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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거꾸로 그려진 집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6-05-11 10:02:22 ] 클릭: [ ]

  친구 은숙을 마중하여 그녀의 트렁크를 끌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등뒤에서 누군가 《이모》하고 불렀다. 풋사과가 설겅거리며 씹히는듯한 애된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는 사람이냐》는 눈길로 은숙이가 내 뒤를 턱짓해보였다. 거기에는 멜가방을 비스듬히 진채 한손으로 검은색 짐가방 손잡이를 잡고있는 야구모자의 어린 청년이 서있었다. 캡이 눈두덩까지 눌러씌여져있었지만 나는 인츰 아들 유현이랑 한반 친구인 준빈임을 알아보았다.

  《그래, 준빈이구나. 니가 공항엔 웬 일이냐? 방학이라 어디 려행 가니?》

  고중입학시험이 전번주에 끝났고 이번 방학엔 숙제마저 없으니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확실히 풀어야겠다고 유현이도 벌써 며칠째 려행타령이였다. 야구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운 준빈은 입귀를 쓱 당겨올리며 벙싯 웃었다.

  《저 이제 한국 가요. 그곳에서 저도 일할수 있다네요…》

  일이라니, 그럼 학교를 영 그만둔단 말인가. 겨우 열여섯인 준빈이를 바라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할수 있어 잘됐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공부를 더하고 일자리를 찾는것이 좋다고 말해야 되는지…

  나의 얼굴에 씌여진 난감함을 눈치챘던지 준빈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후 공항안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결국 저 아이는 이런 식으로 사회생활에 입문할수 밖에 없는것일가. 은숙이의 짐을 차 뒤좌석에 옮겨 실으며 나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준빈이의 낯선 뒤모습에 마음이 착잡했다.  키는 얼추 비슷하게 컸지만 아직 애티나는 유현이에 비해 훨씬 튼실한,  나이보다 일찍 성숙해버린 준빈이의 벌어진 어깨가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유치원 다섯살 꼬마인 준빈이를 떼두고 여태 한국에 머물러 있다는 그의 엄마가 부른것일가. 혹은 남의 집에서 키워지는 아들이 그리워 삼사년에 한번 꼴로 귀국하던 그의 아버지가 일자리를 얻어주었을가.

  《후―》 하고 은숙이가 차 시동을 거는 내 곁 조수석에 앉아 한숨을 내쉬였다.

  《집문서 넘기는 서류 끝날 때까지 니네 집에 머물러도 괜찮겠냐》 하고 은숙이가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니? 너 이제 이 도시에서 찾아갈 사람이 또 어디 있간데?》

  나는 은숙이를 살짝 흘겨보았다. 은숙이와는 허물없는 소꿉친구로서 우리는 한 동네에서 유치원으로부터 소학교와 중학교까지 함께 다녔다. 일찍 결혼하여 유현이를 낳은 내가 M시에 정착했을 때 은숙이는 지병으로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병원빚을 갚느라 서울 어느 갈비집의 홀에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여다녔다. 보따리 장사라도 큰 빚 없이 작은 중고 아빠트 하나 장만하고 여태껏 다달이 생활비를 벌어주는 나의 남편을 은숙이는 내심 부러워했다.

  《넌 좋겠다. 집도 있고 아들도 있고, 매달 생활비 벌어주는 남편에 너도 밥벌이쯤은 하고있으니…》

  유현이를 소학교에 보내면서부터 시간적여유가 생겨 나도 학교 유치원에 출근하게 된것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러나 사실 은숙이가 가장 부러워한것은 유현이를 직접 키우며 살아가고있는 나의 엄마 된 삶이였다. 은숙이는 유현이가 소학교에 입학할 즈음 한국에서 오래동안 사귀여온 조선족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작으나마 제 집에서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키워볼 소박한 꿈으로 은이도 M시에 낡은 아빠트 한채를 사놓았지만 거퍼 3년이 못되여서 H시에 사는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긴후 다시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은숙이의 남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렸기에 나는 은숙이에게 굳이 떠나야 할 리유를 캐묻지 않았다. 떠나기전 은이는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먹으며 말했다.

  《일단 벌어야 살수 있잖니. 애가 중학교에 들어가기전에는 돈 좀 모아야지.》

  아무것도 모른채 제 엄마의 기색만 살피는 은숙이의 아이에게 나는 하얀 쌀국수를 한올한올 먹여주었다.

