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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6년차 홍성범, 농사할 수록 재미 쏠쏠!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1-11 10:41:42 ] 클릭: [ ]

홍성범농민이 수확한 벼를 트랙터에 싣고 있다.

해란강의 상류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60리 평강벌은 연변에서 규모가 가장 큰 벼생산기지이자 소문난 곡창이다. 토양이 비옥한데다 해란강, 장인강, 복동하의 맑은 물로 관개하다보니 소출이 높고 밥맛이 좋아 예로부터 살기 좋은 버덕(넓은 들판의 방언)이라 불린 곳이다. 이 평강벌의 서남쪽 언저리에 자리잡은 화룡시 팔가자진 중남촌에서 생산하는 록성표입쌀이 요즘 인기가 높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것은 벼수확이 거의 끝나가는 10월말이였다.

“평소 저를 도와주는 동네분들의 벼가을을 먼저 해주다나니 좀 늦었습니다만 이제 3일가량 하면 끝날 것입니다.”황금파도 넘실대는 논판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화룡시 팔가자진 중남촌록성벼전업합작사 사장인 홍성범(51세)이다.

벼수확정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홍성범농민.

화룡시직업고중을 졸업하고 1994년부터 청도의 소양강무역회사에 근무하다가 2000년부터 연길에서 삼성굴착기부품상점을 경영한 경력이 있는 홍성범씨는 2015년부터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싶어 가게를 접고 귀향했단다. “젊었을 때는 농사일이 지겹기 그지 없었습니다. 수입도 얼마 되지 않았고 또래 친구들이 대도시로, 외국으로 나가다보니 농촌에 있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던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날로 치렬해지는 도시의 시장경제의 경쟁을 피해 비옥한 고향의 땅을 선점하는 것이 경쟁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규모화농업을 위한 만단의 준비를 하는 한편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고향을 지키는 로인들의 토지를 하나둘 임대받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2016년 2헥타르의 논으로 시작한 농사가 2020년에 와서는 15헥타르로 면적을 불렸다.

“모든 일을 기계로 하니 힘들지 않습니다. 지난 2017년에 10.8만원으로 구매한 이 수확기는 벼수확과 탈곡을 일차적으로 할 수 있어 작업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손으로 가을하고 묶어 하지로 무졌다가 싣걱질하여 다시 탈곡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탈곡하던 이야기는 진짜 옛날이야기로 되였다.

“30여명 로력이 십여마리 소를 동원하여 열흘간 해야 할 일을 이 기계가 하루에 해치우는 셈이지요.”마침 홍성범을 거들어주기 위해 밭에 나왔던 이웃집 농민 최상렬이 이렇게 말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 “어려서부터 옆에서 지켜봤는데 참하고 까근한 사람이였습니다. 이상분을 존경하고 모를 것이 있으면 열번이라도 찾아와 물어봅니다. 그런데 이 젊은 친구가 이렇게 농사를 쉽게 잘 지을 줄은 몰랐습니다. 해마다 밭면적을 늘리고 수입을 높이는 것을 보니 곁에서 보기에도 아주 흐뭇합니다.” 이웃집에 사는 최상렬은 홍성범이 삼촌처럼 따르는 분이란다.

그외 홍성범한테는 매번 농망기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바로 화룡시 룡성진 합신촌에서 옥수수농사를 짓고 있는 외조카 최영이다. 삼촌이 수확기로 벼를 수확하면 트랙터에 벼를 실어 창고에 운송하는 일은 언제나 그의 몫이였다. 옥수수 수확은 좀 늦게 해도 괜찮기 때문에 외삼촌네 가을걷이를 도와주러 왔으며 이미 절반가량 수확했다고 최영은 말한다.

벼수확기에서 풍기는 먼지 때문에 마스크는 물론 고무안경까지 착용하고 온몸을 빈틈없이 감싼 홍성범은 올해 태풍의 영향으로 많이 근심했지만 다행히 가을날씨가 잘해주어 평년수준은 될 것 같다고 기뻐한다. 지난해에는 헥타르당 15,000근이상을 수확했지만 올해는 1,2000근 좌우로 내다보고 있었다.

