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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평벌에 《어곡전》비 세워져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6-09-26 14:43:17 ] 클릭: [ ]

지리천시와 선조들의 벼농사기술이 황실의 인정을 받았던 력사

땅속에 묻혀지고 력사속에 삭막해져가던 《어곡전》(御粮田)비가 풍년의 노래, 명절의 노래 싣고 황금벼파도 출렁이는 천평벌「원 광종촌3대, 하천평(下泉坪)마을 ) 에 우뚝 세워졌다.  개산툰진정부의 주최로 22일 제막식을 가졌다.

발해사의 기재에 유명했던 로송(鲁松) 입쌀,   황실의 지정 어량으로까지 유명했던 그 입쌀이 바로 이곳에서  났다는 력사, 바로 우리 선조들이 지은 벼농사가 황실의 인정까지 받았다는 력사이기도 하였다. 하천평이란 곳은 지리천시가 안성맞춤하여 농작물이 해해년년 풍작을 거두는 곳으로  전해왔다. 65년전 조선 길주로부터 최학출이란 농민이 풍문을 듣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과연  지리천시가 좋은 곳인지라 제한된 땅에서 소출을 더 낼수 없어 아쉬워하다가  유지온상벼모육성기술을 연구해내 벼소출을 배로 올렸다고 한다.  입쌀밥맛 또한   특별해 린근 수백리에 유명해져 당시의 위만주국 황실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황실에서 최학출을 상경(지금의 장춘)시켜 1000원의 상금을  시상하면서 1000평(坪) 의 논을 위탁하여 전문 황실로 공급하는 입쌀을 생산하게 하였다는 것이  하천평  《어곡전》의  유래라 한다.

당시 최학출이 논갈이에 소를 댄외 모내기서부터 입쌀정선에까지 무공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 이야기가 대대손손 고스란히 전해오고있다. 당지 정부나 촌민들은 천평벌입쌀의 무공해와 쌀밥맛을 살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온 터라 지금도 천평벌의 입쌀은 나름의 우세를 보이고있다.

당시 그 1000평논에 표적둘레를 둘러 획분해왔다면 지리천시와 선조들의 벼농사기술이 내내 이곳 농민들의 자랑으로 전해져 내려와 시장경제시대의 오늘날 농민들 스스로 《어곡전》이란  표적간판을  길옆에 내건적도 있었다고 한다.  진정부와 천평벌농민들의 노력으로 드디여 연변주해당부문의 비준을 받고 력사의 《어곡전》터에  비가 세워짐으로써 입쌀과 지명의 홍보물로 무공해우질미기지라는 징표로 자리잡게 되였다.

《어곡전》비는 룡정간부료양원 오영묵원장의 후원으로 세워졌는데 《어곡미》예매가 전례없이 화끈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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