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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김정국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8-09 10:23:16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8, 제9, 제11군―부사급 이상 장령

김정국(金正國, 1912—1938): 동북항일련군 제11군 정치부 주임

원명은 김상주(金相周)이고 일명 김상규, 김진국이라고도 불렀으며 1912년 3월 1일 조선 경상북도 례천군 호명면 산합동에서 태여나 1916년에 가족을 따라 중국 동북으로 이주하였다. 료녕성 관전현, 흑룡강성 학강, 탕원현 성동 태평촌 등으로 이주하였다가 후에 탕원현 고성강에 정착하였다. 1929년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초에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비서가 되여 탕원유격대 결성에 참여하였다. 1934년 가을, 유격대가 탕원민중반일유격총대로 개편되자 유격총대 지도원이 되였다. 1935년에 중공탕원중심현위원회 유격총대의 파견을 받아  ‘명산대’에 들어가 정치지도원이 되여 기치중(祁致中)을 도와 정치 사상 사업을 책임졌다. 명산대에서 기치중을 도와 항일무장통일전선 사업으로 기타 반일무장을 흡수하여 부대를 확충하였다.

동시에 30여명의 당원을 발전시켜 부대의 군사, 정치적 자질을 높이였다. 1936년 5월, 의란현 제3구에서 중공벌리현위원회의 도움하에 몇몇 항일산림대를 받아들여 동북항일련군 독립사로 개편하였으며 지휘부 주임 겸 제1려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37년 2월, 동북항일련군 하동총판사처 의동판사처(후에는 의동분소로 고쳤음) 부처장이 되였다. 1937년 여름, 독립사 제1려 그리고 제5군 제2사와 제8군의 일부 대오를 거느리고 채하 일대와 장석립자 등 일대에서 적들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려 승리했다. 1937년 10월, 독립사가 동북항일련군 제11군으로 개편되자 군 정치부 주임 겸 제1려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2월에 제1려를 지휘하여 반간첩 사업을 벌리고 제1려에 기여든 일본관동군사령부 특무 겸 삼강성협화회 특무부장 김동한을 처단하였다.

1938년 봄부터 일본군과 위만군이 1,000여명의 기병과 위만군 제4교도대의 500여명을 모아 제11군의 활동 지역에 대해  ‘포위토벌’을 감행하자 려장 장치국과 함께 제1려를 지휘하여 화남의 영평강으로부터 산속으로 전이하였다. 이 와중에 려장 장치국을 비롯한 80여명이 장렬하게 희생되자 나머지 10여명을 거느리고 포위를 뚫고 칠성립자산으로 전이하였다. 1938년 5월 하순, 부금현 리귀툰(李貴屯)에서 반역자에게 살해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장령전》)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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