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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기가 낸 ‘시험문제’에 광동촌 ‘답안지’ 바쳤다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人民网 ] 발표시간: [ 2020-07-15 20:00:02 ] 클릭: [ ]

 

2015년 7월 16일, 습근평 총서기는 광동촌을 찾아 촌민들에게 세가지를 당부했다. /자료사진

―광동촌, 습근평 총서기가 다녀가신지 5년만에 이런 변화들 생겼다

장백산 아래, 해란강반이다. 쪽빛 하늘 아래에 푸르른 생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원생태 ‘천연색 벼그림'이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의 들판에 펼쳐져 있다.

2015년 7월, 습근평 총서기는 길림성에 와서 고찰, 조사연구할 때 광동촌을 찾아 세가지를 당부했다. 즉 량식 브랜드를 내놓아야 하고, 새농촌에서‘화장실혁명'을 해야 하며, 전면적인 초요사회를 실현하는 데서 어느 소수민족도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였다.

5년 후 ‘탄탄대로(大道康庄)—인민넷 옴니미디어(全媒体) 조사연구행팀'은 습근평 총서기가 고찰한 발자취를 따라 광동촌을 방문하여 새농촌 발전의 맥박을 들어보고 산마을의 거대한 변화를 느껴보았다.

5년전, 습근평 총서기가 광동촌의 논두렁에 서서 벼의 자람새를 살펴보고 논관리를 하고 있는 촌민, 농업기술 일군들과 교류했다./자료사진

벼꽃 향기 넘치는 ‘공유논’, 치부의 길 넓혀주네

광동촌에 막 도착하자 거무스름한 얼굴에 안경을 쓴 젊은이가 기자들을 논으로 안내했다. “2015년에 총서기는 이 곳에 서서 논을 살펴보았지요. 지금은 우리 촌의 ‘공유논’입니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한 씩씩한 이 젊은이가 바로 광동촌 제1서기 현걸이다.

5년전, 습근평 총서기는 광동촌의 논두렁에 서서 벼의 자람새를 살펴보고 논관리를 하고 있는 촌민, 농업기술 일군들과 교류했으며 증산 기술조치를 세분화하여 풍작을 거둘 것을 그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광동촌의 ‘공유논'. 인민넷 기자 왕천락 찍음

지금 바라보니 푸르고 싱싱한 벼 논판에‘국가 부강(国家富强)',‘민족 부흥(民族复兴)’이라는 글자가 한어로  새겨져 있어 청산록수, 람천백운과 조화를 이루었다.

“‘공유논'이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현걸은 이렇게 말했다.

촌민위원회에서는 벼재배전문합작사를 설립하여 분산된 토지를 통합하여 다시 여러 뙈기로 나누었다. 한뙈기에 100평방메터씩 되는데 사회의 인수를 받는다. 매 뙈기의 논 인수가격은 1,000원이며 인수인은 일련의‘개인 맞춤형’록색입쌀 재배봉사를 받는다. 벼가 무르익으면 직접 수취인에게 우편으로 보낸다.

‘공유논'은 광동촌 논면적의 60%를 차지한다. 2018년과 2019년에 광동촌은 동서부 협조방조부축의 기회를 다잡고 ‘공유논’14,000분을 성공적으로 내놓아 500만원의 수익을 올림으로써 촌민들의 매인당 년간수입 만원씩 더 올렸다. 이밖에 촌에서는 또 관광, 민박을 발전시킴으로써 촌민들의 수입을 높였다.

‘탄탄대로— 인민넷 옴니미디어 조사연구행팀'이 광동촌 민가에서 취재하고 있다. 리양 찍음

올해 일흔이 된 촌민 주금숙은 ‘공유논’시범대상의 수익자이다. 그는 습근평 총서기가 광동촌에 왔을 때 조선족춤을 추었다. 기자와 촌주재 간부를 만난 주금숙 아주머니는 그녀의 집에 가서 얘기하자며 열정적으로 안내했다. 아주머니의 집은 깨끗하고 널직했다.

그녀는 흐뭇해하며 장부를 따져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는 외에 다른 수입이 없다 보니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 지금은 토지를 도급 맡겨서 해마다 7,000원의 수입이 생기는 외에도 일인당 쌀 300근씩 분여받을 수 있단다.

                         광동촌의 논에서 현대화 농기계로 수확하고 있는 농민./자료사진

“‘공유논'은 중간상인이 차액을 버는 고리를 직접 건너뛰다 보니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리윤이 더 많아졌습니다. 공유논의 인수자 측으로 말하면 그들은 소비자로 되는 것이자요. 예전에는 전국 시장에서 제품을 찾았는데 고가로 구매한 쌀이라고 해서 품질도 꼭 좋은 것은 아니였어요. 공유논은 이런 고민까지 해결했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상무위원이며 화룡시당위 서기인 김렬은 인민넷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중국은 13억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자신에 의거해 량곡생산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량식도 브랜드를 내놓아야만 가격도 좋고 효익도 좋지요.” 5년래, 광동촌은 습근평 총서기의 간곡한 당부를 명기하고 농업에 살손을 댔다. 

