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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박영산, 심덕룡, 안철민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8-20 10:02:55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출신의 쏘련홍군 정찰요원

박영산(朴英山, ?—1944): 동북항일련군 제5군 부관, 쏘련 홍군 정찰요원

조선에서 태여났고 중공당원이다. 동북항일련군 제5군에서 부관으로 활동하였으며 1937년에 쏘련으로 건너가 쏘련 홍군 극동군사정보부문에 들어갔다. 1940년을 전후하여 쏘련 홍군 극동군사정보부문과 동북항일련군 교도려의 파견으로 흑룡강성 목릉, 동녕, 녕안 일대에서 대 일본군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력사 서류에 따르면 출중한 정찰영웅으로서 단독 혹은 부대원들과 함께 5, 6차나 대 일본군 정찰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1943년 7월, 녕안현 와룡향 마장자(馬場子, 현 영산툰)에서 정찰 임무 수행 도중 특무들에게 발각되여 저항하다 체포되였고(전사 2명은 희생됨) 할빈특무대로 압송되여 1944년 6월 살해되였다.

부록: 1985년 8월 29일, 수양(綏陽)림업국 류교구(柳橋溝)림장 퇴직 종업원 량용(梁勇) 등이 산나물을 뜯다가 방수용 천으로 꽁꽁 싼 보따리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속에 무전기 한대와 무전기 수리 기구, 학생용 자전이 하나 들어있었으며 그 자전의 책뚜껑에는 ‘박영산’(朴英山이란 한자 세글자와 로어로 된 ‘박영산의 책’이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해당 부문의 조사와 검증 및 로항일전사들의 증언을 거쳐 이 무전기와 자전은 바로 동북항일련군 교도려에서 파견한 정찰소조가 사용한 무전기이며 자전은 비밀번호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해방 후 해당 부문에서는 ‘박영산렬사기념비’를 세우고 박영산이 체포된 마장툰(馬場屯)을 영산촌(英山村)으로 개명하였다. (자료 출처: 《동북지구혁명력사문서회집》)

심덕룡(沈德龍, 1911—1943): 쏘련 홍군 참모부 정찰요원

1911년에 조선에서 태여났고 1929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중공 모 현 위원회에서 선전부 간부로 있었고 동북항일련군 모 부대에서 패장으로 있었다. 1934년 12월, 중공만주성위원회의 파견으로 쏘련 모스크바에 가서 동방로동대학에서 류학했다. 1938년 6월, 대학 졸업 후 쏘련 홍군 참모부의 요청과 국제공산당 주재 중공대표의 동의를 거쳐 모스크바에 남아 무선전 기술을 배웠다. 1940년 3월, 쏘련 홍군 참모부의 파견으로 대련에서 대 일본군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정보망 사업을 지도했다. 1941년 5월, 명령을 받고 봉천에서 알게 된 사진사 리진성(李振聲)과 함께 대련에 흥아(興亞)사진관을 차리고 ‘지하무선전발송참’으로 삼아 정보 수집 및 발송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본계, 봉천, 대련, 천진 등지에 정보원을 발전시키고 일본군의 부대 이동과 배치 상황, 물자 저장 등 상황을 쏘련 극동군사정보국으로 전송했다. 1943년 10월 2일 이른아침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였으며 같은 해 11월말 왕요헌(王耀軒), 왕학년(王學年), 리충선(李忠善) 등과 함께 비밀리에 할빈으로 압송되여 731세균부대에서 생체실험을 당하고 살해되였다. (자료 출처: 《대련시렬사릉원의 영웅소전》)

안철민(安哲民, ? — 1942): 쏘련 제10공수 선견부대 부대장

흑룡강성 목단강 사람이며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떠나 항일유격대원이 되였다. 1942년 7월 22일, 쏘련 극동 제1방면군 총부 특별처, 중공특파대표, 동북항일련군 교도려 사령부에서 15갈래의 공수 선견 소분대를 동북 각 전장에 파견하자 30여명으로 구성된 쏘련 제10공수 선견분대 부대장이 되여 같은 달 23일 호림현 호두산에 공수되였다. 호림, 밀산 일대에서 호두요새(虎頭要塞)를 중심으로 한 일본군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5년 8월 3일, 호두요새에 새로 배치된 거포에 대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중 호두산에서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호두기병〉, 《호림항일봉화》)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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