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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왕삼이네 식구들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09 11:00:06 ] 클릭: [ ]

뒤동산에 붉디붉은 진달래꽃이 만발하던 어느날, 왕삼(王三)이네 식구들이 우리 동네에 이사를 왔다. 그때 나는 소학교에 다녔고 아버지는 동네에서 촌장이였는데 산동쪽에서 왔다는 왕삼이네 일곱식구들을 받아들였다. 당시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직접 향(공사)정부로 달아다니면서 끝내 이사수속을 해주었다.

후에야 알게 되였는데 동네 몇몇 사람들이 구리덩이를 팔러 산동쪽으로 나갔다가 깡패들의 칼에 찔려 그 당시 촌의 전부 재산이나 다름 없는 구리판매돈을 몽땅 털리우게 되였을 때 바로 왕삼이 아버지가 귀인처럼 나타나서 위험을 무릅쓰고 구원해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그 은공을 잊을수 없어 아버지는 극구 왕삼이네를 받아들인것이다. 왕삼이는 나와 같은 원숭이띠였는데 생일이 몇달 더 앞섰다. 왕삼이는 간혹 내가 형이라 부르면 대단히 좋아했다. 헌데 나는 웬간해서는 왕삼이를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평소에는 남들처럼 삼이(三儿)라고 불렀다. 그러다 내가 동네 애들한테 업수임을 당했을 때나 아니면 왕삼이한테 맛있는 먹거리가 있을 때 나는 형이라고 부르면 왕삼이는 입이 함박만해서 뭐든지 다 응낙하고 얻어맞으면서 내 역성을 들어주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왕삼이네 형제들보다 꽤 약은 편이였다. 왕삼이네는 남자형제 셋에 제일 막내로 한살 어린 녀동생이 있었다. 왕삼이가 남자형제중 막내였기에 형님이라 부르면 싱글벙글 너무 좋아했다.

녀동생의 이름은 란이(兰儿)였는데 눈이 크고 얼굴색이 좀 감실감실했지만 그런대로 꽤 이뻤다. 란이는 순진하고 소탈한 성격이였기에 인츰 동네 애들의 호감을 샀다. 왕삼의 두 형님은 학교에 못 가고 일찍부터 부모를 따라 농사일을 했다. 어린 왕삼이와 란이는 이사온후 우리가 다니는 동네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들은 말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매일 명심해서 학교에 다녔다. 공부는 제일 못했기에 늘 내 도움을 받았다. 내가 해놓은 숙제를 그대로 베꼈고 아래반에 다니는 란이는 내가 설명해주거나 대신 써주었다. 하여 그들은 나를 선생님처럼 존경했다.

왕삼이네 집식구들은 특별히 인정스러웠다. 내가 놀러 가면 온 집식구들이 열정적으로 대했다. 허리까지 오는 높다란 구들마루를 옷소매로 썩썩 닦아주면서 어서 앉으라고 자리에 안내한후 뜨거운 물을 떠다주었다. 찌는듯한 삼복철에도 뜨거운 물을 마시라고 하니 나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번마다 눈치 빠른 란이는 살짝 웃으며 거멓게 색이 오른 커다란 바가지로 찬물을 그득 떠다주었는데 나는 제꺽 받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러면 왕삼이네 식구들은 모두 웃었다.

왕삼이네 늙은 할머니는 비취같이 만들어진 긴 담배대통물주리를 호물거리는 입에 물고 늘 내곁으로 다가앉으면서 《으응, 아무리 봐도 참 잘난 녀석이지!》 하면서 감탄했다. 할머니 몸에서 담배냄새와 이상한 냄새가 찐하게 풍겼다. 할머니의 발은 아기발처럼 작고 오무라들었는데 걸을 때면 빼뚤빼뚤 힘들어했다. 몇대 안 남은 이발마저 시누렇게 변했다. 언제 보나 풋풋한 란이도 이제 나이들면 저렇게 될가 하는 생각이 이상하게 떠올랐다.

