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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인물: 공산당원(13)―류백견

편집/기자: [ 리미연 ] 원고래원: [ 신화사 ] 발표시간: [ 2011-05-10 07:17:41 ] 클릭: [ ]

 

1920년 류백견은 유럽으로 류학을 떠났다. 그는 선후로 프랑스, 벨지끄에서 공부했고 이 기간 대량의 맑스주의저작을 읽었다.

1921년 그는 주은래, 조세염, 진연년, 리부춘, 리유한, 섭영진 등과 함께 재유럽 중국소년공산당을 발기, 조직하고 1922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6년 류백견은 귀국한 후 풍옥상부대에서 국민군 제2집단군 총정치부 부부장을 맡았다. 그는 풍옥상부대로 하여금 제1차국공합작의 강령과 《로씨야와 련합하고 공산당과 련합하며 농민과 로동자를 부축》하는 3대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추진했으며 또한 저명한 《오원결의》을 거행하여 남방국민혁명군을 협력하여 북양군벌의 통치를 뒤엎는 북벌전쟁을 진행했다.

1931년 말, 류백견은 국민당 제26로군 녕도봉기의 조직, 계획, 련락 사업을 맡았다. 그후 봉기부대를 개편한 홍5군단의 정치부주임을 맡았다.

1934년 10월 중앙홍군 주력이 대장정을 떠났고 류백견은 중앙쏘베트에 남아 투쟁을 견지, 공남군구 정치부주임을 맡았다. 류백견은 수비부대를 적극 조직하여 주력부대를 위해 후방근무 보장사업을 잘하여 중앙홍군 주력을 호송했다.

1935년 3월 4일, 류백견은 부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는 격렬한 전투에서 탄알에 맞아 체포되였다. 1935년 3월 21일, 류백견은 강서성 대여현 금련산사형장에서 《중국공산당만세!》를 높이 웨치며 40세 나이로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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