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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인물: 공산당원(17)―양정우

편집/기자: [ 리미연 ] 원고래원: [ 신화사 ] 발표시간: [ 2011-05-24 10:11:46 ] 클릭: [ ]

양정우는 1905년 2월 하남성 학산현 리만촌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1926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그해 겨울 중공하남당조직의 파견으로 고향 학산에 돌아와 농민운동에 참가했다.

1927년 4월 국민혁명군의 북벌전쟁에 협동하여 양정우는 학산농민폭동에 참가, 지도했으며 승리를 거두었다. 그해 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대혁명이 실패한 후 양정우 등은 당의 87회의의 요구에 따라 재차 학산봉기를 조직하고 농민혁명군 총지휘를 맡았으며 봉기무장의 반동군대와의 작전을 지휘하던중 부상을 입었다. 1928년 봄 상처가 완쾌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의 파견으로 선후로 학산, 신양, 개봉, 락양 일대에 가 당의 지하공작에 참가했다. 이 기간 여러 차례 체포당했고 험한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위험에서 벗어난 후 당조직의 파견으로 상해당중앙에서 학습하는 한편 당의 비밀사업에 종사했다.

1934년 양정우는 항일련합군총지휘부를 설립하고 총지휘를 맡았다. 그해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군장 겸 정치위원을 맡았다. 1936년 봄 동북항일련합군 제1군 군장 겸 정치위원을 맡고 그해 6월 동북항일군 제1군 총사령 겸 정치위원을 맡았다. 양정우는 동북항일련합군의 주요 창립자와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그는 부대를 이끌고 장기적으로 일본괴뢰군을 타격했다.

일본괴뢰군은 동북항일련합군 특히는 제1로군을 눈에 든 가시로 여기고 반복적으로 《토벌》을 진행했다. 1940년 2월 23일 양정우는 적들과의 전쟁에서 35세의 나이로 용감히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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