  《근데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한건지 사실 모르겠어. 지금은 애와 이 가정을 위한다고 생각하지만…》

  저가락으로 쌀국수를 집은 은숙이의 눈확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은숙이의 아이는 구슬같이 맑은 까만  눈동자로 이윽토록 엄마를 바라보았다. 제발 은숙이의 아이는 준빈이처럼 불행하지 말아야 하겠는데…

  유현이가 소학교 1학년에 입학하던 날,  스쿨뻐스를 기다리는 슈퍼앞에서 나는 어린 준빈이를 처음 보았다. 가무스름한 피부로 유난히 건강해보이는 밝고 씩씩한 개구쟁이였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준빈이는 인츰 유현이와 친해져서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가용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신나게 숨박곡질했다. 또래 애들이 서넛 되였고 할머니의 다른 한 손주처럼 보이는 사내애도 함께 나왔으나 준빈이는 유현이와 노는것을 제일 좋아했다. 유현이가 내 등뒤에 숨고있으면 준빈이는 《이모, 이모》하고 친근하게 부르며 내 무릎을 끌어안고 뱅뱅 돌면서 유현이를 잡았다. 자연히 준빈이의 할머니와도 말문을 트게 되여 지나가는 인사로 물어보았다.

  《할머니 고생하시네요. 외손주에 친손주 두  아이나 혼자 보시고.》

  그런데 할머니는 그 말에 아이들의 눈치를 흘끔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잉. 외손주는 맞는디 저 놈 준빈이는 친손주가 아니지비. 애 볼 사람이 없다고 그래서 채소값이나 벌 료량으로 생활비 쪼매 받고 봐주는기라.》

  《할머니―》 하면서 제일 먼저 달려와 가방을 받아 메는 준빈이를 보니 학부모들중 가장 젊은 엄마를 둔 유현이를 왜 그토록 좋아했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김밥 만들기 체험 수업때 들렸던 유현이네 교실, 나를 보고《유현이 엄마다!》하고 유현이보다 더 우쭐거리며 애들한테 자랑하던 준빈이의 해맑은 웃음을 더는 전처럼 아린 마음 없이 받아들일수 없게 되였다.

  적극적이고 열정 넘치고 활동력 강한 아이, 축구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잘하던 아이, 그러나 어려서부터 남의 집을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 준빈이는 자신의 개성들을 긍정적이 아닌 불건강한 쪽으로 키웠다. 부모가 한국에서 헤여졌다는 소문도 있었고 준빈이 아버지는 알콜중독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5학년생이 된 준빈이를 우리 집 과외반에서 다시 보았을 때는 한동안 기숙사생활을 마치고난 다음이였다. 제법 소년티가 흐르는 준빈이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 아이의 삐딱한 시선에 가슴이 서늘했다. 숙제하라 그러면 책을 펼쳐놓은채 락서하거나 연필을 잡아뜯거나 멍하니 다른 생각에 빠졌다. 성적은 꼴찌였고 수업태도며 교우들간의 관계도 좋지 않아 말썽거리로 점찍혔다.

  나름대로 살뜰히 살펴주기도 하고 다른 애들과 표준을 달리하여 임무를 적게 주기도 하고 칭찬도 많이 해주었지만 꽁꽁 얼어든 그 아이의 마음을 풀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러나 그 동안에 있은 한가지 일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숙제를 마치고 잠간 휴식하는 동안에 《플랜더스의  개》를 읽어준적이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벨기에 작은 마을의 가난하고 정직한 네로가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자신이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아래에서 얼어죽은 이야기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네로를 떠나지 않고 함께 껴안고 굳어버린 늙은 개 파트라슈의 모습을 읽어주는 찰나 나는 준빈이의 눈확에서 핑 솟구치는 투명한 눈물을 보았다. 얼음장같이 차거운 이 아이에게도 따스하고 여린 정이 남아있었구나. 갑자기 나의 코등도 시큰거려서 그만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보이고말았다…

  아이를 두고 떠난지 6년, 이제 은숙이의 아이는 벌써 아홉살 소학교 2학년생이 되였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시어머님의 건강도 많이 악화된 탓에 은숙이는 아이를 더 이상 맡길수가 없어 M시의 아빠트를 처분하고 그 돈으로 전세를 구해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가 공부시킬 계이였다.

  《남편이랑은 어떻게 잘됐어? 》

  집에 돌아와 짐을 풀며 내가 은숙이에게 물었다. 은숙이는 보일듯 말듯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였다.

