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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의 지속양성 활용 무엇보다 중요

편집/기자: [ 심영옥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5-11-26 10:18:28 ] 클릭: [ ]

원 중국과학원 생물물리연구소 김록송연구원 인터뷰

지난 11월 19일,  기자는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제5회 3차 상무리사회 참가차로 장춘에 온 이 협회의 부회장인 원 중국과학원 생물물리연구소 김록송연구원(65)을 만나보았다.

장춘광학기계학원(지금의 장춘리공대학)에서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1963년 우수한 성적으로 중국과학원에 배치된 김록송연구원은 2000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줄곧 초고속원심분리기 연구 및 산업화추진에 온갖 심혈을 기울여온 우리 민족의 우수한 과학자이다.

김록송연구원이 대학을 마치고 원심분리기연구에 종사할 때인 60년대초반은 쏘, 미 두 진영이 정치, 경제,  군사 제 령역에서 중국을 통제하던 시기였다. 원심분리기연구는 바로 이런 렬악한 환경에서 시작되였다.   그러나 김록송연구원을 비롯한 연구소조는 갖은 곤난을 박차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 마침내는 중국최고수준, 세계4위라는 놀라운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초고속원심분리기란 물질에 고속회전을 가해 생체내의 바이러스 등을 분리해내는 기술이다.이는 유전공학, 림상의학, 농생물학 등 연구와 응용에 필수적인 분석기기로 리용되고있다.

초고속원심분리기는 보통 기계로 하루,  이틀 걸려야 분리해내는 혈액중의 혈청을 5분만에 분리해낼수 있는가 하면 강대한 원심력으로 각종 바이러스(病毒)를 추출해낼수 있어 바이러스연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분석기기이기도 하다.

1979년 김록송연구원은 이 연구성과를 고향에 이전하려고 대학을 졸업한지 십여년만에 첫 연변행을 했다. 그때 중앙정부에서는 130만딸라, 인민페 99만원을 투자했는데 그 당시로 말하면 이는 엄청난 자금지지였다. 그러나 고향인 도문에 공장을 세웠으나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가동되지 못한채 무산되고말았다. 이렇게 초고속원심분리기 산업화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는 내 평생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지금도 아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김록송연구원.

지금껏 김록송연구원은 원심분리기와 관련된 10개의 굵직굵직한 항목연구에 종사해 훌륭한 성과들을 안아왔고 전국과학기술대회상, 중국과학원중대과학기술진보 2등상,   길림성과학기술진보 2등상, 5개 항목의 특허권을 획득하는 등 성과외에도 국가적으로 2차밖에 없은 국가급원심분리기난관돌파항목상을 모두 받아안는 아름찬 영예를 지녔다.

80년대 방문학자로 서독에서 2년,  일본에서 반년간 있으면서 학술연구를 해오기도 한 그는 원심분리기 연구성과에 비해 그 산업화는 아직 뒤처져있는 상황이라며 고과학기술산업은 응당 정부에서 나서서 자금부축을 해주고 여러 면으로 지지를 주는 등 정부적인 행위여야지 개인적인 행위여서는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한다.

지금은 세계화시대이다. 날로 발전하는 과학기술경쟁력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미래 지속성발전을 감안해 우리 학자들은 지역성 학자가 아닌 세계화학자로 되여야 한다는게 그의 견해.

그는 또 우리 민족의 고차원인재 단층현상에 대해 한 조선족과학자로서의 아픈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문화대혁명전 북경에는 중국과학원에만 조선족과학자들이 60여명 있었지만 지금은 조선족이 5명밖에 없다.《앞으로 고과학기술 및 그 산업화 과제는 우리 민족 새일대들이 풀어나가야 한다》며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과학기술연구의 핵이 되는 인재를 지속적으로 양성, 활용하는것이나 현재 우리 민족 젊은 세대들은 돈벌이에만 너무 연연하는것 같다》며 우리 민족 인재류실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록송연구원은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것만이 아니다.   부모를 원망말고 전도에 실망말라.  희망을 품고 열심히 분투하면 꼭 성공의 대안에 이를수 있다》며 우리 조선족 젊은 세대들에게 격려와 부탁의 말을 해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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