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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랑자군’의 빈곤전승기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1-03-15 07:30:00 ] 클릭: [ ]

길림성의 1,489명 촌주재 제1서기중 22명의 녀성이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앳되였던 그녀들은 빈곤구제 제1선에 뿌리를 내리고 빈곤구제 일선의 성숙한 ‘랑자군’으로 되였다.

실제적인 일들을 하는 ‘인형 얼굴의 제1서기’

최근, 사평시 이통만족자치현 이도진 석장촌의 촌주재 제1서기인 류우항의 핸드폰은 자주 련락이 되지 않는 상태에 처해 있다. 대부분 시간 그녀가 각 마을들을 고찰하러 다니기 때문이다. 올해, 그는 빈곤해탈촌에 뜨락경제를 발전시킬 새 계획을 세웠다.

이통현사법국에서 촌에 파견해 온 류항생은 인형같은 얼굴을 가졌는데 겉모습만 보면 고생같은건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다. 2017년, 31세의 그녀는 촌주재 공작대에 뽑혔다.

“도시에서 사람을 보내왔다”는 소식을 듣고 줄지어 찾아왔던 마을 사람들이 류우항을 만나보고는 모두 되돌아 갔다.

“우리 손녀보다도 어린데 무슨 말이나 섞겠어?” 몇몇 촌민은 그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듬해에 류우항은 촌주재 제1서기를 이어 받았다. 사법국에서는 그녀가 촌주재 생활에서 겪을 고생을 견디지 못할가 념려되여 그녀를 사법국에 다시 돌려보내려고 했다. 오기가 생긴 그녀는 동의하지 않았다. “기어코 일을 해서 촌민들에게 보여주고 말거야.”

2018년 9월에 류우항(좌)이 사평시제1서기전시판매회에서 개암을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여러 곳에서 전수받은 경험을 통해 중약재인 백합을 재배하면 원가가 낮고 수익이 좋으며 관리하기가 간단할 뿐더러 환경도 아름다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매일 촌민들을 찾아가 계산기를 두드려주었다. “큰 것들은 약재로 팔고 작은 것들은 종자로 팔 수 있는데 적게 쳐도 근당 10원씩 반무만 심어도 1,000원씩 벌 수 있어요.”

여러번의 설득을 거쳐 빈곤호들이 작은 면적의 밭을 내놓아 시험 재배했는데 아닌걸 가구당 1,000여원씩 수입을 올렸다. 2019년에 촌에서는 개암을 팔았는데 빈곤호에 만 8,000원의 리익을 가져다 주었다.

한번은 큰비가 내려 석장촌의 주택들이 물에 잠겼다. 배수구 옆에 한시간 넘게 쭈크리고 앉아 지켜보던 류우항은 우환을 막으려면 배수구를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공사는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그녀는 결국 설계단위와 시공대들을 뛰여다니며 재건동의서를 받아냈다.

그 후, 마을에 고찰조가 찾아오자 촌민들은 자발적으로 앞다투어 나서서 말했다. “류서기가 젊다고 얕잡아 보지 마시오.일처리에서 조금도 에누리 없습니다!”

‘빈곤구제 아기’가 더 큰 힘 되다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보천산진 마가강촌은 평균 해발고가 근 1,000메터나 되여 현지인들은 ‘작은 청장고원’이라고 부른다.

2016년 1월, 길림성대만동포련합회에서 주임과원 채광결을 촌에 파견했다. 이 빈곤한 산골의 젊은이들은 외지로 나갔고 류재 촌민들은 새로 온 서기에게 배합하려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열린 촌당지부, 촌민위원회 지도부회의는 채광결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어떤 촌민들은 원래의 단위로 돌아가라며, 여기서 녀성 서기가 배겨내지 못할거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어렵다고 물러난다면 가난의 뿌리는 어떻게 뽑는단 말인가?

채광결은 포기하지 않았다. 빈곤호들에 저축이 적은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자금을 조달하여 집집마다 병아리 50마리씩 사주었고 토종닭브랜드를 등록하여 토닭알을 팔았는데 인당 1,500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후 사극나무를 재배하고 태양에너지발전소를 건설하고... 하나 또 하나의 부민강촌 산업들이 착지되여 효익을 창출했다.

2020년 8월 7일, 임신중인 채광결(앞줄 가운데)이 가족들과 마가강촌에서 사진을 남겼다.

빈곤호 리매영은 혼자서 어린 손자 둘을 돌보고 있었는데 채광결은 그에게 최저생활보장금 수속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해마다 인당 4,000원의 교육기금을 쟁취해 주었다. 촌에서는 부모들이 농번기가 되면 아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는데 이때마다 아이들은 늘 ‘채고모’의 여렸던 ‘주말 작은 식당’을 찾아 밥을 먹고 공부를 한다. 그녀는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채광결이 임신을 하자 직장 동료와 촌민들은 그녀더러 장춘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빈곤에서 벗어난 후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마을에 와서 딸을 돌보는 그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며 채광결을 꼭 껴안아주었다.

“‘빈곤구제 아기’는 촌민들과 함께 향촌진흥을 위해 분투하도록 저에게 더 큰 힘을 줍니다!” 출산 후, 채광결은 촌민들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5월경에 마을에 진달래가 붉게 피면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겠다고 전했다.

향촌진흥의 바통을 만들다

길림시생태환경국의 고급 공정사인 증려원은 도면을 갖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2017년에 교하시 표하진 청배촌에 온 후부터 도면은 촌주재 제1서기 업무일지로 바뀌였다. 일지에는 촌의 크고 작은 일들이 적혀 있다. 빈곤호들의 요구사항, 촌의 집체수입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온 등등...

길림성촌주재제1서기협회 회장을 맡은 이래 그녀는 공책에 기록할 것이 너무나 많아졌음을 느꼈다.

길림성은 2020년 1월 전국 최초로 촌주재제1서기협회를 설립했다. 그해 4월에 협회는 공식 생방송실을 개설하고 브랜드, 판매, 물류를 통일시켜 량질 농산품을 팔고 있다.

“빈곤구제 제품의 판로를 열고 향촌진흥으로 달리기 위한 플래트홈을 구축하기 위해 ‘떠나지 않는 공작대’을 육성한다.” 촌주재 제1서기들은 뉴미디어 자원을 접목시키기 위해 생방송실에 비집고 들어가서 ‘왕훙’이 되였는데 매일 저녁부터 밤 늦게까지 땀을 흘리며 목이 쉬도록 생방송을 한다고 증려원은 말한다.

증려원의 남편은 높은 월급의 일터를 포기하고 안해의 ‘내조’를 맡았다. 아들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모두 그에게 ‘업무가 다망한 제1서기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촌에 주재하면서 위독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가슴속 상처로 남아있다.

2021년 2월, 증려원은 ‘전국 빈곤해탈 난관공략 선진개인’으로 선정되였다.

지난달, 증려원은 전국 빈곤해탈 난관공략 총화표창대회에 참가하여 “영예는 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명 빈곤구제 사업일군들의 축소판이며 이 시대의 축소판입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기초교육 의료 써비스를 완벽화하고 지능농업산업과 련계하며,.. 증려원은 일지에 업무 계획을 세운다.

그녀는 “빈곤해탈은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는 향촌진흥의 바통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신화사 김진수, 고남 기자, 편역: 유경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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