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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행군대렬속의 휴대폰벨소리

편집/기자: [ 박문희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6-07-14 10:56:33 ] 클릭: [ ]

2004년 여름, 중, 일, 한 3국 청소년으로  구성된 초원탐험하계학교이벤트가 내몽골에서 개최됐었다. 찌무더운 날씨에 매일 30킬로메터 《행군》을  해야 하는 전반 려정은 십분 간고했다.

10여킬로메터 행군했을 때 대렬속 한 곳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더니 그 소리는 전염이나 된듯 확산되여 삽시에 대렬  처처에서 벨소리가 요란했다. 알고본즉 모두가 중국애들이 부모한테 행군의 괴로움을 하소연하는 전화였다. 이런 고생은 죽기보다 못하다느니 이럴줄 알았더면 안 올걸 그랬다느니 불평이 많았다.

이와 선명한 대조를 이룬것은 일본  소년들의 표현이였다. 일본애들은 야외생존조건하에서 부딪칠수 있는 극한상황에 대처할 만단의 준비로 다들 등에 중국애들보다 훨씬 큰 행낭을 짊어지고있었지만 그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았다.

모두를 놀래웠던것은 당지 수행일군들이 기중 작고 여윈 애를 도와 짐을 들어주려 했다가 그애한테 즉각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그 일본 꼬마는 이런 때 남의 방조를 받는것을 치욕으로 간주하고있는것이였다.

2년전에 보도되여 대토론을 인기했던 사실이다. 국제망신이라느니 중국애들이 일본애들만 못하다느니이런 평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물론 이 한번의 활동을 가지고 이처럼 중국 아이들 전반에 대해 분별없이 혹평을 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 일을 거울로 삼아 우리가 자성해 봐야 할 필요는 분명 있다.

상기 일본아이의 표현에서 우리는 어려움을 견디여 내는 그 애의 강한 의지가 결코 하루한시에 형성된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그 소년의 뒤에 자식을 익애하지 않고 커서 완전 자립을 할수 있도록 생활능력을 키워주는 부모가 있음을 미루어 확인할수 있다.

한편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리는―중국애들이 부모한테 하소연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어린것을 짐을 지워 먼 길에 내놓고 가슴 아파하는 부모들을 떠올리게 됨과 동시에 부모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들을 본의 아니게 해치고있지는 않는지 하는 의구심이 드는것을 떨쳐버릴수 없다.

우리는 아마 자식에 대한 보호와 과잉보호, 기대와 과잉기대, 관리와 자유방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자식사랑에 상당정도  눈이 멀어 있는것 같다.

무엇이 자식에 대한 참사랑일가? 자녀를 온실속의 화초처럼 키우는게 참사랑일가? 아이가 하자는대로 다 들어주는것이 참사랑일가? 자녀들에게 일도  좀 가르치고 고생도 좀 시키면서 어려서부터 조금씩 자립적인 품성과 독립적인 생활능력을 키워주는것이 참사랑일가? 어느것이 깊은 사랑일가?

 익애로 표현되는 과잉보호는 아이를 심신이 허약하고  자립심이 없으며 비사교적이고 집단생활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과잉보호의 리면에는체면과 욕심으로 인한 부모의 과잉기대와 지나친 간섭(주로 공부에 대한 강요)이 다분히 깔려있는것 같다. 돈도 달라는대로  쥐여주는 자유방임, 정말 고쳐야  할 사랑방법이다.

실상 자녀들은 스스로 성장하려는 충동과 성장하는 힘을 가지고있지 않는게 아니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의 그런 정당한 의욕을 믿어주고 북돋아주며  하려는 일에 필요한 요청을 받아줄 대신 그런 의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아이를  공부에만 가두어 두는데 있다. 그것이 최고사랑이라고 믿는데 있다.

휴대폰의 벨소리!

 그것이 우리에게 천둥처럼 들려 시시로 경종이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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