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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년간 총서기께서 치하했던 로력모범들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人民网 ] 발표시간: [ 2020-05-05 12:49:18 ] 클릭: [ ]

편집자의 말:

무엇이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숭고하며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울가?

습근평 총서기는  “로동!”이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30일,  ‘5.1‘국제로동절에 즈음해 습근평 총서기는 정주원방그룹 전체 종업원들에게 보낸 답신에서 실제행동으로 전염병 저격전에 기여한 그들을 칭찬하고 나서 광범한 근로대중들이 신심을 확고히 하고 열의를 유지하며 로동정신을 고양하고 난관을 극복하면서 평범한 일터에서 계속해 평범치 않은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자기의 신근한 로동으로 전염병 예방통제와 경제사회 발전에 더욱 큰 힘을 기여하기를 바랐다.

최근년간 근로대중들의 걸출한 대표이며 가장 아름다운 로동자 -‘로력모범’들에 대해 총서기는 종래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2013년 4월 28일, 총서기는 전국 로력모범 대표들과 좌담할 때 로력모범은 민족의 엘리트이고 인민들의 본보기라고 지적했다.

● 2014년 4월 30일, 당시 신강에서 고찰중이던 총서기는 로력모범과 선진사업일군, 선진인물 대표들을 접견하면서 “한세대 또 한세대의 로력모범과 선진사업일군, 선진인물들은 우리 나라 로동인민들의 걸출한 대표이며 조국과 인민의 자랑”이라고 강조했다.

● 2015년 4월 28일,  5.1국제로동절 경축 대회에서 총서기는 로력모범과 선진사업일군들은 중국의 길을 견지하고 중국의 정신을 고양하며 중국의 힘을 결집하는 데서의 본보기라고 재언명했다.

● 2016년 4월 26일, 당시 안휘에서 고찰중이던 총서기는 지식분자, 로력모범, 청년대표 좌담회를 소집, 주재하면서 로력모범은 근로대중들의 걸출한 대표이며 가장 아름다운 로동자라고 정겹게 찬송했다.

● 2018년 4월 30일, 총서기는 중국로동관계학원 로력모범 본과반 학원들에게 보낸 답신에서 당과 국가 사업의 발전을 위해 돌출한 기여를 했다고 그들을 표양했다.

● ……

과연 어떤 힘과 정신이기에 총서기께서 늘 잊지 않고 재삼 찬미하게 했을가? 󰡐5.1국제로동절, 로동을 숭상하고 로동자를 찬미하는 나날에 우리는 총서기께서 치하한 적 있는 몇몇 로력모범들을 선정해 싣는 것으로 로력모범 군체에 가장 숭고한 경의를 드리는 바이다!

★ 총서기의 말씀

2013년 4월 28일 총서기는 전국 로력모범 대표들과 좌담할 때, 혁명전쟁년대에 조점괴 등 많은 로력모범들은  “새로운 로동태도로 새로운 로동을 대”하면서 의무로동에 적극 참가하고 전선 투쟁을 전력으로 지원했으며 대중들을 이끌고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인민해방사업에 투신했다고 지적했다.

‘변구 로동자들의 한폭의 기발’조점괴(1896―1973)

1938년 조점괴는 연안에 가 항일에 참가했다. 농기구공장에서 철을 녹이는 로동자로 있을 때  섭씨 2,000도에 달하는 고열 용광로 앞에서도 털끝 만큼의 게으름도 부리지 않았다. 어느 한번은 동을 제련하는데 동가마가 돌연 깨지면서 천도도 넘는 동수(銅水)가 조점괴의 오른발에 흩뿌려졌다. 그러나 치료 기간 그는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일터에 돌아왔으며 위문금은 전선 전사들에게 기부했다. 조점괴의 최선을 다해 일에 몰두하는 정신과 대공무사하고 자아희생적인 정신은 변구 로동자들의 로동열정을 대대적으로 고무했으며 전반 변구 공업 건설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했다. 1942년 10월, 섬감녕총공회는 통지를 내 조점괴의 부지런한 일본새와 시종여일한 정신을 따라배울 것을 전 변구 로동자들에게 호소함과 동시에 새로운 로동태도를 건립하고 생산효률을 제고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조점괴운동’을  펼쳤다. 조점괴는 또 주덕으로부터 혁명자의 태도로 사업을 대하는 ‘신형의 로동자’로 불리웠다.

