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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김동천, 김룡화, 김원길 등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4-28 12:23:57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7군―위급 군관

김동천(金東天, ? — ?): 요하민중반일유격대대 권총대 대장

중공당원이며 1932년 10월 중공요하중심현위원회에서 6명으로 구성된 특무대를 결성하자 성원중의 한사람이 되였다. 1933년 6월 하순, 요하로농의용군이 동북국민구국군 제1려 특무영으로 개편되자 권총소대 대장이 되였다. 1934년 2월 3일, 특무영이 요하민중반일유격대대로 개편되자 권총대 대장이 되였으며 요하중심현당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폭마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격근거지 창설에 뛰여들었다. 1934년에 적들의 동기  ‘토벌’에 맞서 폭마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격근거지를 보호하는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 제7군》)

김룡화(金龍化, ?—?):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제4퇀 제1련 련장

1933년 6월 하순, 요하로농의용군이 동북국민구국군 제1려 특무영으로 개편되자 제1련 련장이 되였다. 1934년 5월, 요하민중반일유격대대 제1련 련장이 되였다. 그 해 겨울, 적들의 동기  ‘토벌’에 맞서 폭마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요하유격근거지를 보호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1935년 8월 20일,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제4퇀이 결성되자 제1련 련장이 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 제7군》)

김원길(金元吉, ?—?):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 모 련 련장

1934년, 동북항일련군 제7군에 입대하였으며 선후로 패장, 지도원, 련장, 부관 등을 지냈다. 1940년 겨울, 총기와 생아편을 잃어버렸다는 리유로 부대에서 철직당하고 쫓겨났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오응룡(吳應龍, 1916—1939): 동북항일련군 제7군 군부 경위련 련장

1916년 3월 3일, 쏘련 연해주에서 태여났으며 1921년에 흑룡강성 요하현 동안진으로 이주했다. 1931년에 동안진에서 반일 활동에 참가하였으며 1933년 8월 요하반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1935년초 유격대 소대장이 되였고 1936년 11월에 련장이 되였다. 1938년초 동북항일련군 제7군 군부 경위련 련장이 되였다. 1939년 겨울에 군수물자를 구해 밀영으로 돌아가던중 적들과 조우하여 싸우다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허성재(許成在, ?—1934): 동북국민구국군 제1려 특무영 제3련 련장

중공당원이며 1932년 10월 중공요하중심현위원회에서 항일무장인 특무대를 결성하자 6명 성원중의 한사람이 되였다. 1933년 4월 21일, 특무대가 요하로농의용군으로 개편되자 제2소대 소대장이 되였으며 1933년 5월 하순 요하로농의용군이 동북국민구국군 제1려 특무영으로 개편되자 제3련 련장이 되였다. 1933년 겨울, 제3련을 거느리고 일본 참사관대리 거주지를 공격하는 전투에 참가하여 중기관총 5정과 많은 보총을 로획하였다. 1934년 1월 27일, 호림 현성을 공격하는 전투에서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 제7군》)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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