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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 인물: 공산당원(23)―엽정

편집/기자: [ 리미연 ] 원고래원: [ 신화사 ] 발표시간: [ 2011-06-13 09:05:54 ] 클릭: [ ]

엽정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창시자이자 신사군의 령도자, 군사가이다. 젊은 시절 손중산을 따라 혁명에 참가하여 최고사령 경위단 제2영 영장을 맡았다. 1922년 6월 월군 총사령 진형명이 배신하고 강군을 이동, 집결시켜 손중산의 대통령관저를 공격하자 엽정은 부대를 이끌고 반란군과 격전을 벌였고 손중산부인인 송경령 등을 보호하여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1924년 국공 량당 합작 후 쏘련 모스크바에 파견되여 선후로 동방로동자공산주의대학과 홍군학교 중국반에서 학습했다. 그해 10월 중국사회주의청년단에 가입하고 12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7년 전국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엽정은 국공이 합작단결하여 항일할것을 지지하고 남방 8개 성의 홍군유격대를 신4군으로 개편하는데 적극 참여했으며 군장을 맡았다. 1937년 연안에서 모택동과 회견, 중국공산당의 령도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끝까지 항일전쟁을 견지할것을 표시했다.

1941년 1월 국민당 보수반동파들은 제2차 반공고조를 일으키고 북으로 이전하는 신4군 군부와 환남에 주둔한 부대를 포위, 습격했다. 준엄한 상황에서 엽정은 부대를 지휘하여 8주야 목숨을 걸고 맹렬하게 싸웠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탄약도 다 쓰고 구원도 끊긴 상황에서 2000여명이 포위를 뚫은 외 대부분이 흩어지고 희생, 체포되였다. 엽정은 국민당군과 교섭하는 도중 구류당하여 선후로 상요, 은시, 계림, 중경 등 지에서 5년 2개월 감금되였다. 그는 장개석 등의 협박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았고 항일전쟁승리 후 중공중앙의 구원으로 1946년 3월 4일 석방되였다. 4월 8일 중경에서 연안으로 향하는 도중 비행기사고로 조난당했다. 그해 5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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