은 10년동안 서당에서 공부를 하면서 훈장한테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민담구술가로 성장하는데 기초를 닦았습니다. 그러다가 1927년에 서울중등농업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다가 1937년에 중국에 와서 다시 측량학교에 입학하여 계속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투도구파출소에서 파출소에 나와 일해 달라고 하자 그는 그 일을 피해 조선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되자 다시 룡수평으로 돌아왔다가 결국에는 흑룡강성 한 농장의 기술원으로 가 일하게 되였습니다.

황구연의 옛 가족사진

그 후 1961년에 재차 연길현 팔도구 룡수촌에 와 자리를 잡고 살게 되였습니다. 황구연로인은 그 사이 중학교, 대학교 등 여러 곳에서 력사교원으로, 농업교원으로 초빙하였으나 모두 거절하고 농사일에 종사하면서 마을의 이상 어른들을 선생으로 모시고 생활세태담과 많은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구비문학 령역에서의 안광을 더욱 넓혀갔습니다.

황구연로인의 능력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당시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 겸 룡정시문련 주석으로 사업하던 김재권선생입니다.

김재권선생은 당시 민간문예유산을 수집정리 하려고 여러 곳으로 조사를 다니던 중에 팔도 룡수평에 옛말을 잘하는 황구연로인이 있다는 소식을 녀동생한테서 우연히 듣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황구연로인은 한시기 잡귀신으로 몰리면서 투쟁을 받은 후부터는 절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였습니다. 하여 김재권선생은 황구연로인 앞에서 먼저 단군 시조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의 임금들을 간추려 말하면서 선인들이 남겨놓은 력사이야기와 명인들의 이야기를 후대들에게 길이길이 전해줄 필요성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황구연 구술 민담집들

그러자 황구연로인은 겸손하게 “초야에 묻혀 있는 늙은이가 무엇을 안다고 그럽니까?”라고 하면서 옛말주머니를 푸는 것이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옛말을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 옛말을 귀담아 듣고 보면 그 속에는 인간을 깨우쳐 주는 도리가 아주 많은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귀중한 구비문학재부이지요. 이제 이 늙은 것이 그 옛말을 머리 속에 두었다가 관속으로 가지고 가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올방자를 틀고 앉아서 옛말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막혔던 보뚝이 터진듯이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오고 또 어찌나 구수하게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깜짝깜짝 놀라게 하였지요.

그 때로부터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지도부 성원들인 정길운, 박찬구, 김태갑, 박창묵, 김재권 등이 선후로 황구연로인을 26차 방문하였는데 무려 5년동안 천여컬레의 이야기를 수집하였습니다.

황구연로인한테서 옛말을 귀담아 듣고 있는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지도부성원들.

황구연로인이 구술한 이야기는 정리되여 선후로 연변일보, 흑룡강신문,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청년생활, 송화강, 예술세계 등 조선말 잡지와 신문 그리고 한어문 잡지들인 산서민간문학, 하북민담, 중국민담 등을 포함하여 30여가지 신문잡지와 방송, 텔레비 등 매체에 200여컬레 발표되였습니다.

1986년에는 《천생배필》, 《파경노》, 《황구연이야기집》 등 책이 출판되였고 황구연로인은 길림성, 연변주 민간문예가협회로부터 《민담표현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중국민간문예가협회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12월에 황구연로인은 79세를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고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황구연로인이 남겨놓은 주옥같은 이야기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수집정리되였습니다. 특히 김재권선생은 박창묵, 황상박 등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1070컬레의 황구연로인의 이야기를 수집정리하여 10권으로 된 《황구연전집》을 출판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조선족민간이야기를 후세에 남기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구술자 황구연 로인과 수집정리자 김재권선생(왼쪽)

아래에 조선족민간이야기 수집과 정리에 공헌이 많은 김재권선생님을 간단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김재권선생님은 1938년 연길현 팔도 오봉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사업에 참가한 후 신화서점 영업원, 조양천서점 영업원, 룡정시문련 주석,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으로 사업하였고 《황구연전집》 10권, 《천생배필》, 《파경노》, 《유서깊은 명동촌》, 《유서깊은 해란강반》, 《유서깊은 구수하반》, 《유서깊은 두만강반》 등 수십권의 민간이야기 책을 출간하여 조선족민간이야기 발전에 크게 힘을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 〈내 고향 오솔길〉을 작사한 황상박선생님도 1938년생으로서 연길현 팔도 출생입니다. 그는 다년간 우편배달원으로 사업하면서 향토전설을 수집, 정리하여 《금망아지》, 《두만강 해란강》 등 가치있는 책을 펼쳐냈습니다.

민간이야기 수집정리가들인 박창묵, 김재권, 황상박(왼쪽으로부터)

김재권선생님과 황상박선생님은 제가 비교적 많이 접촉한 선생님들인데 말하자면 저의 어머니가 40년대 중반에 팔도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이 두분이 다 어머니의 학생이였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김재권선생은 학교 때부터 말수가 적고 학생들을 자기 주위에 잘 뭉쳐세웠고 반장으로서 학급을 잘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사모님은 룡정시로간부병동의 주치의사였는데 또 우리 아버지의 학생이였다고 합니다. 두분 다 인간적으로 모두 후더운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리고 황상박선생님은 이야기를 하기 좋아 하는 분입니다. 자기가 보고 들은 이야기, 우편배달을 하던 이야기. 가정생활이야기 등 세태담에 대해 생동하게 이야기를 잘하였습니다.

《황구연전집》 출판에 즈음하여 연변주당위 등개 서기를 비롯한 지도자들과 출판계 및 연변민간문예가협회 지도자들 함께 남긴 기념촬영.

이 두분은 동창생이고 같은 팔도태생이여서 황구연로인을 같이 찾아간 차수도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앞에서 얘기를 하다 싶이 황구연선생은 신문, 독서를 즐기다 보니 신문배달을 나선 황상박선생님은 그 마을에 가면 첫집으로 그 집부터 배달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집에 갈 때마다 그렇게도 반가와하면서 자신을 반겨주는 할아버지가 독서를 즐기는 분이라는 것 쯤으로 알고 있었지 그렇게 대단한 분인 줄은 미처 몰랐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황구연로인이 남긴 귀중한 이야기는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황구연전집》10권에 실렸는데 분류가 아주 선명합니다. 우스개, 생활세태담 등 분류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조선족의 최고의 민간이야기전집으로 되여있습니다.

《황구연전집》

다 알다싶이 유럽에 《천공하루밤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1001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였다고 하는데 황구연로인은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황구연로인은 중국의 3대 이야기왕 중의 한분입니다. 그러니 우리 조선족으로 말하면 대단한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룡정 한글독서사에서 학생들에게 민담을 들려주는 김재권선생

룡정에 가면 김재권선생님이 꾸린 《한글독서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연변에서 민간인이 제일 처음 꾸린 도서관입니다. 김재권선생님이 이 독서사를 꾸린 목적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책을 많이 읽게 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제가 알건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타계하기 전까지 김재권선생님은 거기에서 사업하고 거기에서 식사도 하면서 한글독서사 운영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지금도 김재권선생님의 발자취를 찾아보려면 룡정 한글독서사를 찾으면 됩니다. 이 독서사에 들어서는 순간, 아주 정연하게 정리된 수 많은 우리 글 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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