외조카와 함게 벼를 다락에 올리고 있다.

그를 따라 그의 창고에 도착하니 일년사시절 습기를 방지하고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다락구조의 덩실한 벼창고에 최영이 뜨락또르에 싣고 온 벼가 자동흐름선을 타고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입쌀을 제공하기 위하여 이 다락을 지었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정미하여 오래 보관하면 밥맛이 떨어집니다. 주문하는 만큼 정미하여 보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소비자들을 배려하는 그의 섬세함을 엿볼수 있었다.

“2016년부터 진정부와 촌의 지지하에 이 터를 매입하고 창고를 지었는데 점차적으로 이만한 규모를 갖추게 되였습니다. 농기계는 뜨락또르 두대에 수확기와 이앙기를 갖추었으며 저쪽에 있는 논둑을 감는 기계와 써레질하는 기계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한전이나 수전의 곡식대를 모으는 기계도 올해에 갖추었습니다. 저쪽 논가운데 건설한 육묘남새하우스는 아마 이 평강벌에서는 가장 큰 비닐하우스일 것입니다.” 홍성범은 창고울안과 논밭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일일히 소개하고 나서 규모화 농사를 하려면 현대화농업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투입한 돈이 벌써 백만원을 넘기였다고 한다.

벼다락에 올린 벼가 이미 약 30톤이 넘어되며 이제 수확이 끝나면 60톤 좌우 될 것이라고 수확량을 내다보는 홍성범은 가장 큰 문제는 시장확보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은 밥이 차분하고 찰기가 있고 향기가 좋은 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밥이 맛있는 이런 쌀은 소출이 낮고 병충해에 약합니다. 그래서 많은 농민들은 이런 품종을 심으려 하지 않습니다. 수확량이 낮고 재배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시장개척과 소비자 확보를 위해 계속 길경81(吉梗81)호를 심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을 위해서지요.”

2019년 연변농산품 전시회에서 소비자들과 교류하고 있는 홍성범(좌).

그는 농사에도 학문이 많다고 하면서 다년래 경험이 풍부한 고향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기술지도를 받았으며 관련서적을 뒤지면서 상품성이 좋은 입쌀을 생산하기에 힘써왔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연변농산품전시회에 처음으로 자기가 생산한 입쌀을 전시했는데 생각밖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자랑한다. “그때 현장에서 밥을 지어 시식하게 하였더니 효과가 좋았습니다. 연길의 우리마트에 입점하게 되였고 몇몇 규모급식당에서 제가 생산한 쌀을 장기간 구매하겠다고 계약까지 체결했지요.” 그의 얼굴에는 어느덧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그에 만족할 수 없다고 한다. 합작사에 든 7명 농민들을 도와 더 좋은 입쌀을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팔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썼다. 그는 온라인판매와 오프라인판매를 겸하여 하면서 바삐 움직였는데 벼파종으로부터 모내기, 기음, 수확, 입고, 정미 등 여러 생산과정을 핸드폰으로 촬영하여 위챗이나 틱톡으로 고객들에게 수시로 알려준다고 말한다.

연길 우리마트에서 록성표입쌀 판매정황을 료해하고 있는 홍성범(좌).

귀농 6년차를 맞는 홍성범은 농사는 할 수록 재미가 쏠쏠하고 신심이 커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떠나간 고향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농사를 배우는 재미와 수확의 계절에 다 함께 일하고 또 자기가 생산한 입쌀을 기꺼이 구매해주는 소비자들을 생각하면 귀농이라는 자기의 선택이 얼마나 정확하였는지를 알게 되고 그래서 더구나 힘이 난다고 말한다.

현재 그가 생산하는 입쌀은 북경, 상해, 광주 등지의 친척, 친구들의 도움으로 비빔밥집, 소꼬리탕집 등 식당에 장기적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온라인으로도 전국 각지에 판매되여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앞으로 더 맛있는 입쌀을 생산하여 전국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입쌀생산자가 돠여 중남촌을 알리고 평강벌을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 요즘 그의 소박한 꿈으로 되였단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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