왕삼이 엄마도 드문드문 할머니와 동무하여 담배를 피웠다. 고운 비취색의 물주리를 입에 물고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나게 빨아대는 늙은 할머니의 호물거리는 주름진 볼을 재미 있게 구경했다. 나는 왕삼이네 할머니를 그냥 《대통할머니》라고 불렀다. 《대통할머니》가 뭘 물으면 나는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참 똑똑한 녀석이지. 공부 못한 니들은 암만 해도 이 손주의 발뒤축에도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항상 나를 칭찬했다. 나도 그덕에 한어를 많이 배워 학교에서 한어성적이 제일 높았다.

그때 왕삼이네 집에 가면 늘 닦은 해바라기씨나 락화생을 먹을수 있었다. 어떤 때는 주근주근하고 구수한 전병(煎饼)도 얻어먹었다. 새노랗게 잘 구워진 전병으로 어른들의 엄지손가락만큼 굵직한 허연 대파(大葱)를 둘둘 말아서 질근질근 씹어먹었는데 혀가 홀랑 넘어갈 정도로 맛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집에 와서 엄마 보고 그런 전병을 구워달라고 했더니 엄마는 손으로 입을 막고 킬킬 웃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이 동네사람들은 그런 전병은 생전 한번도 만들어보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는 전병 대신에 찰떡이나 쉰떡 같은걸 만들어 자주 왕삼이네 집에 가져갔다. 왕삼이네는 전병보다 그것이 훨씬 더 맛이 있다고 했다. 왕삼이네 할머니의 어둑컴컴한 작은 방에는 머리가 엄청 크고 얼굴이 불깃불깃한 무섭게 생긴 불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불그스레한 전등까지 켜놓은 그 방에서는 언제나 고약한 향냄새가 풍겼다. 

《여기는 매일마다 네놈들이 무탈하고 건강하라고 기도를 드리는 곳이야!》

《대통할머니》는 정색해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 그 방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내가 이 동네에서 공부를 제일 잘한다는걸 알게 된 《대통할머니》는 《어제저녁에두 우리 잘 생긴 손주가 크거들랑 장원급제하라구 온밤 기도했던거야!》라면서 친손자들을 제쳐놓고 나만 잔뜩 칭찬했다. 그래도 왕삼이와 란이는 《옳아요, 옳아요!》하면서 웃었다.《대통할머니》는 늘 손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놈들, 사람이란 한번 진 신세는 일생을 두고 잊지 말라는 말이 있네라. 네들도 평생동안 잊지 말아야 하는기다. 오늘날 이렇게 타고장에서 자리잡고 살수 있는것이 다 촌장조카님의 덕분이라는걸…》

나는 처음에 할머니가 말하는 《조카》가 누군가 했는데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왕삼이네 엄마 아빠도 나를 《조카(小侄子)》라 하고 왕삼이네 형들도 나를 철이동생(铁弟)이라 친근하게 불렀다. 동네 애들은 평소 총명하고 공부를 잘하는 나를 질투하여 《난쟁이》 혹은 《원숭이》라고 했다. 나는 태여날 때부터 두팔이 특별히 짧고 키도 같은 또래 애들보다 머리 하나 작아서 항상 대여섯살 어린 동생 취급을 받았다. 하여 왕삼이네 집에만 자주 놀러 다녔다. 맘씨 고운 왕삼이네 형제들은 나를 한번도 업신여기지 않았고 녀동생 란이는 오빠오빠 하면서 날 무척 따랐다.

왕삼이네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도 많았다. 그들은 흰 밀가루 빵에다 섬벅섬벅 크게 썬 감자와 넙적넙적한 줄당콩을 한가마씩 기름에 들들 볶아서는 큰 소랭이채로 밥상우에 올려놓고 온 집식구가 빙 둘러앉아 쩝쩝거리면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으며 하루동안의 우습고 재미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데 밥상머리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여났다.동네에서 남들이 버리는 밭을 얻어서 일망무제한 밀밭으로 개량하여 밀을 심었는데 해마다 대풍작을 거두었다. 밀가루는 왕삼이네 식구들의 주요식량이였다.