“총서기는 조사연구할 때 량식 브랜드를 만들 데 대해 강조하셨는데 나에게는 아주 큰 충격이였어요.” 총서기와 교류할 때의 정경을 회상하면서 순철유기입쌀농장유한회사의 책임자인 김군은 즉시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김군은 광동촌 토배기이다. 수년 전에 귀향창업한 후 모든 정력을 벼 재배와 가공에 쏟아부었다. 본인이 운영하는 쌀가공공장에서 그는 우람진 벼가공기계를 가리키며 생산가공과 판매 과정에 대해 막힘없이 소개했다.

“당신들이 가공한 쌀은 얼마에 팝니까? 판매량은 어떻게 되는지요?”

“쌀 한근에 최소 6원에 팔고 평균 가격은 8원 남짓한데 나는 해마다 없어서 더 못팝니다.”라고 말하는 김군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김사장님, 우리는 어디에서 당신의 제품을 살 수 있나요?”

“우리 쌀은 주로 해외판매를 하는데 지금은 온라인 판매도 합니다. 위챗을 추가하면 직접 구매 가능합니다.”

 
광동촌의 논에서 수확한 황금낟알들./자료사진

“인터넷에서는 어떻게 사나요? 이 쌀은 브랜드가 있습니까?”

“내가 벼농사를 갓 시작했을 때, 브랜드‘맛있다(吗西达)'를 등록했는데 조선어로 맛이 있다는 뜻이지요. 총서기가 오셔서 우리에게 량식 브랜드를 만들라고 당부하시길래 나는 또 ‘해란강변 광동촌'을 등록했는데 전자상거래 플래트홈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현걸은 광동촌의 쌀산업 발전에 대해 명확한 구상을 갖고 있다. “쌀산업은 우리 촌의 빈곤해탈부축 산업에서의 중요한 력량입니다. 앞으로 우리는‘화룡입쌀'을 만들 계획인데 브랜드의 지명도를 널리 알려 촌민들에게 더욱 많은 수입을 올려주렵니다.”

시골마을의‘화장실혁명',‘볼일'을 더욱 편하게

령하 20-30℃의 날씨에 볼일 보려면 실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 가야 했다. 추위에 벌벌 떨었고 눈까지 내리면 자칫하다간 미끄러 넘어지지가 일쑤였다. 동북 농촌에서 생활하자면 재래식 변소를 리용하는 것이 가장 간고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습근평 총서기는 광동촌에서 조사연구할 때 ‘화장실혁명’문제를 특별히 제기했다. “새농촌 건설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하지만 ‘화장실혁명'을 하여 농촌 대중들로 하여금 위생적인 화장실을 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수세식 화장실 덕을 본 송명옥로인./자료사진

5년 후에 광동촌을 거닐어보니 길 량옆엔 꽃송이들이 다투어 피여나고 향기가 코를 찌른다. 집집마다의 뜨락엔 재래식 화장실의 이상한 냄새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작은 화장실'이지만 ‘큰 민생'과 련계되고 ‘큰 문명'과 관계된다. 화장실문제는 작은 일이 아닌바 해결하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북의 농촌에서는 재래식 화장실 개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오수배출 문제입니다. 지금 광동촌은 집중오수관망 방식을 채택했지요.” 화룡시 주택건설국 부국장 고정은 이렇게 말하면서 기자들을 촌민 최창해네 집으로 안내했다.

‘화장실혁명'은 촌민들로 하여금 위생적인 화장실을 리용할 수 있게 했다./인민넷 기자 왕천락 찍음

원래 본채와 몇메터 떨어진 뜨락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은 이미 철거되였다. 본채 한켠엔 촌에서 집중적으로 개조해준 실내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새하얀 벽에 유백색의 타일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좌변기, 세면대, 샤워기, 세탁기 등이 구전하여 도시의 화장실과 다름이 없었다.

“실내 화장실을 쓰니 각별히 편리하고 위생적이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여름에도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 화장실을 개조해준 정부에 감사를 드린다.”…… 마을을 방문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화장실혁명'에 대한 촌민들의 분분한 찬사다.

  

광동촌의 새 모습/ 리양 찍음

이 화제를 꺼낼 때마다 주금숙 로인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올리군 한다. 그는 기쁜 나머지 이렇게 말한다. “동북의 겨울은 아주 추워 화장실에 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였지요. 지금의 화장실은 편리하고도 깨끗합니다!” 깨끗한 환경 외에도 주금숙은 마을의 모습과 전 촌의 조명에 대해 특별히 만족한다. “마을은 밤에 아주 아름다워요!”

