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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김근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7-30 14:03:29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8, 제9, 제11군―부사급 이상 장령

김근(金根, 1903—1937): 동북항일련군 제8군 제1사 정치부 주임

원명은 김광진(金光珍)이고 일명 김현(金鉉)이라고도 한다. 1903년에 조선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여나 1908년초에 부모를 따라 길림성 화룡현 상천평(지금의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으로 이주했다. 광제욕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1915년에 광제욕소학교(원 양정학당)를 졸업했다. 1916년 연길에 와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1918년에 길림공업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921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이듬해 5월 남경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1923년에 학교를 중퇴하고 북장동(北樟洞), 걸만동(傑滿洞) 소학교, 화룡현제1소학교 교장이 되였다. 교장 직무를 리용하여 대중 속에 들어가 선진사상을 선전하고 대중단체를 조직하였다. 1924년에는 북장동(지금의 월청)소학교에서, 1925년에는 걸만동소학교에서, 1926년에는 공립화룡현제14소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으면서 대중들에게 반일사상을 선전하였으며 각성한 농민들을 청년동맹으로 이끌었다. 이 기간에 또 야학을 꾸리고 손수 《로동독본》을 써서 로고대중을 각성시켰다.

1928년에 룡정대성중학교에서 영어와 한어를 가르치면서 혁명활동을 하였으며 그 해 겨울에는 룡정에서 7명으로 무어진 철혈단을 결성했다. 1929년 여름, 대성중학교에서 나와 반일동맹청년단을 만들고 많은 청년들을 혁명단체의 주위에 묶어세웠다. 1930년 4월, 무장대오를 묶어세우기 위해 녕안 화검구로 이동했다. 그 해 6월, 녕안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9월에는 왕청현 라자구에 가서 병치료를 하면서 중공길동국의 지시에 따라 라자구에다 군사위원회를 내왔다. 10월에는 왕청유격대의 결성에 관여했고 1931년 여름에는 중공녕안현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녕안 동경성에 가서 대중 사업을 진행하였다. 9.18사변 후인 1932년 6월 녕안현 동경성에서 23명의 조선족으로 구성된 북만로농의용대를 결성하고 대장이 되였다. 1933년 봄, 대오를 거느리고 왕청현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에 가서 근거지 보위전에 참가하였다. 6월에 상급의 지시에 따라 리연록의 구국유격군과 함께 밀산으로 들어가 중공밀산현위원회에서 사업하였다. 밀산현 합달하에서 밀산유격대 결성에 참가하였으며 1934년 3월 20일 유격대가 설립되자 참모장 겸 정치지도원이 되였다. 당해 10월, 밀산유격대가 리연록의 구국유격군과 합병하여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으로 재편되자 참모처장이 되고 경제위원회 주임까지 겸하였다.

1935년 3월, 제4군 제2퇀 대리 퇀장이 되여 벌리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36년 9월 동북항일련군 제8군이 결성되자 제1사 정치부 주임으로 파견되였다. 10월에 일제 ‘치안공작반’에서 연변협조회 회장 김동한을 보내여 회유, 암해하려 하자 적의 책략을 역으로 리용해 오래동안 항일 사업을 파괴해온 민족의 반역자이고 일제의 주구인 김동한을 처단하였다. 1937년 6월에는 제3사로 파견되여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37년 12월 3일, 화천현 칠성립자(七星砬子)에서 제8군 3사 경위련의 몇몇 변절투기분자들과 맞서다가 살해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장령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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