왕삼이네 집에서 재미 있고 신기한 일들을 많이 구경했다. 마당 구석쪽에 높이 쌓여있는 밀짚더미에서 오리알과 게사니알을 줏고 때로는 하얗고 포동포동한 돼지새끼를 낳는것도 보았다. 그리고 따뜻한 봄이면 뒤마당에는 더 희한한 구경거리가 있었다. 왕삼이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숫당나귀의 고삐를 틀어쥐고 그놈을 억지로 커다란 암말의 엉뎅이에 올라타게 했다. 당나귀는 체대가 작고 말은 체대가 큰데 작은놈을 큰놈우에 올려태우려고 하니 무척 힘들었다. 녀동생 란이까지 따라나와 그 큰눈이 뒤집혀질 지경이 되여 구경하는걸 《대통할머니》가 욕을 퍼부어 집안에 쫓겨 들어갔다. 이상하게 나와 왕삼이 형제들은 맘대로 보게 했다. 숫당나귀놈의 배아래에 성난듯 들썩거리는 굵직한 《오줌무기》를 보고서야 무슨짓인지 비슷하게 알렸다. 나와 왕삼이는 입을 막고 키득키득 웃었다. 우리가 웃든 말든 개의치 않고 왕삼이 아빠는 두놈이 《올라타기》에 성공하면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무척 기뻐했다. 왕삼이네 집에는 목덜미에 긴 갈기 날리는 멋진 암말 두필하고 얼굴이 길다란 못난 숫당나귀 한마리가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새끼를 낳으면 좋은 돈벌이가 되였다. 그런데 숫당나귀가 불쌍했다. 때론 성난 암말의 뒤발에 사정없이 차일 때도 있었는데 왕삼이 아빠까지 쉴새없이 욕을 퍼부었다.

《이런 미련하구 못난 당나귀야! 오늘부터 아예 정사료 한알 먹을 생각 말아라. 제구실도 못할놈. 건초더미나 씹고 연자방아만 돌리다 뒈질놈아!》

《키 작은 숫당나귀한테 발아래에다 무엇으로 무대처럼 높게 만들어주세요.》

곁에서 내가 머리를 굴렸다. 코를 킁킁거리면서 옷소매로 땀을 훔치던 왕삼이 아빠는 내 말에 큰 앞이발을 드러내보이면서 웃었다. 후에 왕삼이 아빠는 정말 굵직한 통나무로 알맞는 무대틀까지 만들어놓고 그 두놈을 훈련시켰다. 이듬해 어미말이 귀엽고 건장한 새끼 한마리 낳았는데 그놈의 이름이 노새(骡子)라고 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 왕삼이 아빠는 이렇게 낳은 놈은 노새(马骡)이고 숫말과 암당나귀가 교배해 낳은 놈은 아무짝에도 못 쓰는 병신 같은 놈이여서 버새(驴骡)라 한다고 알려주었다. 워낙 이런 일 에도 심오한 도리가 있었다. 노새는 천성적으로 힘이 세고 체대가 건장하며 참을성과 견딜성이 있어서 촌에서 부려먹기에 가장 좋은 가축이였다. 당나귀의 끈질긴 성미와 말의 체대와 속도를 공통으로 닮은 우량종이였다. 다만 노새들끼리는 새끼를 낳지 못하기에 이렇게 당나귀와 암말을 교배시켜야 했다. 노새 한마리의 값은 든든한 말 한필보다도 훨씬 비쌌다. 그후 우리는 전처럼 얼굴이 길다란 못생긴 당나귀를 공연히 미워하지 않았다. 휴식날이면 나는 가끔 왕삼이와 란이를 동무하여 못생긴 당나귀를 끌고 넓은 들판으로 나갔다. 파랗게 여린 청초를 당나귀가 싸각싸각 뜯어먹는 소리를 듣노라면 우리도 기분이 사뭇 좋아져 노래를 부르고싶었다. 란이의 성화에 나와 왕삼이는 고무줄뛰기를 하는 계집애의 시중군이 돼주었다. 다리가 특별히 긴 계집애는 고무줄뛰기를 너무 잘했다. 한창 싱싱하게 자라나는 꽃사슴처럼 껑충껑충 뜀질을 하는데 그 절주에 맞춰 우리 셋은 동요를 불렀다.

