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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126]연극 ‘삼로인’과 소품(한영희편5)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3-22 10:50:30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26](한영희편5)

연극  삼로인은 중국조선족연극발전사에서 창작인원과 배우들이 예술 창작 실천에서 자주적으로 창조한 하나의 독특한 연극 쟝르입니다.

1950년 연변문공단의 연극대는 화룡현 룡수향에 공연하러 갔습니다. 그 때 마을에서는 합작사를 조직하는 문제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했습니다. 호조합작사를 뭇는다면 소가 있는 집에서는 소를 내고 인력이 있는 집에서는 인력을 내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으나 그렇게 말처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였기에 촌에서는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삼로인’ <회의하러 가는 길>(1950).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작가 홍성도선생은 이런 문제를 소재로 한 프로를 저녁에 있게 될 련환무대에 올릴 수 없을가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 날 최수봉, 원주삼, 문일평 등 배우들은 즉흥적으로 소형 코미디 삼로인을 창작해 온돌무대에 올렸습니다. 삼로인’은 마을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으며 좋은 공연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극을 본 마을 간부들과 촌민들은 합작사를 조직하는 우월성을 깨달게 됩니다.

연출 홍성도.

룡수평에서 이 극을 공연한 후 이웃촌에서도 알게 됩니다. 이 마을 지부서기는 공사회의에 가서 “우리는 연극  삼로인을 통해 합작사를 조직할 문제를 해결한 셈”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웃마을들에서도 이 연극을 구경하러 왔습니다. 이 극을 본 사람들은 모두 특별히 재미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또 자기들 마을로 공연대를 모셔갑니다. 그리하여 삼로인은 조선족마을을 순회공연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고 점차 조선족의 대표적인 연극쟝르로 발전하였습니다.

삼로인’은 세 로인이 등장하는데 각각 보수적 사상의 대표, 진보적 사상의 대표, 중립사상의 대표가 있습니다. 극이 시작되면 보수적 로인과 진보적 로인이 등장하여 주요한 사건을 둘러싸고 론쟁을 벌입니다. 중립적 로인은 구경만 합니다. 진보적 로인이 다가가 중립적 로인을 설복합니다. 나중에 두 로인은 함께 보수적인 로인을 설복하는데 보수적인 로인이 설복당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로써 극은 끝납니다.

삼로인’은 극의 줄거리가 간단하고 인물성격이 선명하며 언어가 유머스러워 당대 소품과 비슷합니다. 표현방식은 대화도 있고 노래도 있으며 대화와 노래를 겸용할 수도 있어 매우 높은 감상성을 가지며 조선족 관중들이 너도나도 즐기는 쟝르로 됩니다.

대화, 노래 등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된 삼로인.

이런 형식의 연극은 현실문제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관중들의 호평을 많이 받은 데서 연극  삼로인은 1984년, 1985년 연극무대에 소품이 출현하기 전까지 전반 연극창작에서 성세를 누렸습니다. 특히 소분대가 농촌에 내려가 공연할 때면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쟝르의 하나로 되였습니다.

연극  삼로인'은 형식상 주로 언어대화로 되여 있었는데 후에 노래도 첨가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는 연극 삼로인이 곡예종목에 편입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국가급 무형무화재 명부에 등록될 때 삼로인’은 곡예(曲艺)종목으로 등록되였고 중점보호와 전승, 발전의 예술쟝르로 되였습니다. 연극 삼로인은 비록 짧지만 중국조선족연극발전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1987년의 삼로인 〈며느리자랑〉(전정자 구순자 전춘옥).

20세기 개혁개방으로 하여 사람들의 사상은 해방되고 시야는 넓어졌으며 심미는 다양해졌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신매체와 인터넷기술은 또 사람들에게 더욱 넓은 정보선택과 예술교류의 공간을 제공하였습니다. 한면으로 사람들의 심미수준은 이미 국제화수준에 이르렀고 다른 한면으로 사람들의 심미방식에도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예술작품의 양식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미수단도 각양각색이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와 심미의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여 조선족연극의 창작에도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21세기에 이르러 극장 연극의 종합요소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배우의 표현예술 외에도 무대배경, 조명, 음향, 음악 등 기타 요소들은 현대과학기술의 수단을 사용하면서 연극예술에서 그 역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심지어 어떤 연극작품은 이런 현대기술이 없으면 작품의 묘미를 잃는바 특히 대형 연극작품이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이런 시대가 가져온 연극창작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연변연극단의 연극창작은 저조기에 들어갔습니다. 하여 전시기 극장 공연의 성황을 잃었습니다. 2006년 문화계통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독립적인 연변연극단은 연변가무단에 통합되여 연극부로 재조절되였으며 현재까지 연극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변가무단 연극부의 연극 창작은 이 때로부터 창작방향을 조정하였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즐겨보는 소품을 많이 창작하고 하향공연을 많이 진행하였습니다. 다음, 스크린에 오를 수 있는 소품을 많이 창작하였습니다. TV를 통해 관중과 만나면서 이 때로부터 연극예술의 주요한 매체는 TV와 농촌의 무대가 되였습니다.

