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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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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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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6 12: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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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계렬보도 ‘나의 조국 나의 집’(16)김봉호, 그는 작곡을 생명처럼 여겼다
김봉호 프로필: 1937년 조선 함경남도 함흥시 출생. 조선족. 국가 1급 작곡가, 원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문공단 예술지도. 1941년 부모를 따라 중국 길림성 화룡으로 이주. 1957년 화룡현문공단에 공개초빙되여 배우, 부단장 력임. 1974년 길림성문화국 부국장으로 발탁, 1978년 길림성문련민간협회 부주석 담임, 1984년 북경으로 전근. |
저명한 조선족 작곡가 김봉호(국가 1급 작곡가)는 1937년생이니 올해(2022년) 85주세이다. 음악 생애만 해도 60년을 웃돈다. 그는 여러 시대의 격정 속에 푹 잠겨 매 시대의 맥박을 음악으로 기록한 정열적인 작곡가이다.
그가 20세기 60년대에 창작한 〈연변 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한윤호 작사),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한윤호 작사)는 전국에 널리 울려퍼졌으며 개혁개방 초기에 창작한〈아름다운 심령〉(진설범 작사), 〈금실북과 은실북〉(리유용 작사)은 그 시대에 정신적 힘을 부여해주었으며 21세기초에 창작한 〈장고야 울려라〉(리결사 작사)는 장백산 아래에 메아리쳤다.
감격의 눈물
김봉호를 감동시킨 이런 일화가 있다. 사연은 이러하다. 2015년 7월 16일, 중공중앙 총서기 습근평은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을 고찰했다. 마침 마을의 로년무용대가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의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습근평은 발길을 멈추고 공연을 감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몇십년전에 내가 촌당지부 서기로 있을 때 촌에서 매일 〈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를 방송했지요. 아주 익숙한 노래지요. 오늘 드디여 노래중의 ‘해란강반 벼꽃 피네’의 고장에 오게 되였군요.’”
텔레비죤을 통해 습근평 총서기의 이 말을 듣는 순간 김봉호는 감격된 나머지 그만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세기 60년대에 광산에서 황인순가수가 <연변 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를 열창하고 김봉호(왼쪽 사람)가 옆에서 손풍금 반주를 하고 있는 장면.
백성들과 동고동락
김봉호는 천성적으로 음악에 흥취를 가진 분이다. 1945년, 연변이 해방된 후 그는 화룡 주둔 모 부대의 울안에서 들려오는 손풍금소리에 끌려 손풍금과 인연을 맺고 스스로 손풍금 교육 과정과 여러 나라의 악보와 접촉했다. 그 때로부터 배우기와 련마를 꾸준히 하여 20년 후에 화룡현문공단에 공개초빙되고 오매에도 바라던 음악 예술의 길을 걷게 되였다.
무게가 18키로그람 되는 육중한 손풍금을 메고 늘 울퉁불퉁한 산간의 흙길을 몇십리씩 주름잡으면서 백성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고 공연을 해온 김봉호, 그런 백성들과의 동고동락이 기층에서 장장 17년간이나 이어졌다.
김봉호는 이렇게 말한다. “문예사업자는 반드시 생활에 심입해 진정으로 인민을 따라배워야만이 비로소 인민을 료해할 수 있고 사회를 료해할 수 있으며 좋은 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습니다.”
시대의 나팔소리
〈연변 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는 김봉호가 28세 되는 해인 1965년에 창작한 가곡으로서 선명한 조선족 음악특색에 짙은 시대적 맥박이 차넘친다. 가곡은 공산당의 령도하에 아름다운 새 생활을 창조하는 조선족 인민들의 정경을 생동하게 그려내고 있다. 1966년에 창작한〈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는 드높은 기세와 격앙된 선률로 변강지역의 아름다운 모습과 연변 인민들의 포만된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연변 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와〈붉은 해 변강을 비추네〉가 홍색 경전 가곡으로 될 수 있게 된 그 리유는 이 작품이 모주석과 공산당에 대한 전국 인민들의 다함없는 사랑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김봉호의 말에 의하면 이 두 가곡은 그야말로 시대의 나팔소리였다.