《비가 내리네 쫘락쫘락 쫘라락(下雨了哗哗哗)/ 우뢰가 우네 우릉우릉 우르릉(打雷了轰隆隆)/ 바람도 세차네 쏴쏴 쏴아아(刮风了呼呼呼)/ 시내물 노래하며 랄라랄라 흐르네(小河流水哗啦啦)》

흥분된 계집애는 노래를 부를수록 더 잘 뛰였다. 제1단에 고무줄을 발목에다 걸고 시작했는데 2단에는 무릎높이로 3단에는 사타구니사이로 단숨에 4단, 5단까지 이르면서 허리와 겨드랑이의 높이에까지 쉽사리 올라갔다.

《가는 고무줄 잘도 늘이네 란초꽃이 피여 스물한송이(小皮球,皮又皮,马兰开花二十一)/ 이오륙, 이오칠, 이팔 이구 서른 한송이(二五六,二五七,二八二九三十一)》

다시 한단을 더 높여 고무줄을 목에까지 갖다댔는데도 란이는 긴 두다리를 거의 일직선으로 벌려세우면서 탈싹탈싹 잘도 뛰였다. 나와 왕삼이도 신이 나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에는 제일 높은 정수리우에까지 올려대고 고무줄을 팽팽히 당겨주었다.

《란초꽃이 피였네 활짝 피였네 비바람 몰아쳐도 두렵지 않네(马兰花, 马兰花, 风吹雨打都不怕)/ 부지런한 사람 노래부르면 란초꽃 웃음짓고 활짝 핀다네(勤劳的人把歌唱,请你马上就开花)》

《아유, 숨이 차라!》

계집애는 그제야 지쳤다는듯 비칠거리더니 내 품에 와락 안기면서 쓰러지는척했다. 저도 모르게 받아안은 란이의 동실한 앞가슴이 내 손바닥에 뭉클 맞혀왔다. 목뒤줄기로 찡하고 야릇한 힘과 뜨거운 감각이 전류처럼 올리뻗쳤다. 어린 계집애 앞가슴이 이렇게 많이 익어있을줄을 몰랐다. 온 가슴에 들큼한것이 벅차올랐고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란이도 웬 일인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였다. 아직도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데 잔뜩 부푼 앞가슴이 내 눈앞에서 그냥 오르락내리락하며 춤추고있었다. 

《히야, 끝내 뻐드러졌네》

눈치가 도끼등인 왕삼이가 꿱꿱 게사니처럼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외지 중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될무렵에는 출국바람이 불어 동네사람들은 거의 모두 외국으로 돈벌이를 나가고 동네에는 늙은이들 몇명과 학교를 그만둔 장난꾸러기들 몇놈만 남았다. 다행히 나는 공부를 잘한덕에 숙사생활을 하면서 현성중학교를 그냥 다닐수가 있었다. 왕삼이와 란이는 나를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란이는 내가 현성학교로 가던 날 너무 울어서 두눈이 벌겋게 되였다. 그리고 우리 집도 인젠 늙은 외할머니가 혼자 지키는 오막살이가 되여버렸다. 이제 돈을 많이 벌어온후 시내에 들어가 아빠트를 사고 살거라고 했다.

엄마가 3년을 앞서 먼저 외국에 나갔고 그후 아버지는 농사는 뒤전으로 하고 매일 술만 마시다가 결국 촌민들이 거의 없어진 마을을 떠나버리고말았다. 떠나기전날 왕삼이네 집에서 취토록 술을 마시면서 동네와 늙은이들을 왕씨한테 맡긴다면서 여러번 왕삼이 아버지를 형님이라 불렀다. 왕삼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대통할머니》까지 그날 아버지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까지 외국으로 떠나간후 왕삼이네는 동네의 논과 밭을 더욱 많이 차지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동네의 운신이 불편한 로인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부지런히 밭일도 하고 돼지, 소잡이 같은 백정일도 닥치는대로 하면서 돈을 많이 번 왕삼이네 큰형은 먼 동네에서 엉뎅이가 큼직한 녀자를 색시로 맞았다. 약혼례물로 몇만원을 녀자집에 주었다고 왕삼이가 나한테 가만히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잔치날 키가 껑충하고 엉뎅이가 큰 새색시는 싱글벙글 잘도 웃었다. 왕삼이는 형수님이 많은 례물을 받았기에 이제는 영원히 왕가네 《집귀신》이 된셈이라고 했다. 왕삼이의 엄마 아빠도 잔치날에 너무도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통할머니》는 새 손주며느리가 대통 물주리만 빨아대던 호물입에 하얀 가치담배를 물리고 성냥개비로 불을 붙여주니 너무 기뻐서 《얼씨덩 나한테 도투새끼같은 증손주를 낳아줘야 해!》라고 부탁했다. 《대통할머니》에게서 굵직한 은팔찌를 선물받은 새 손주며느리는 첫날색시답지 않게 성격이 콸콸했다. 인츰 시원스레 대답했다.