5년래, 화룡시에서는 광동촌의 ‘화장실 혁명'과 집중오수관망 개조에 1,700만원을 투자, 지금은 전 촌의 210호 촌민들이 모두 무료로 실내 화장실을 리용할 수 있게 되였고 209호 가정에서 지선배관망 련결을 완수, 올해 새로 건설된 두개의 오수처리시설은 촌민들로 하여금 ‘볼일'을 더욱 편하게 볼 수 있게 했다.

광동촌 촌민들의 수세식 화장실 내부./자료사진

광동촌의‘화장실혁명'은 화룡시 농촌 거주환경의 새로운 변화의 축도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상무위원이며 화룡시당위 서기인 김렬은 이같이 말했다. 2020년 10월까지 전 시의 재래식 화장실을 모두 제거하고 오수처리를 전부 완수하며 농촌 식수 공급, 오수처리, 쓰레기처리는 도시와 같게 될 것이다.

백성 충족, 초요생활에서 그 누구도 빠져서는 안된다

“붉은 해 솟았네, 천리 변강 비추네, 장백산 아래 사과배 열리고 해란강반 벼꽃 피네...”

성수나는 노래가락이 광동촌 촌민위원회 회의실에서 흘러나온다.

5년전, 습급평 총서기가 광동촌 촌민위원회 회의실에서 조선족민속공연대의 공연을 관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자료사진

회의실에 들어서니 60여세의 로인들이 한창 조선족무용 〈붉은 해 변강 비추네〉를 공연하고 있었는데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운치가 있어 보였다.

5년전, 바로 이 회의실에서 습근평 총서기가 로인들의 열정에 넘치는 민족무용에 이끌려 발길을 멈춘 채 구경한 적이 있다.

“습근평 총서기는 우리 조선족군중들이 춤을 아주 잘 춘다며 춤동작마다 멋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당시를 회억하는 조선족민속공연대 대장 김종일의 말에는 희열과 행복이 흘러넘쳤다.

  

광동촌 촌민들이 한창 조선족민속무용을 선보이고 있다./리양 찍음

이 곳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전면적인 초요사회 건설에 그 누구도 빠질 수 없고 어느 소수민족도 빠져서는 안되며 모두 초요생활을 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빈곤인구가 온당하게 빈곤에서 해탈되고 군중들이 초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근본적인 도경과 장구지책이다. 입쌀산업 외에도 광동촌에서는 민족특색에 발 붙이고 민속관광과 향촌민박을 적극 발전시켰다.

 

 광동촌 농민문예공연대의 문예공연./김성걸 찍음

촌민위원회와 가까운 곳에‘두 끝은 학처럼 우뚝 솟아 있고 가운데는 배처럼 평행을 이룬’작은 집이 울긋불긋 꽃밭 속에 숨어있었다. 작은 집에서 연변광동조선족민속관광봉사유한회사의 책임자인 양려나가 광동촌을 소개했다. "광동촌은 지금 세상에 널리 알려진 관광촌으로 되였습니다. 이 집과 같은 민박이 광동촌에는 60여집이나 있습니다. 우리는 촌의 빈곤호를 채용하여 관광전동차를 운전하게 하며 촌의 조선족무용공연대에도 초빙하였는데 적잖은 빈곤호들의 취업을 돕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현걸 서기가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몇년래 촌의 민박산업이 매우 빨리 발전했어요. 관광성수기만 되면 기본적으로 매일 만원이며 장사가 어찌나 잘 되는지 촌민들에게 짭짤한 수입을 안겨주지요. 외지 관광객들은 촌민들의 온돌에 앉아서 한담을 하거나 찰떡을 먹고 감주를 마시면서 로인들이 들려주는 전쟁이야기도 듣습니다. 인기는 물론, 재운도 모두 불러 온 셈이지요.”

광동촌 민박./리양 찍음

"이전보다 많이 달라졌습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우리 촌에 유람을 옵니다. 지금 우리 무용대는 한해에 100여차 공연을 합니다. 이전에는 많아서 30차밖에 공연하지 못했지요.” 최근 몇년간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김종일은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촌에서 적잖은 보조와 분배금을 줍니다. 병 보일 때도 의료보험이 있어 걱정이 없구요.”

광동촌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자료사진

광동촌의 금후 발전에 대해 현걸 서기의 머리 속에는 뚜렷한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계속해서 량식산업을 발전시키면서 ‘공유논'을 보급시킬 예정이다. 그 외에도 향촌관광을 추진하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민박과 민속을 함께 발전시킬 타산이다. 그는 광동촌에 더욱 좋은 발전전망이 있기를 바랐으며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귀향창업하여 함께 고향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건설해나갈 것을 바랐다.

광동촌, 습근평 총서기가 다녀간 아름다운 농촌마을은 5년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촌민들의 초요생활을 향한 발걸음도 한걸음 한걸음 현실로 되여가고 있었다.

/출처: 인민넷, 편역: 길림신문 유경봉 최승호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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