★ 총서기의 말씀

2013년 4월 28일, 총서기는 전국 로력모범 대표들과 좌담할 때 새 중국이 설립된 후 맹태 등 많은 선진모범들은 당의 호소에 호응해 광범한 대중들을 이끌고 자력갱생하고 분발해 강성을 도모했다고 지적했다.

‘용광로 파수군’ 맹태(1898―1967)

맹태는 원 안산강철공장제철소 부공장장으로서 여덟번이나 모주석의 접견을 받은 새 중국의 제1세대 로력모범이다. 1948년 년말, 료심전역이 승리적으로 끝난 후 안산강철공장은  복구 건설에서 기자재와 자금이 결핍한 등 곤경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그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십리 되는 공장구역을 샅샅이 훑으며 기자재를 찾고 십여명 되는 로동자들과 함께 몇개월내에 천여종에 달하는 재료, 만여개에 달하는 부속품들을 수집해 전국에 이름 난 ‘맹태창고’를 세웠다. 그는 기술 공략을 대대적으로 벌려 선후로 기술난제 십여가지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대형 압연 롤러 자체 제조에 성공해 우리 나라 야금사의 공백을 메웠다. 항미원조전쟁이 폭발한 후 미군 비행기가 폭격해대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행장을 용광로 옆에 가져다 놓고 목숨을 내걸고 불철주야로 용광로를 지켰다.

★ 총서기의 말씀

2013년 4월 28일, 총서기는 전국 로력모범 대표들과 좌담할 때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개혁개방의 력사적 새시기에 공상서 등 많은 로력모범과 선진사업일군들은 그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그 분야에 애착을 가지고 그 분야에 파고들고 그 분야에 정통하면서 대중들을 이끌어 힘써 진취하고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적극 뛰여들어 나라와 인민을 위해 걸출한 공훈을 세웠다.

‘블루칼라 전문가’ 공상서(1955―)

공상서는 새시기 산업로동자의 대표로서 천진항중국석탄화능석탄부두유한회사 대장이다. 사업에 참가한이래 그는 일하면서 배우고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해 ‘청음단병(听音斷病)’의 특기를 련마해냄으로써 ‘게이트 머신왕(門机大王)’, ‘고장 제거 능수’로 되였으며 초중 문화 정도 밖에 안되는 로동자에서 일약 생산 일선의 󰡐‘블루칼라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1995년  천진항 하역 생산의 핵심 설비인 40톤에 달하는 게이트 머신 한대에 고장이 생겼는데 제때에 복원하지 않으면 생산에 엄중한 영향을 끼치게 되였다. 그러나 복원하려면 무게가 168톤에 달하는 게이트 머신의 상반을 들어올려야 했다. 관례에 좇아 해저 크레인을 임대해 작업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두달을 기다려야 했다. 공상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 먹고 로동자들을 이끌고 반복적인 연구 끝에 베어링 회전으로 인해 하단 지레목을 고정시키기 어려운 난관을 돌파, 한개당 30톤의 압력을 견디는 잭 10개로 168톤에 달하는 게이트 머신 상반을 들어올려 고장난 곳을 복원했으며 이로부터 새로운 성과—대플랜지 아래에 용접하는 신형 톱 스탠드 기술을 형성했다.

★ 총서기의 말씀

2014년 4월 30일, 총서기는 신강에서 로력모범과 선진사업일군, 선진인물 대표를 접견하고 그들과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회에서 무장경찰신강총대병원 원장 장사화 등은 자기의 경력과 결부해 변강을 열애하고 변강을 건설하며 변강에 기여한 체득을 털어놓았다. 총서기는 당신들의 사적은 아주 감동적이다. 나는 큰 고무를 받았다고 표시했다.