《네, 할머니. 올해에 실팍한 증손주를 안겨드릴게요!》

왕삼이네 식구들은 물론 잔치술상에 둘러앉은 모든 손님들도 즐겁게 웃었다.

《대통할머니》가 매일밤마다 머리가 커다란 불상앞에서 열심히 기도한 덕인지 왕삼이네 큰 형수는 정말 그해 늦가을에 아들쌍둥이를 덜컥 낳았다. 왕삼이네는 쌍둥이 백날잔치도 온 동네를 공짜로 청해 먹이면서 굉장히 치렀다.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났지만 왕삼이네 형제들은 더욱 농사일에 집착했다. 돈을 벌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가리지 않았다.

내가 고중에 다닐 때 우리 집 친척형제들까지 모두 외국으로 나갔다. 집에 외롭게 남은 외할머니는 하루하루 더 늙어만 갔다.

《세월도 무정하지. 도무지 산것 같지 않아유. 오구구 모여서 재미 있게 살아본 날 있었던가싶은데 인생은 벌써 끝나버리나봐유.》

외할머니는 자주 이렇게 한탄했다. 그때 이미 외할머니는 여러해 동안 정말 왕삼이네 집식구들의 신세를 많이 졌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왕삼이 둘째형도 그동안에 장가를 들었다. 왕삼이 둘째형은 평소 그냥 노래를 입에 달고다녔다. 힘든 밭일을 할 때도 노래를 불렀고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도 밖에 나앉아 모기쑥불을 피워놓고 남들이야 듣든 말든 숫게사니처럼 그냥 한가지 노래만 불렀다.

《사람마다 자랑이네/ 아유유― 내 고향 기몽산이 좋다고서요/ 기몽산은 언제 보나 풍경도 좋고/ 록수청산으로 소와 양떼 살찌운다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이렇게 옛 고향노래를 부르면서 일하면 힘들지 않고 특히 로총각들이 색시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노래를 불러야 불붙는 심정을 달랠수가 있다고 했다.

왕삼이 큰형네가 새집을 짓고 세간을 난후 왕삼이 둘째형도 결혼했다. 그런데 이 색시한테는 별로 돈을 많이 쓰지 않았다. 다리가 좀 구부정하고 얼굴이 특별히 불깃불깃한데 타민족이고 이름은 룽메이였다. 그 녀자는 밭이 많고 해마다 풍작을 거두는 고장으로 시집 가는것이 소원이였다고 한다. 그녀가 시집온후 왕삼이네는 검은 몸뚱이에 허연 꽃무늬 같은 점이 얼룩덜룩 박힌 젖소 여러마리를 키웠다. 《대통할머니》는 또 궤짝에 깊숙이 보관해두었던 은팔찌를 하나 선물했다. 그러면서 또 《니두 얼씨덩 증손주를 낳아야 해!》라고 큰손주며느리한테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해 가을에 나의 외할머니는 80세를 바로 코앞에 두고 아홉고개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동네에 끌끌한 어른들이 없어 왕삼이네가 장례를 치러주었다.

란이가 혼자 뻐스를 타고 현성중학교로 날 데리러 왔고 외국에 가있는 엄마도 비행기편으로 부랴부랴 달려와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그날 나는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오지 못한 아버지가 단순한 불법체류자때문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두분은 벌써 리혼수속을 했다. 다만 나한테만 비밀로 했었다. 외할머니도 세상뜨기 바로 전에야 그 일을 알게 되였다.

