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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머님전 상서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1-31 10:29:33 ] 클릭: [ ]

존경하는 어머님:

어머님을 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15년 만에야 글을 올리게 되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주소서. 많이 기다리셨죠?

지금 이 시각 인간세상은 한해가 막 저물어가는 년말 분위기로 들떠있습니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세속의 부끄럽던 구석구석을 깨끗이 지우려는듯 한밤중이 되여도 그냥 펑펑 쏟아집니다.

눈 내리는 이 밤, 담담한 웃음을 짓고 계시는 어머님의 얼굴이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클로즈업되여 명멸하는 것 같습니다. 세월은 어머님의 얼굴에 강보다 넓고 깊은 주름을 파놓았건만 어머님 특유의 그 담담한 웃음은 주름 깊은 세월의 강에서 늘 찬란하게 빛나면서 저에게 무한한 것을 가르쳐주셨지요.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토로한다 해서 자신만의 조용한 사색 속에서 얻어지는 것과 같은 심오한 위안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인간사의 리치인 것 같더라구요. 저는 어머님의 항상 잊지 않는 담담한 웃음에서 이 진리를 터득한듯 했습니다.

어머님의 마음은 ‘자식의 공부방’이라고 어느 명인이 한 말을 저는 가슴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머님의 담담한 웃음은 저에게 무언의 ‘명강’이 아니였나 생각해봅니다. 50년대 후반 ‘우파분자’라는 감투가 아버님께 내려져서부터 60년대 초반 해외망명길에 오르시여 80년대 초반 명예회복을 맞기까지 장장 30년 세월 속에서 우리 집 수난사의 주역이셨던 어머님은 ‘우파분자의 마누라’라는 딱지를 달고 고독, 비통, 인고를 담담한 웃음으로 흔연히 묵살하며 남편과 자식 사랑으로 넉넉한 마음에 기대여 인간비극을 디딤돌처럼 밟고 대범하고 여유 있게 살아오셨습니다.

어머님의 담담한 웃음은 강인한 생활력과 따뜻한 성품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아산 우파분자수용소에서 ‘로동개조’를 강요당하고 계시는 아버님께 보낸 가족사진이 담아낸 “애들을 봐서라도 제발 무너지지 마소서” 라는 어머님의 간곡한 마음이 아버님께서 역경을 버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버팀목으로 작용했다고 후날 아버님께서 되뇌이시였죠.

이국땅으로 망명하여 고독하게 보내실 아버님께서 마음의 끈을 놓지 않으시게 하고저 열흘이 멀다 하게 저와 동생을 독촉하여 아버님께 편지를 쓰도록 하신 어머님의 그 마음이 19년 ‘리산가족’력사를 종식시키려는 아버님의 강렬한 의지로 이어진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님의 그 일관한 생활자세와 인간매력의 소산인 담담한 웃음이 파탄 직전의 우리 가정을 봉합시킨 힘이였지요.

한여름 찜통 같은 더위 속의 강변 모래자갈 치기, 심산밀림에 들어가 약초 캐기, 매탄장 석탄리어카 끌기 등 소 갈 데 말 갈 데를 가리지 않고 남편과 자식을 위한 처절한 혈전을 벌려온 오랜 세월 저는 솔직히 어머님에게서 낯을 찡그리며 한숨 짓거나 남들한테 우리 집 불행에 대해 하소연하며 궁상을 보이는 초라한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님 마음의 공부방’에서 제가 습득한 첫 과목은 바로 ‘담담한 웃음’이였습니다. 어머님의 담담한 웃음이 우리 가정에 드리웠던 비운을 희석시키는 마법으로, 저에게는 전화위복의 강심제로 돼왔음을 썩 뒤에야 깨닫게 되였습니다.

어머님, 2만년전 인류의 조상들이 큰 신전으로 사용했던 동굴 속에서 출토된 어머니상의 조각에서 보면 태고 때부터 어머니 형상은 죽음에 대항해 싸우는 생명의 신성한 신비의 구현체, 영원한 소멸 속에서의 영원한 재생의 구현체로 칭송되여있더라구요. 이 말을 터놓는 순간 일전에 인터넷에서 가슴 찡― 저리게 하는 모성애 극치의 영상물을 보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 ‘천산갑’이라 하는 포유동물의 눈물겨운 행태여서 더구나 충격이 컸습니다.

식탁에 오를 천산갑을 도륙하고저 식당 주방장이 무진 애를 써도 고슴도치처럼 웅크린 천산갑 몸체를 열 수 없자 벌겋게 이글거리는 가스불 우에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비늘이 지글지글 타들어가는데도 천산갑은 죽은듯이 요지부동인 거얘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주방장이 천산갑을 가스불 우에서 내려 한쪽 구석에 던지고 다른 천산갑을 집어들었는데 이 때 희귀한 일이 생겼습니다. 한쪽 켠에 몸을 웅크린 채 던져져있던 문제의 천산갑이 문득 불에 그을려 처참히 훼손된 몸체를 쭉 펴는 거얘요. 그 순간 천산갑 몸 아래부위가 팽창되더니 피덩이 같은 새끼 천산갑이 빠져나오지 뭡니까? 그러니 이 천산갑은 임신한 암컷으로서 곧 태여날 제 새끼를 인간으로부터 보호하고저 제 몸을 불사르면서도 끝까지 몸을 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제 새끼를 살려내고 초연히 죽음을 맞는 어미 천산갑의 모성애가 그처럼 감동적일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머님을 떠올렸습니다. 몇십년 동안 눈물겨운 무조건적인 사랑과 거룩한 희생으로 자식들을 지켜낸 어머님의 강렬한 모성애 말입니다. 자식사랑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본능이라지만 정치적 박해와 경제적 빈궁, 거기에 아버님의 망명까지 첨가돼있는 기막힌 우리 집 비극을 담담한 웃음으로 세척하며 일곱 남매를 무탈하게 키워내고 지켜낸 어머님 같은 분은 드물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어머님, 어머님이 수십년 동안 가슴으로 삭인 눈물을 모았다면 강물이 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가슴으로 눈물을 삭일 때 저는 어머님으로부터 가난에 기 죽지 않고 역경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용기, 부모에 대한 효심과 인간에 대한 애심을 키우고 인내와 끈질김으로 인생에 도전하는 삶의 자세와 험난한 세월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였습니다.

오늘날 저에게 그 어떤 자부할 만한 무엇이 있다면 당연히 어머님의 마음으로 연 공부방 혜택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담담한 웃음이 저를 지켰고 저를 철들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의 담담한 웃음은 사색을 동반한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남에게 아량을 베푸는 그런 품위 있고 인간미가 넘치는 웃음이였습니다.

눈 내리는 이 밤, 오늘 따라 어머님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맘 반이면 효자된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님에 대한 불효막심함을 제가 장가 들어 자식을 길러보면서야 알 것 같더라구요. 나 참 형편없는 놈이죠? 부모에 대한 보은의 감정이 부모가 사망한 후에야 고개를 든다고들 말하던데요. 그 때면 이미 늦은 거지요. 그래서 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오늘 따라 어머님의 그 담담한 웃음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위대한 모성애의 따뜻함으로 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어머님, 하늘나라에서 계속 담담한 웃음으로 저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옵소서. 흰 눈을 쏟아내는 저 장천을 향해 이 아들 심장으로 조용히 불러봅니다. 어―머―님!

 

                                                                                    /채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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