‘당대의 뢰봉’ 장사화(1955―)

장사화는 무장경찰신강총대병원 간담외과중심 주임의사로서 2013년 3월 1일, 중앙문명위원회로부터 ‘당대의 뢰봉’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수여받았다. 군의로서 그는 근 50년을 변강에 뿌리 박고 위생원에서 병원 원장으로, 다시 보통군의로 돌아와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 직무와 대우가 어떻게 변하든  변강에 뿌리 박고 당의 사업에 충성하려는 신념만은 시종 드팀이 없었다. 40여년래 그는 회진, 의무 순회 진료를 철칙으로 삼아왔으며 원격 의료 써비스로 매일 20차례 수술을 진행하는 등 황소마냥 변강 여러 민족 인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당과 인민이 가장 수요하는 곳에서 빛을 뿌리고 열을 발산했다. 그는 해마다 여러 민족 인민들을 위해 병을 봐주고 약을 전달해주었는데 다녀간 거리는 40여만키로메터, 순회 진료를 해준 인원은 연인수로 44만여명에 달한다. 또 19개 편벽한 빈곤 농목구역 병원을 도와 의료 조건을 개선해주고 120명에 달하는 기술골간을 양성했으며 580여명 환자를 도와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시종 진취적인 마음으로 일류의 업적을 창조하고 일터를 사랑하고 본업에 충실하며 부지런히 연찬하고 과감히 혁신하면서 평범한 사업터에서 평범치 않은 업적을 창조해냈다.

★ 총서기의 말씀

2016년 4월 29일, 총서기는 안휘에서 지식분자, 로력모범, 청년 대표 좌담회를 소집, 주재했다. 좌담회에서 국가전력망안휘성전력회사 숙주전력공급회사 운검부 활선작업반 반장 허계금 등은 자기의 학습, 사업과 결부해 과학기술 혁신, 로동 창조, 청춘 기여 등 주제를 에워싸고 인식을 담론하고 감수를 말하며 건의를 제기했다. 총서기는 당신들의 발언은 아주 생동하고 아주 소박하며 아주 식견이 있다며 들은 후 매우 큰 고무와 계발을 받았다고 표시했다.

‘대국 장인’허계금(1963―)

허계금은 ‘대국 장인’으로 불리운다. 그는 국가전력망(国网)안휘성전력회사 숙주전력공급회사 송전운검부 활선작업반 반장으로서 근 40년을 하루와 같이 생산 일선을 사수해오면서 자기가 하는 일에 애착을 가지고 전공해왔다. 고생을 잘 견뎌내고 과감히 감당하는 그는  1,700키로메터 되는 송전선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숙주 전력망 송전선 매 하나의 베이스탑마다에 발자국을 남겼다. 급하고 어렵고 위험한 사업 현장에는 언제나 그의 드바쁜 모습이 떠날 줄 몰랐으며 종래로 한건의 안전책임 사고도  내지 않았다. 그는 부지런히 배우고 혁신했으며 팀을 이끌고 선후로 54가지 항목을 연구개발하는 성과를 올리고 41가지 특허를 획득해 업계의 전문가, 장원으로  불리웠다. 그는 중요한 지식은 종이쪽지에 적어두고 틈만 나면 보는 습관이 있다. 몇십년간 그는 이렇게 만장도 넘는 ‘작은 종이쪽지’들을 모았다. 그가 늘 책을 보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알기에 동료들은 기술난제에 부딪치기만 하면 모두들 그를 찾아 해결하기를 즐긴다. 이로 해 그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금메달 지식인 허씨’로 친절히 불리우기도 한다. 대학교 겸직 교사로 대학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는 그는 또  15만자에 달하는  《고압선로 활선 점검수리 일터 양성 심사 전형 문제고(題庫)》를 집필 출판했다. 그런 그는 공익사업에도 열성적이다. 해마다 짝을 무어 돕기 행사를 벌리는데 이미 여러명의 빈곤학생들을 부조해 학업을 완성하고 재활치료를 받게 했다.

