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촌민들과 함께 치부의 길 탐색

편집/기자: [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8 00:15:01 ] 클릭: [ ]

룡정시 지신진 공농촌당지부 서기 김길송, 빈곤모자 벗어던지고 촌민들과 행복한 나날을

음력설이 다가오자 쌀가공부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쌀을 포장하고 있는 김길송씨,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 쌀은 바로 우리 빈곤호들에게 배달될 쌀이지 말입니다. 해마다 빈곤호에 두자루씩 나눠주고 있는데 기뻐할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뿌듯해납니다.”

룡정시 지신진 공농촌당지부 김길송 서기는 다년간 촌민들을 이끌고 2018년 빈곤모자를 벗어던졌다. 날로 변해가는 촌마을을 바라보면 오늘도 발걸음이 가볍기만하다는 김길송씨, 여러해동안 촌민들과 함께 입쌀, 황소 등 일련의 산업들을 발전시켜 부유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1987년부터 근 20년간 룡정시생산자료에서 사업하던 그는 2005년 출국길에 올라 한국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2009년 다시 고향인 공농촌으로 돌아왔다. 갓 돌아왔을 때까지만 하여도 고향 마을사람들의 생활에는 큰 진보가 보이지 않았고 딱히 돈을 벌 방도가 없어 방황하는 촌민들이 많았다. 더이상 마을촌민들이 이처럼 두손 놓고 앉아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그는 다시 출국길에 오르기를 깡그리 포기하고 농촌 우대정책에 대해 료해하기 시작했다.

여러방면으로 알아보던중 그는 공농촌이 규모양식으로 나간다면 꽤나 전망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심하면 밀어부치는 성격인지라 2010년 김길송은 공농촌에 룡정시하남양식농민전문합작사를 세우고 100여호 촌민들을 끌여들여 이를 함께 이끌어가기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합작사 설립 초기 스무여마리 소를 사들여 일단 작은 규모로 시작은 했는데 과학적인 사육기술이 결핍하고 경험도 없었기에 많은 소들이 병에 걸려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몰라 애만 태웠다. 합작사를 세우기만 하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았는데 시작부터 큰 난관에 봉착했던 것이다.

룡정시 지신진 공농촌 소사육기지

시련이 닥쳤지만 그는 더 굳세게 마음 먹고 과학기술을 소홀히 대했던 자신을 성찰하며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기로 결심했다. 어디에서 넘어지면 그 곳에서 일어선다는 말이 있다고 무언가 제대로 해보기도전에 산산쪼각이 날 위기가 닥쳤지만 그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김길송은 인테넷을 검색하고 사육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소사육 지식과 방역기술에 대한 인식을 습득하게 하고 주동적으로 농민과학기술 소사육 강습반에 참가하여 체계적으로 과학기술 소사육법, 사료비방, 쾌속육성, 동물검험검역, 질병방지 등 다방면 지식을 학습했다. 그렇게 배워온 사육기술에 따라 소를 기르고 정기적으로 질병방역을 진행하였더니 점차 없던 노하우가  생겨났으며 소가 한두마리씩 늘어나더니 사육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섬세한 경영모식은 통했다. 근 10년간의 분투를 거쳐 현재 사육규모는 2,200평방메터에 달하고 고정자산 150만원, 소 180마리에 년간 70여만원을 웃도는 수입도 생겨났다. 현재 그는 스스로 실패와 실천을 거듭해가며 쌓아온 경력으로 군중들에게 자신의 치부경험을 전수해주고  기술지도를 제공하며 군중들을 공동 치부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정육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공농촌 소고기

최근 몇년간 김길송은 합작사를 통해 마을의 땅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고 벼재배하여 판매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11월에는 촌에 입쌀 가공공장을 세워 생산, 가공, 판매를 일체화한 산업체계를 형성하였다. 지난해 이 마을의 입쌀 생산량은 30만근에 달했는데 지금 기본상 판매된 상황이다. 그는 "우리 합작사에서 농사를 짓고  자체 가공공장에서 가공을 거쳐 상해, 녕파 등 곳에 팔고 있는데 촌민들의 수입이 20%정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공농촌합작사 쌀가공공장 내부

현재 공농촌당지부 서기인 그는 촌민위원회 촌간부들의 단결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고 있다. 하여 촌민위원회의 장기발전 효과기제를 구축하여 제반 규장제도를 수립하고 그것을 건전히 하며 분공을 명확히 하였다. 그는 촌민위원회 성원이면 사람마다 책임이 있고 목표가 있으며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늘 강조하면서 지도부의 결집력과 전투력이 크게 증강시켰다.

“전 촌 로인들과 마을 사람들의 서기로서 대중과 밀접히 접촉하고 그들의 질고를 관심하며 그들의 생활상 곤난을 해결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으로 간주하며 한마음이 되고 모순이 적어야 촌경제가 발전할 수 있고 촌민들이 부유해질 수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촌민들의 생활을 관심하는 김길송은 촌당지부 서기를 맡은이래 촌집체 경제를 발전시키고 기초시설 건설을 보완하며 촌급 문화생활을 풍부히 하여 농촌의 면모를 크게 일신시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촌민 거주환경 정리정돈아래 그는 솔선하여 전체 촌간부와 촌주재간부, 인민군중들을 대동하여 전 촌마을 쓰레기를 깨끗이 정리여 량호한 위생 및 생활환경을 마련해주었다.

룡정시지신진공농촌 촌민 리옥금은 “빈곤호라든가 오보호 특히 상주인원에 대해 관심을 많이 돌리고 늘 보살펴줍니다.  년말이나 명절 때면 합작사 사원들에게 쌀이나 기름을 나눠주며 명절문안을 전해오기도 합니다”라고 감격해 말했다.

2020년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로 룡정시는 긴급 통지를 발부하고 도시봉쇄 공고를 내렸다. 김길송은 긴급 사태에 대비해 즉각 회의를 소집하고 확성기와 순라경찰차, 위챗그룹을 통해 당의 관련 정책을 전면적으로 전달하고 군중들의 공황심리를 달래주었다. 동시에 그는 촌 주재간부, 촌간부들을 조직하여 집집을 찾아다니며 상황과 인원을 조사하고 전염병 발생상황 보고제도를 세워 매일 두차례씩 검사결과를 보고하며 전염병 예방사업에 앞장 섰다.

촌민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그들의 질고에 관심을 돌려 진심으로 그들의 고충을 헤아려 난관을 헤쳐가다 보니 촌민들 사이에서 그의 신임은 점차 높아졌고 그의 말에는 점차 무게가 실리게 되면서 촌민들도 더욱더 그를 믿고 의지하게 되였다.

일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신념을 견지해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원칙을 고수하고 참을성 있고 세심한 사업작풍과 꾸준한 헌신정신으로 그는 열정적으로 당건설 사업을 추동하여 부단히 발전시켜 당원과 군중들의 호평 속에서 공동 치부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이 시대의 멋진 촌서기로 거듭나고 있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0

관련기사 :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