  《몰라, 어떻게 될지. 인간이 정신을 차려야 합치든지 말든지 할게 아니야. 하긴, 그 인간도 내가 없는 동안 외롭고 힘들었겠지…》

  은숙이는 말머리를 돌려 핸드폰을 꺼내 그사이 몰라보게 자란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속에서 은숙이의 아이는 소심하게 웃고있었다. 하늘과 땅 같은 존재의 엄마 아빠가 옆에 없었던 6년 동안 사람의 일생을 좌우지할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 감정과 인식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은숙이의 아이는 대체 어떻게 보냈을가. 급작스레 닥쳐온 자본의 세계속에 던져진 평범한 조선족으로서 은숙 부부는 나름대로의 상황이 있었고 조부모는 조부모대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아이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온 사랑의 결핍, 불안정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침해는 불가피했을것이다. 하다면 그렇게 인생을 시작한 은숙이의 아이가 자랐을 때는 또 어떤 형식의 가정을 묶으며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갈것인가.

  《저 한국으로 가요》하면서 벙싯 웃던 준빈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마음 어딘가 쓰려났다. 불과 석달전, 고중입시때문에 토요일에도 조직되였던 자습시간, 학부모 도우미로 가게 된 나를 보고《이모! 왔어요?》하고 일부러 명랑하게 웨치던 아이였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유현이네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전해들은 준빈이는 술, 담배, 주먹질에 련애까지 모든 불량한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한다는 문제아였다. 그날 맨뒤자리에 앉은 준빈이는 학습지는 책상우에 마구 팽개치고 무슨 그림책인가 뒤적거리고있었다.

  《얘 준빈아, 이제 졸업시험 며칠 안 남았다. 책도 좋지만 이 기간만큼은 공부해야지.”하고 오지랖 넓게 내가 한마디 하자 준빈이는 흥― 코웃음을 치더니 걸상을 삐걱거리며 다리를 요란스레 떨어댔다.

  《글쎄요, 이모. 난 말이예요,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전혀 알수 없다고요. 누구를 위해 하죠? 난 어차피 이 세상에 별 필요도 없는 존재인걸요.》

  《아니, 준빈아. 넌 아직 앞날이 많다. 너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야지, 사람은 말이야…》

  거뭇거뭇 코수염이 난데다가 목소리마저 굵어진 준빈이를 보니 문뜩 이런 고리타분한《훈육》을 할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부모도 선생님도 아닌 내가 무슨 말을 더해줄수  있으랴.

  《난 그냥 앞으로 찬란할 네 인생이 안타까와서 그런다. 아무렴 너도 생각이 있겠지…》 몸을 돌려 교단으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준빈이가 물었다.

  《근데 이모, 샤갈은 왜 집을 거꾸로 그렸을가요?》 그제야 나는 준빈이가 뒤적거리던 책장에 샤갈의 《나와 마을》이 그려져있음을 알아보았다.

  로씨야출신의 유태인화가, 많은 편견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불타는 떨기나무(출애굽기에서)와 십자가 목걸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사람. 샤갈의 마을에는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염소와 화가 자신, 염소의 뺨속에 들어간 염소젖 짜는 녀인 그리고 십자가 높이 걸린 정교회당과 마을집들이 몽환처럼 아련하게 그려져있었다. 그중 가운데의 집 두채가 바로 그 집앞의 녀인과 함께 뒤집혀 그려진것이였다. 평생 고향을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샤갈의 마음이 보는이의 가슴에 와닿는 푸근한 그림이였다. 나는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우에 턱을 고이고 앉아있는 준빈이를 바라보았다. 오래전의 어느날, 내가 읽어주던 이야기를 듣고 난데없이 솟구친 눈물을 감추느라 애쓰던 준빈이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준빈아. 넌 샤갈이 왜 집을 거꾸로 그렸는지 알았을것 같구나.》내 말에 씨익― 준빈이가 웃었다. 맑고 사랑스러운 웃음이였다.

  《너 예전에 그 쌀국수집 생각나니? 그 집에 가자.》

  나는 은숙이를 데리고 아빠트를 나섰다. 일단 먹자, 먹어야 살지. 오늘을 잘 먹어둬야 미래가 튼튼할게 아닌가. 나는 앞으로 걸었다. 미래는 현실로부터 태여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준빈이의 미래, 은숙이네 가족의 미래,  200만 조선족의 미래와 2000년대를 맞은 세상 모든이의 미래는 지금 어떤 현실에서 기인되고있는것일가.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거대한 채바퀴같은 세상, 그 혼돈의 세상이 모든것을 침식해버릴 양으로 다가오고있다. 나는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거꾸로 그려진 샤갈의 집처럼 불현듯 돌변한 풍향가운데 주변의 풍경이 한번도 보지 못한 새것처럼 느껴졌다.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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