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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시 오성촌, ‘붉은 오각별’ 초요길 비춰주네!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吉林日报 ] 발표시간: [ 2020-07-10 15:57:05 ] 클릭: [ ]

 

 

―집체자산 근 5억원, 오성촌 촌민들 초요생활 누린다

층집이 즐비하고 상업 분위기가 짙었으며 도로가 평탄하고 교통이 사통팔달했으며 환경이 깨끗하고 초목이 푸르고 무성하다…

만물이 무성한 계절, 장춘시 관성구 흔원가두(欣园街道) 오성촌에 들어서니 ‘농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성촌당위 서기인 두일보(오른쪽 사람)가 기자들에게 촌의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10년전 까지만 해도 이러지 못했다. 집 앞에는 전부 흙길이다보니 맑은 날이면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신에 흙이 덕지덕지 묻어나고 바람 부는 날이면 밖에서 옷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성촌의 토배기인 양국충 로인이 말했다. 로인은 오성촌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최근 5년동안 변화가 크다. 평생 아파트에 살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의식주가 부족하지 않고 병에 걸려도 병 보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초요가 아닌가?”

기자들에게 오성촌의 변화를 소개하는 양국충로인(오른쪽 두번째)

오성촌의 변화는 한 마을이 전환, 발전하여 초요생활로 달리는 분투로정을 성공적으로 해석했고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들의 동경이 증명되였으며 ‘배우려면 가르치고 일하면 소득이 있으며 병에 걸리면 치료받을 수 있고 늙으면 로후가 보장되고 살려면 주택이 보장되는’ 아름다운 화폭이 서서히 펼쳐졌다.

용감히 중책 떠메고 촌민들 호주머니 두둑하게

오성촌민위원회 동쪽 건물의 ‘문천물류’ 간판이 각별히 눈에 띄는데 정원에는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실북 나들 듯 움직였는데 온통 바쁜 모습이다.

“페기된 양어장에 이 물류원을 건설하느라 전촌 촌민들이 갖은 고생을 다 했다.”고 말하며 옛일을 회상하는 촌당위 서기인 두일보(杜一宝)는 지금도 감격의 정을 금치 못한다.

문천물류단지

2012년, 오성촌의 토지가 대거 징용되면서 집체경제가 영향을 받았고 토지를 잃은 농민들도 갈수록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땅을 잃은 사람들이 실업까지 당하지 않게 하겠는가 하는 것은 촌민위원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급선무로 나섰다.

어떻게 치부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가?

다년간 사업을 하다가 잘되는 장사를 포기한채 결연히 마을에 돌아와 부임한 두일보는 자신에게 알맞는 산업을 더 크게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를 거쳐 모두들 촌의 전통산업이고 기둥산업인 물류업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일치하게 인정했다. 비록 원래 있던 물류단지가 징집되였지만 루적된 시장, 고객, 인재, 경험은 아직 남아있기에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일만 남았다.

비취호

촌지도부가 총동원되여 마을의 구석구석을 참빗질하다가 고속도로에 린접한 4환로 옆의 페기된 양어장을 발견, 규모가 적당하고 메꾸고 평평하게 만들면 물류업을 발전시키기에 가장 좋은 부지라고 입을 모았다.

두일보는 공사기간과 진도를 앞당기기 위해 그 해 겨울에 촌민들을 이끌고 못을 메꿨다. “낮에는 흙운반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다보니 우리는 저녁이면 흙을 실어왔는데 새벽 3, 4시까지 일하기가 다반사였다.” 촌민들의 마음 속에 희망이 있으니 엄청 열심히 일했다. 겨울철에 7.2만평방메터 크기의 페기된 양어장이 메워지고 평평해졌다.

2013년 4월, 물류단지 공사대상이 정식으로 착공, 5개월후 부지가 7.2만평방메터이고 건평이 1.3만 평방메터되는 창고를 가진 숙박, 음식, 배급, 주차, 저장창고를 일체화한 종합성 물류단지가 건설되여 사용에 투입되였다. 

‘하늘을 우러러 량심에 거리낌이 없이 백성들을 위해 일하면 하늘도 돕는다’. 바로 이런 ‘문천(问天)’ 정신이 오성촌의 눈에 띠는 발전을 이끌었다. 사용에 투입된 첫해에 500만원의 수입을 올렸고 2019년에는 700만원에 달했다.

올해에 촌에서는 현재의 조잡한 관리 모식을 개변하고 물류단지에 만평방메터의 창고를 더 짓고 과일도매시장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는데 7월 중순에 사용에 투입된다.

기회를 틀어쥐고 마을을 강하게 발전시키다

오성촌 동북특산전시청에 있는 20평방메터나 되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푸르고 싱싱함을 자랑하는 논들을 볼 수 있는데 벼의 자람새가 한눈에 들어온다.

렌즈에 보이는 오성촌의 벼생산기지는 집안에 있다.

곤경에 처해도 뜻을 굽히지 않고 수확이 생겨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이는 ‘오성인’들이 줄곧 견지해온 신조이다. 물류단지에서 첫 수입을 본 후 촌지도부 성원들은 농업에 시선을 던졌다.

오늘의 오성촌

마을에 경작지가 없으니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성촌당위는 새시대 농업농촌의 발전추세 를 바싹 따라 발전사상을 넓히고 지역적 속박에서 벗어나 역외로 발전시켰다. 집안시 청하진에 5,000무의 벼재배기지를 건설하여 디지털화, 지능화 관리를 전면적으로 실현, ‘오성촌압록강입쌀’ 자주 브랜드를 창립했다.