외할머니 장례식날 나는 왕삼이 아빠가 시키는대로 먼저 커다란 검은색 토기대야에다 종이돈을 가득 태웠다. 그리고 종이재가 담긴것을 머리에 높이 인채 길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가 상제가 나가는 길바닥에 힘껏 메쳐 박살을 냈다. 토기대야는 산산쪼각이 나야 한가정의 모든 액막이를 단번에 하고 쪼각이 난 그릇은 상제가 지니기도 편하다고 했다. 이것을 《음양대야(阴阳盆)》혹은《길상대야(吉祥盆)》라고 불렀다. 원래는 아들이나 친손주들이 해야 하는데 모두 타국에서 살다보니 외손주인 내가 했다.

80세도 훨씬 넘긴 왕삼이네 《대통할머니》는 그날 혼자 집에서 외할머니의 제를 지내며 불쌍한 외할머니를 꼭 하늘나라의 제일 좋은 곳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제가 마지막길을 떠나보내준 외손주한테 은팔찌 같은것을 선물하지 못해 안타까와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였다…

《너한테 미안하고 정말 할 말이 없구나… 언제면 우리 세 식구가 다시 함께 살수 있겠는지…》 외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후 엄마는 처음으로 내앞에서 슬프게 울었다. 그런데 나는 웬 일인지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독한 술을 한잔 마신 탓인지 울음이 터지지 않았다.

너무 괴롭고 답답하여 별들이 총총한 뜨락에 나왔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란이가 곁에 다가오며 울먹이면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때 나는 란이를 와락 끌어안고 애들처럼 설음을 터뜨렸다. 막혔던 골물이 터지는듯이 후련한 울음이였다. 란이 몸에서 튼실하고 성숙된 녀자맛이 짙게 풍겼다. 그것은 오래동안 잊어버렸던 엄마냄새 같았고 어릴 때 가마목에서 풍겨오던 후끈한 누룽지냄새 같았다. 나는 정말 오래오래 그 맛에 취해있고싶었다.

외할머니가 세상뜬후에는 나도 별로 고향마을로 갈 일이 없었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왕삼이도 장가를 갔는데 색시는 세살 년상이고 이름은 순(顺)이며 아들애 하나 달린 과부라는 소문을 들었다. 왕삼이는 안해와 그녀가 데리고 온 아들애를 그토록 사랑해준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맘씨 고운 왕삼이의 앞날을 미리 축복했다. 꼭 아들 딸을 많이 낳고 잘살라고…

그러던 어느날 나는 올해봄에 왕삼이네 《대통할머니》가 손녀 란이를 데리고 고향인 산동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란이가 떠나가다니. 왕삼이네 할아버지의 《력사문제》가 풀려 당지 민정국에서 누군가가 기별을 보내왔다. 다른 식구들은 정든 땅을 차마 버릴수 없어 잠시 남아있기로 했다. 《대통할머니》는 식구들한테 그 누구나 이제 늙은 다음에는 꼭 고향에 돌아와 고향땅에 묻혀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대통할머니》는 자기 방의 그 머리가 큰 불상을 붉은 비단천보따리로 잘 싸서 란이한테 들리웠다. 그러면서 《남에게 진 신세는 돌에 새겨두란다》면서 《촌장조카님》의 신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날 란이는 떠나면서 《철이오빠》를 외우면서 많이 울었다.

바로 그날 밤 나는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넓고 푸르른 잔디밭에서 귀여운 란이가 신나게 고무줄뛰기를 한다.

《란초꽃이 피였네 활짝 피였네/ 비바람 몰아쳐도 두렵지 않네// 부지런한 사람 노래 부르면/ 란초꽃 웃음짓고 활짝 핀다네…》

그 노래소리에 맞춰 체대가 엄청 큰 노새들이 황금수레를 끌고 진달래꽃 만발한 언덕길로 씨엉씨엉 톺아오르고있었다. 마차안에는 왕삼이네 식구들과 나와 란이 그리고 만면춘풍이 된 엄마 아빠도 함께 있었다. 그뒤로 하얀 옷을 입고 긴 대통을 꼬나문 《대통할머니》가 《쫑발걸음》으로 빼뚤빼뚤 부지런히 쫓아가고있었다.

                                                                    /(훈춘)류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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