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7-15 13: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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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배가 연변의 특산물이고 중국의 량질 배품종의 하나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 배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는 잘 모른다.
리태수에 따르면 일찍 1921년, 이모부 최창호의 동생 최범두가 조선 북청에서 배나무 접가지 6대를 가져왔고 최창호는 당지 돌배나무에 접가지를 접목했다. 당시 세 그루만 살아 남았고 7년철을 잡던 해에 나무가 꽃을 피웠다.이후 최창호의 다년간의 꾸준한 재배와 육종시험, 번식확대를 거쳐 마침내 사과배 재배가 성공을 거두었고 룡정에서부터 점차 퍼져 나갔다.
고중을 졸업한후 리태수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업생산에 종사하고 마을 청년들과 함께 사과배 산업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청년시절, 리태수는 사과배 산업을 발전시키려 했지만 최창호는 그에게 로동도 중요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더욱 많은 문화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격려했다. 최창호의 가르침은 리태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1965년도에 그는 연변대학 정치학부에 입학했고 1969년에 졸업한 후 통화지역의 농촌으로 내려갔다. 1972년도에 리태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다시 연변으로 돌아왔다. 그는 연길시에서 교원으로 일할수 있는 기회도 마다한채 고향인 로두구진 중학교에 돌아와 교원으로 되였다. 1984년에 리태수는 연변대학경제무역총공사의 총경리로 전근되였는데 그로부터 17년동안이나 고향과 떨어져 살게 되였다. 비록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리태수는 줄곧 그 세 그루의 사과배 선조나무를 그리워했으며 고향의 사과배 산업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다.
수선하기 전의 사과배선조 기념비
2001년, 리태수는 정년퇴직을 하고 다시 꿈결에도 그리던 사과배밭을 밟았다.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 이모부인 최창호의 자녀들은 모두 타지역에서 살고 있거나 세상을 떠난 바람에 사과배밭은 여러 해 동안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심하게 파괴되였다. 당시 연변의 사과배는 이미 국내외에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이미 80년 세월을 살아온 세 그루의 사과배 선조나무는 각일각 생기를 잃고 스러져 가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과배선조나무는 연변의 중요한 력사경제문화유산이고 애국주의교양을 진행하는 소중한 향토교재로 각광받았다. 룡정시정부에서는 1987년도에 최창호선생이 살고있던 소기촌에 《사과배선조나무기념비》를 세웠고 1998년도에 연변주정부와 룡정시정부에서 또 련합으로 《사과배소개기념비》를 세우면서 이곳은 연변의 사과배력사문화의 발원지 구실을 했다.
“이게 어떤 나무입니까? 연변의 유명한 명물인 사과배를 전 세계에 퍼뜨린 모수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 명물을 배육하기 위해 한생을 분투해온 최창호어르신이 손수 배육하고 키워내신 나무가 아닙니까?!”리태수는 연변의 력사가 담긴 사과배 선조나무를 이대로 방치해두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며 어떤 수를 써라도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굳게 결심했다.
잡초가 무성했던 최창호 옛집
곧 그는 과수원옆의 무성한 잡초에 쌓여있던 최창호가 살던 초가집을 수리하고 안해와 함께 이사까지 왔다. 자비로 수만원을 들여 외국에서 영양소와 비료들을 사서는 매년 봄이면 사과배선조나무에 주었다. 3년 동안 옆에서 붙어살다싶이 하면서 끈질기게 애쓰고 고생한 보람으로 세 그루의 사과배선조나무는 마침내 싹이 트고 열매 맺으면서 성공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다시 소생한 사과배선조나무를 마주하니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겪어온 백발이 성성한 로인을 마주한 느낌이였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했으나 너무 늙어서 차마 말은 못하고 무겁게 침묵하고 있는듯 그런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작은 묘목 한 그루가 천리 먼 길을 걸어 이곳에 와서 접목하고 성장하면서 전승된 백년력사를 뒤돌아보니 꼭 마치 우리 조선족의 파란만장한 이주사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경외심이 저절로 생긴다고 리태수는 입버릇처럼 말하군 한다.
사과배선조나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리태수의 사과배선조나무와 이모부 최창호에 대한 경모의 마음도 깊어져 가고있다. 2020년 7월에 그는 사비로 10만원을 들여 한백옥으로 된 이모부 최창호의 조각상을 만들어 사과배선조나무 앞에 경건히 세워 놓았다. 날이 갈수록 점점 잊혀져 가고있는 사과배 력사와 문화를 안타깝게 여겨 다시금 부활시킬 목적하에 거금을 마다하지 않고 조각상을 세웠다.
리태수는 올해 이미 82세 고령이다. 그가 편안한 도시속 생활을 접고 시골에 찾아와 사과배선조나무를 보살피는 것은 그 무슨 향락이나 금전적인 것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였다. 리태수는 “사과배의 아버지인 최창호는 연변사람들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 자랑입니다. 후세 사람으로서 우리는 응당 그가 접목한 세 그루 사과배선조나무와 사과배 품종을 더욱 잘 개발하고 보호하며 전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하고 감명깊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