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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 나의 집 5] “친구와의 약속은 인격이고 당과의 약속은 인생입니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8-02 15:06:40 ] 클릭: [ ]

-한 평범한 공산당원 최청숙선생의 고백

봉사와 헌신으로 공산당원의 본색을 지켜온 나날들이 행복하기만 하다는 최청숙선생

지난 2020년에 들어서면서 코로나 역정이 제일 엄중할 때 어김없이 월급을 받아 안게 된 퇴직교원 최청숙선생은 가슴이 뭉클해냈다.

“아니, 이토록 어려운 처지에서도 당과 정부에서는 집에서 놀고 있는 퇴직일군에게도 지체할세라 월급을 지급하고 있으니 나라의 어려움에 어떻게 보탬을 해야 하지? ”

최청숙선생(75세)은 고민끝에 7월 1일이 다가오니 월급봉투를 거머쥐고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조직부로 찾아 떠났다. 워낙 룡정시북안소학교에서 퇴직한 최청숙선생은 북안소학교 당지부로 찾아 가야 했으나 그때는 이미 룡정도 교통을 통제하고 있을 때였다. 두번 세번 검사와 방역절차를 마치고 조직부로 찾아 들어가 “이 월급을 당비로 바치련다”고 하였다. 놀란 눈길로 최청숙 선생을 바라보던 해당 일군은 상급에다 보고를 올린 다음에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니 한번 걸음이 쉽지 않음을 생각하고 다시 정히 받아 들이는 것이였다. 수개 월이 지난 후 최청숙 선생은 중공중앙조직부에서 발급한 ‘당비령수증’을 받아쥐고 남 모르는 감격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특수당비령수증

(한 보통당원의 마음인데 이렇게까지…)

최청숙선생의 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은 또 당마크(党徽)일화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번은 동창들과 함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가슴에 달았던 당마크가 보이지 않았다. 급급히 오던 길을 샅샅이 훑으며 그 식당 문앞까지 이르렀다. 마침 한 복무원이 마당을 쓸고 있길래 당마크를 못 보았는가 물었다. 그 복무원은 여러 복무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식탁에다 올려 놓았다고 하였다. 부랴부랴 뛰여 들어가 보니 복무원들도 당마크도 보이지 않았다. 책임자를 찾아 사연을 말하고 혹시 복무원들이 모르고 쓰레기통에다 버리지 않았는지 찾아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마침 오늘 하루 쓰레기통을 버리지 않았다며 그도 함께 찾아 보자고 했다.

쓰레기통을 마당에 들고 나와 엎어놓고 큰 물건들은 추려내놓고 밑바닥 흙먼지속을 손으로 더듬고 있는데 함께 찾던 복무원이 “찾았어요!” 하고 웨쳤다. 그 순간, 최청숙선생은 저도 몰래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흙먼지 속에서 기적처럼 찾아낸 당마크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 최선생은 그 복무원을 부둥켜 안은채 고맙다는 인사를 몇 십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최청숙선생은 격동되는 심정을 안고 ‘앞가슴에 빛나는 당휘’라는 수필을 썼다. 그리고 또 ‘당휘는 내 가슴에’라는 가사를 쓰고 작곡까지 하여 그가 다니는 항일가요합창단 리상덕 단장에게 보냈다. 그렇게 ‘당휘는 내 가슴에’라는 노래가 창작되였고 편곡까지 거쳐 항일가요합창단의 남성중창으로 불려졌다.

내 가슴에 자리를 잡고 인생길 함께 간다

낫과 마치 빛 뿌리는 붉은 기발 당휘여

인민 위해 바치는 일편단심 한마음

힘들고 어려워도 손잡고 가는 길

아- 당휘는 가슴에 새겨진 충성

천년만년 변치 않는 빛나는 영광이여

최청숙선생은 퇴직후로 20년간 로간부대학 공부를 견지하면서 영어, 일어, 컴퓨터, 무용, 음악, 촬영 등 다 방면의 지식을 쌓았고 또 부지런히 실천하면서 일상에서 남을 위한 일에 활용하였다. 그는 현대 젊은이들 못지 않게 핸드폰도 능란하게 다루면서 주위 퇴직일군들이 겪는 그 어떤 어려움도 앉은 자리에서 척척 해결해 주군 한다. 남들의 부탁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며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 하는 최청숙 선생을 두고 주위에서 “보기 드문 공산당원”이라고 엄지손을 치켜들 때면 그는 “당과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일 뿐”이라고 웃어 보인다.

그는 여느 협회나 단위들에서 그를 모시고 인터뷰나 강의를 조직한 뒤 일정한 보수를 지불해 줄 때면 밀막다 말고 핸드폰을 꺼내 직접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사랑의 기부금으로 보내군 한다.