청결차의 맑고 깨끗한 벨소리, 률동적인 치륜의 움직임소리를 들으면서, 젊은 청결공의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면서 령감이 떠올라 창작했다는〈아름다운 심령〉은 20세기 80년대 청춘들의 미래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전국 인민들의 불타오르는 심정을 청신하고 생동한 선률에 담아내고 있다. 한 청결공은 “이 노래는 청결공들의 지위를 높여주는 아주 좋은 노래”라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심령〉은 1980년에 문화부와 중국음악가협회에서 선정한 11수의 ‘우수대중가곡’의 하나로 되였고 ‘유엔아태지역음악교재’로 선정되기도 했다.
역시 20세기 80년대에 전국에 널리 울려퍼진 통속가곡 〈금실북과 은실북〉은 경쾌하고 활발한 그 시대의 대표적인 선률로 사람들로 하여금 분초를 아끼고 생활을 열애하고 미래를 향해 분발하게끔 격려하고 있다. 이 가곡은 ‘중국 개혁개방 30년 대중들이 제일 즐기는 노래 30수’ 에 입선되였다.
김봉호는 〈아름다운 심령〉과 〈금실북과 은실북〉 창작담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한마디로 개괄한다. “내가 창작한 이 가곡들은 대중가요입니다. 대중들이 평소 이 노래들을 즐겨 불렀기에 나의 창작은 가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돐 헌례 가곡으로 선정된 〈장고야 울려라〉는 조선족 음악 절주와 음색을 보류한 토대 우에서 현대통속음악의 원소를 융합시킴과 동시에 서방가곡창작기법을 결부시킴으로써 가곡으로 하여금 짙은 조선족 음악 풍격과 청신한 향토맛 그리고 현대적 감각이 유기적으로 풍기게 해 번영 발전하는 연변의 현시대 모습을 생동하게 담을 수 있었다.
두가지 원칙: 아름다움과 색다름
김봉호는 음악의 혁신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민족 민간 음악은 계승해야 합니다. 그러나 계승을 위한 계승만 할 것이 아니라 발전도 시켜야 합니다. 좋은 것은 거울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의 모방과 복사는 금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자기의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혁신입니다.”, “나는 음악창작 시 시종 두가지 원칙을 견지합니다. 하나는 아름답게 창작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색다른 작품을 창작하는 것입니다. 즉 혁신입니다. ”
고향과 고향 인민들에 대한 김봉호의 사랑은 그 누구보다도 지극하다. “나는 고향의 쌀을 먹고 고향의 물을 마시며 자랐습니다. 나는 고향의 풀 한포기도 흙 한줌마저도 사랑합니다.” 김봉호의 마음속 실토정이다.
그가 말하는 고향은 좁은 의미로 말하면 화룡 혹은 연변이고 넓은 의미로 말하면 조국이다. 즉 고향이자 곧 조국이고 조국이자 곧 고향이라는 뜻이다. 60여년 사이에 그가 창작한 1,000여수의 작품엔 고향 사랑, 민족 사랑, 당과 조국 사랑, 사회주의에 대한 사랑이 다분히 슴배여있다. 바로 그 사랑이 김봉호 음악작품의 원동력으로 된 것이다.
연변에서 장춘으로, 장춘에서 북경으로의 60여년 음악 인생을 헤아려보면 자기의 애호를 직업으로 간주하고 작곡을 생명처럼 여기며 혼신을 다해 금싸락같은 음악작품들을 창작해낸 김봉호의 자랑찬 분투와 수확의 그라프를 엿볼 수 있다.
김봉호의 음악 창작은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길림신문 리영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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