“벼의 자람새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촌의 지혜농업 플래트홈의 일부분일뿐이다.” 두일보의 소개에 따르면 2019년에 촌에서는 200만원을 투자해 인터넷+,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스마트 등 첨단기술을 리용한 스마트농업 시스템 플래트홈을 구축했다. 벼재배기지의 육묘, 모내기, 벼가을의 전반 과정에 대한 원격 감측을 하고 토양, 수질, 공기 검측결과를 실시간으로 전송받는데 소비자들은 또 QR코드를 통해 진위 감정과 원천 료해를 할수 있으며 최종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업에 제품분포, 물류정보 , 판매수치, 판매후 써비스 등 관련 데이터를 제공한다.

좋은 쌀가공은 좋은 설비를 떠날 수 없다. 오성촌에서 도입한 국내 최첨단 6세대 정미기의 일평균 생산량은 30톤에 달한다. 작년 12월에 생산라인이 가동된 이래 전국 16개 성에 팔리는데 판매량은 1,000여톤, 수입은 100여만원에 달한다.

수상락원

오성촌당위는 중앙의 ‘록수청산은 바로 금산은산이다.’는 호소에 호응하여 농촌진흥 전략을 실시하고 자체의 자연자원을 충분히 리용하여 한때는 ‘악취’로 유명한 기가저수지를 철저히 정비하고 ‘비취호’로 이름을 고쳤으며 이 자연자원에 의탁하여 농촌관광업을 활성화함으로써 촌민들이 초요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데 새로운 도움을 주었다 .

군인 출신인 두일보는 자주 공사 제1선에 나가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는다. 2016년 9월, 우리는 촌기업인 장춘북성수상락원유한회사를 등록, 설립하고 당년에 물류단지를 건설하던 열정으로 단 두달만에 수상락원 동계대상을 완공하여 20여개 빙설오락 항목이 그해 12월 관광객들과 대면했다.

이제 북성수상락원은 레저, 오락, 음식, 숙박시설을 아우르는 대형 오락장소로 발돋움하여 하루 접대량이 3,000명을 넘는다.

인심을 모아 초요생활을 누리게 하다

산업진흥 전략은 새시대 오성촌 개혁발전의 새로운 로정을 열어놓았다. 발전실천 속에서 촌지도부는 농촌 사무를 잘 처리하고 새시대 향촌진흥을 실현함에 있어서 당건설 선도가 관건이라는 것을 명석하게 인식했다.

오성촌에는 ‛당성교육기지‛가 있는데 당건설관, 촌사관, 향촌진흥관, 법치 교육관, 새시대 문명실천소와 홍색문화주랑 등 ‘4관, 1소, 1주랑’이 설치돼있다. 당건설관 천정에는 많은 작은 백색등으로 장식된 붉은색 오각별 전등이 각별히 눈부시다. “이는 우리의 창의인데 이 붉은등은 중국공산당을 대표하고 주위의 도합 107개의 작은 백색등은 오성촌의 107명 당원을 대표한다. 오성촌의 전체 당원들은 시시각각 당과 긴밀히 융합되여 있고 당의 부름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두일보는 기자에게 해석했다.

오성당성교육기지

건축면적이 5,000평방메터에 달하는 ‘당성교육기지’는 중공 당사, 오성촌 사, 오성촌 창업사가 농축되여 마치 교육과 전시를 일체화한 력사문화 주랑으로 되였다. 이제 이곳은 이미 우리 성 촌급 행정구역에서 건립한 첫 당성교육기지이며 장춘애국주의교육기지이기로도 되였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매달 15일에 주제당일 행사를 개최하며 ‘초심강당’을 개최한다… 여러해 동안 오성촌은 당건설 인도와 당원간부들의 선봉모범 역할을 두드러지게 했는바 ‘두 위원회’ 지도부 성원들은 소조를 나누어 기업에 대하여 책임제를 실시하고 1선에 심입했다. 동시에 당원의 자체 조건에 따라 전 촌의 직무가 없는 당원들에게 일터를 만들고 직책을 정하고 당위 지도부와 당원승낙서를 공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당원들마다 ‘일터가 있고 직무도 있으며 책임이 있고 담당도 있도록’ 했다.

당건설이 이끄는 이 선명한 기치하에서 오성촌의 산업발전은 번창하고 생기발랄했으며 사람마다 치부하여 초요사회에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비전이 바야흐로 실현되고 있다.

모든 촌민의 신농합작의료보험료를 납부해주었고 5보호 가구를 집중적으로 부양하며 촌민의 모든 수도세를 부담하고 빈곤학생의 취학난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며 촌민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장려한다…

현재 오성촌 집체자산은 근 5억원, 작년에는 경제수입 1,000만원을 실현, 촌민들의 일인당 수입은 3만원에 달했다. 집체경제가 발전하는 동시에 일련의 민생보장은 ‘오성인’들로 하여금 공동건설과 공동향유 과정에서 더욱 많은 행복감을 얻게 했다.

“이 사진들은 모두 우리 촌민들이다.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우리는 일할 의욕이 생겨난다.” 오성당성교육기지의 촌사관내의 대형 ‘웃는 얼굴 벽’ 앞에서 두일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촌민들이 계속 웃으며 살도록 할 것이다.”

/길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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