소품 〈첫날이불〉(김정권 작 최인호 연출 최인호 김정자 표현)

그리하여 이 시기에 새로운 세대적 특징을 지닌 젊은 연극 창작 인원들이 출현하였습니다. 주요 씨나리오 작가들로는 김학송, 김정권, 김문혁, 오성복, 박성규, 주금파, 허강일, 김경호, 허련순 등입니다. 주요 연출은 량동길, 마학봉 등입니다. 주요 무대미술가로는 한동언입니다.

주요 배우로는 원용란, 최성훈, 리만수, 채용, 윤향화, 최화란, 리진, 석해민, 오성복, 렴광철, 최미화, 임호걸 등입니다. 이들은 조선족연극의 새일대로서 개성있는 연극창작을 진행하면서 조선족연극을 탐색하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이 시기 창작된 작품으로는 장막극 《댄스를 추는 아이들》(2001), 《장백의 아들》( 2002), 뮤지컬 《사랑의 샘》(2003), 경희극 《해구신》(2005), 《고향역》(2007), 《주덕해》(2012), 《림송숙》(일명 《사회구역서기》, 2014-2017), 《제1서기》(2018-2019)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바 20여년간 장막극 수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댄스를 추는 아이들》의 공연차수가 100차를 넘은 외에 기타 작품의 공연차수는 10차를 초과하지 못하였습니다.

《댄스를 추는 아이들》(2001).

2001년에 공연한 《댄스를 추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아버지 아니면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이들의 사춘기생활을 제재로 하여 창작되였습니다. 이 작품은 인생의 특수한 시기를 겪는 변형가정의 아이들의 고뇌와 선택을 보여주었습니다. 인물형상을 진실하게 부각하고 내용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공연되자마자 아이들의 강렬한 공명을 일으켰고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출국열로 인한 결손가정이 많은 현실에 근거하여 아이들을 인도, 교육하려는 취지에서 창작되였습니다. 우리 학생들 중 30%의 학생들이 결손가정의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기뻐서 어쩔줄 모르다가 심리적 상처나 고민을 건드리는 부분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극단이 가무단에 병합된 후로 우리의 가무극은 점점 시장을 잃어갔습니다. 창작되였다 하더라도 보러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일체화된 인터텟시대에 들어서면서 집안에 앉아서도 그 어떤 예술형식의 종목이든 마음껏 향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였습니다. 게다가 우리들의 심미수준도 아주 높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연극 창작 수준은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수요와 창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극장으로 사람들은 들어서지 않게 되였습니다.

무대연극이 난관에 봉착한 후 조선족연극 창작은 현대사회발전의 빠른 절주에 적응하여 짧은 연극소품을 창작하게 되였습니다. 변화된 시대에 부응하여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극장공연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존시장을 열어야 하였습니다. 이 때 우리는 두가지 시장을 열었습니다. 하나는 소분대 하향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TV매체를 통하여 우리 조선족연극작품을 방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시장은 대형작품을 창작하기에 불리했습니다. 이 때 우리들은 창작중심을 소품창작에 두었습니다. 물론 소품창작이 21세기에 들어서서 시작된 것은 아니며 일찍 1988년 TV방송국 음력설야회에서 첫선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단지 그 때에 연변연극단의 연극창작은 장막극이 주선을 이루고 소품은 보조적 역할을 하였으며 극장공연이 위주이고 농촌공연은 부차적이였습니다.

소품 〈설날아침〉(박춘우, 박성룡).

21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연극소품 창작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소품열은 또 다시 흥기하여 2000년부터 해마다 30차 공연을 하였고 창작한 작품들은 지금까지 연변텔레비죤방송 음력설맞이 련환모임이나 기타 매체에 방송된 것만도 100여부가 됩니다.