연변라지오TV방송국 '행복한 세상 정다운 목소리'프로 인터뷰 장면

최청숙선생은 “공산당원들은 누구나 선서를 할 때 당과 인민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든지 개인의 리익을 바칠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친구와의 약속은 인격이겠지만 당과의 약속은 인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산당원은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배를 채우고 나서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공산당원으로 살아온 나날을 돌이켜 보면 저는 베풀고 헌신하고 희생해온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라고 하며 공산당원의 본색을 말한다.

그만큼 최청숙선생의 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은 하루이틀에 생긴 것이 아니였다. 무남독녀로 태여나 다섯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그녀는 홀어머니슬하에서 성장하면서 당과 조직의 배려가 있기에 자신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다. 17세 그때 공청단조직에 가입하면서 이제부터는 “전심전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고상하고 신성한 공산당조직에 가입하는 것이 목표로 되였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조국의 수요와 나의 학습목표”라는 주제회의를 할 때 그녀가 발표한 문장이 연변일보에 채용되기도 하였다.

큰딸 박춘홍(왼쪽) 둘째딸 박춘연(오른쪽)과 함께  

1965년 7월 당과 정부의 혜택으로 연변사범학교를 무상으로 공부하고 졸업하게 된 그녀는 당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일념으로 일심전력 사업하면서 룡정시 신안소학교 교사시절 38세에 공산당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교육자는 당의 교육사업의 집행자로서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각오로 그녀는 오로지 조직의 수요에 일체를 헌신하였다.

언제나 졸업반 담임으로 분망하였던 그녀는 가정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여 고중 3학년에 다니는 딸애가 대학입시공부를 하면서 저녁밥도 굶은 채 저녁자습을 다니군 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큰 딸 박춘홍은 언제가는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우리 자매를 아버지가 키웠지 어머니는 언제 보살펴 준 적이나 있습니까?”

“글쎄, 참 어머니로서 할 말이 없구나. 너희들에게 미안하기만 한데 집에는 너희들 뿐이지만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가정의 얼마나 많은 애들을 돌봐야 하겠니? 그 많은 애들을 잘 키우는 것이 어머니의 직책이 아니겠니? 너희들이나 학생들 모두가 내 자식이란 말이다.” 어머니의 대답이 리해를 받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맘 때면 둘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리한테 뭘 남겨 준 것이 있습니까? ”

“아버지 어머니는 모두 교원으로서 너희들한테 뭘 남겨 줄 것이 있겠니? 너희들을 낳아서 건강하게 키웠고 공부를 시켜 사회에 나아가 씩씩하게 앞길을 헤쳐나갈수 있도록 했으면 그것이 부모들의 공로가 아니겠니? ” 어머니의 대답은 당당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자매를 키우면서 실로 미안한 점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딸들의 성장에 공산당원으로서, 교육자로서의 부모들의 영향은 보이지도, 만질수도 없는 막대한 것이였다.

상해중홍국제려행사 가이드들을 대표하여 성금을 갖고 항일가요합창단을 찾은 책임자 김철규(왼쪽 두번째)

두 딸은 모두 남방에 가서 활약을 펼치며 앞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최청숙선생은 상해에서 중홍국제려행사(中红国际旅行社)를 차린 큰 딸 박춘홍에게 늘 “수십명 가이드들과 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너희 책임이다.”고 잔소리를 하며 책임자로서의 사명을 심어주군 하였다.

그러던 2015년 최청숙선생은 큰딸에게 한가지 기별을 전하였다. 항일가요합창단에서 세계반파쇼전쟁승리 70돐 맞이 세계대합창축제에 참가하여 공산당의 령도아래 굴함없이 싸워 위대한 승리를 전취한 중화민족의 력사적 위훈을 노래로 표달하려 한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말길을 알아차린 큰딸 박춘홍은 수하의 40여명 가이드들을 동원하여 5만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그리고 가이드책임자가 직접 성금을 갖고 연길로 찾아와 항일가요합창단에 자신들의 응원의 마음을 전하였다.

원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 성원들과 함께

올해의 6월도 막 가는 하루, 둘째 딸 박춘연은 또 어머니한테 축하메세지를 보내왔다. “어머니, 축하해요! 건당 100주년은 어머니의 가장 큰 명절이지요? 7월은 또 ‘어머니의 달’ 이구요. 어머니께서 어떤 유익한 일이든 하고 싶으시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괜찮아! 어머니 일은 어머니 절로 알아서 할테니!” 어머니 최청숙은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7.1’을 맞으면서 항일가요합창단에서 소왕청항일유격근거지를 참관하고 왕청현대흥구진용수촌 당지부와 함께 건당 100주년 경축행사로 입당의식을 치르게 되자 최청숙선생은 농촌기층당지부를 돕는 차원에서 둘째딸이 보내온 성급 2000원을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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