소품열은 2013년이나 2014년까지 지속되다가 2015년부터는 소품원작을 거의 받아 볼 수 없게 되였습니다. 소품의 극본이 없다면 연출이나 배우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시기 2016년에 저는 연변연극가협회 주석을 담임하게 되였습니다. 그 이듬해에 저는 옹근 한해동안 전 연변의 8개 현시를 돌면서 조사연구를 하여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실은 화룡현문화관 같은 곳에는 예술대가 하나 있는데 그들은 줄곧 삼로인을 공연해 왔고 또 기층으로 다니면서 공연하여 환영을 받아왔습니다. 훈춘문화관에서도 이 몇년간 전문 소품공연만도 4차례 진행하였습니다. 유료공연이였는데도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여 저는 주석단 성원들과 함께 토의하고 원작극본을 응모하기 위한 방도를 댔습니다.

2018년 《예술세계》잡지사와 연변텔레비죤방송국과 손잡고 극본응모통지를 냈습니다. 그해 1월부터 6월까지 사이에 들어온 34부의 극본을 7월부터 평가를 하여 4부의 우수작품을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변가무단의 연극부에 넘겨 공연연습을 했고 한 방면으로는 또 하향공연도 하면서 동시에 연길시 시민들에게 전시공연을 하여 좋은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대형극장연극을 할 수 없지만 소형연극은 련속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농한기에 하향공연을 할 때면 농민들과 함께 어울려 공연하고 공연이 끝나면 또 련환모임을 가지군 했는데 농민들은 번마다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우리들의 공연은 그렇게 농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군 하였지요. 우리의 소형연극공연은 가무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신변에서 발생한 일, 촌에서 발생한 이야기로 때로는 즉흥적으로 엮어가면서 공연하게 되니 그 효과는 너무나 컸습니다. 이런 공연으로 하여 우리는 연변연극부의 존재의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1958년 연변연극단의 하향공연.

가극 〈유쾌한 농촌〉.

소품창작도 좋고 특히 연극창작을 하면서 우리는 지금 조선어, 한어 두가지 언어로 창작을 시작하였습니다. 연극 《송순녀》는 처음으로 두가지 언어로 창작한 작품입니다. 그 뒤로 《림송숙》이며 사회구역 당서기를 가송한 연극을 모두 두가지 언어로 창작하였습니다. 우리의 공연은 조선족자치주내의 조선족집거구에 가서 공연할 뿐만 아니라 한족마을에 가서도 공연을 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한어로 된 소품작품을 접하게 된 한족농민들은 아주 기뻐했습니다.

조선어, 한어 두가지 언어로 창작한 연극 《송순녀》.

이런 하향공연은 지금까지 계속 견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견지할 것입니다. 소품창작은 지금 이 시기의 가장 큰 하나의 특점으로 되고 있습니다. 소품은 연극예술형식에서의 하나의 스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짧지만 오장륙부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인물도 있고 스토리도 있으며 사건도 있습니다. 비록 완정한 이야기를 구사하지 못하지만 직접 문제의 핵심을 집어내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됩니다.

짧지만 품위가 있는 특점이 있습니다. 소품은 또 아주 평범합니다. 취급되는 인물은 모두 자기 부모나 아이나 주위의 아주 평범한 인물이고 사건들도 신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평범한 사연들로 꾸며지기에 거리감이 없고 아주 친근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소품은 또 아주 빠른 특점을 갖고 있습니다. 번잡한 무대배경이나 설비가 필요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장소, 지어 온돌에서도 세사람이나 네사람 정도면 얼마든지 공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소품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여 완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짧고 평범하고 빠른 특점으로 특수한 시기에 특수한 방법으로 연극을 창작할 수 있고 또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1998년 단독소품 〈새새발로친〉을 표현한 배우 리옥희 CCTV-1 곡예잡담프로에 등장.

하향공연이 우리가 선택한 하나의 길이라 한다면 텔레비죤매체를 리용하여 소품창작을 발전시키는 것 또한 다른 하나의 길입니다. 텔레비죤무대와 결합하여 우리의 소품창작을 발전시키려면 일종 특수한 수단으로 일정한 조절을 해야 합니다. 수요에 따라 제재 조절과 형식상의 조절을 해야 하며 표현 면에서 어느 정도 과장이 따라 가야 할지 역시 분촌이 있는 조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품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연변텔레비죤방송 음력설맞이야회에 어느 한해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소품은 연변텔레비죤방송 음력설맞이야회의 언어프로핵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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