★ 총서기의 말씀

2017년 5월, 총서기는 황대년의 선진사적에 대해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총서기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황대년은 과학기술 보국의 리상을 지니고 조국의 부강, 민족의 진흥,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힘을 이바지하는 것을 필생의 추구로 삼고 우리 나라 교육과학연구 사업을 위해 돌출한 기여를 했다. 그의 선진사적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다. 총서기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반드시 마음속에 원대한 리상을 품고 지성으로 나라에 보답하는 그의 애국심을 따라배우고 지식을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며 용감히 앞장 서는 그의 직업 정신을 따라배우며 명리에 담백하고 달갑게 기여하는 그의 고상한 정조를 따라배워 애국의 정, 보국의 뜻을 조국의 개혁발전의 위대한 사업에 융합시키고 인민이 력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분투 속에 융합시켜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분투자’ 황대년(1958―2017)

황대년은 유명한 지구물리학자이다. 생전에 그는 길림대학 지구탐측과학및기술학원의 교수, 박사생 지도교사로 일련의 중대한 과학기술 성과를 취득해 심층자원 탐측과 국방안전 건설에 돌출한 기여를 했다. 2009년 황대년은 국외의 우월한 과학연구 조건과 생활을 결연히 포기하고 동북지역의 제일 첫  ‘천인계획’ 귀국자로 되였다. 그가 담당한 〈항공 탐측 장비 쩨마 항목〉과 〈지구 심부 탐측 관건 의기 장비 연구제작 및 실험 항목〉은 단시일내에 국외 운송 금지 및 기술 봉쇄 병목을 돌파하고 국내 기술 공백을 메웠다. 이와 동시에 그는 ‘조국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자기의 소임으로 여기고 ‘나갈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는’ 한갈래 인재대오를 이끌어냈다. 2017년 1월 8일, 황대년은 병으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해 나이 58세. 2017년 7월, 중화전국총공회는 황대년에게 전국 5.1로동메달을 추서했다.

★ 총서기의 말씀

2019년 신년사에서 총서기는 특별히 ‘일부 빛나는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새시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며 우리들이 영원히 그리워하고 따라배울 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중에는  32년간 섬을 지키고 나라를 지켜온 왕계재도 있다. 이에 앞서 총서기는 왕계재의 선진사적에 대해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왕계재는 후회없는 사수와 기여로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치 않은 인생의 아름다운 장을 엮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애국 기여 정신을 대대적으로 창도함으로써 이를 새시대 분투자의 가치 추구로 되게 해야 한다.

‘인민의 본보기’ 왕계재(1960―2018)(왼쪽)

왕계재는 생전에 강소성 관운현 개산도 민병초소 소장이였다. 개산도는 우리 나라 황해 전초로 면적이 고작 축구장 두개 크기 밖에 안되나 전략적 위치는 십분 중요하다. 1985년 부대에서 편제를 철회한 후 민병초소를 세웠으나 조건이 간고한 탓에 선후로 섬에 오른 10여명 민병들은 모두 장기적으로 섬을 지키기를 원치 않았다. 1986년, 26세 나는 왕계재가 섬을 지키는 임무를 접수했다. 그 때로부터 그는 안해와 함께 섬을 집으로 삼고 고독과 동무하며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식물마저 자라기 어려운 고도를 묵묵히 사수하면서 청춘 시절을 조국의 해안 방어 사업에 바쳤다. 2014년, 왕계재 부부는 전국 ‘시대의 본보기’에 선정되였다. 2018년 7월 27일, 왕계재는 근무중 질병이 돌발해 구급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때 나이가 58세 밖에 안되였다. 2019년 9월 17일, 국가주석 습근평은 주석령에 서명, 왕계재에게  ‘인민의 본보기’ 국가 영예칭호를 수여했다.

★ 총서기의 말씀

2020년 신년사에서 총서기는 ‘보통인의 평범함으로 평범치 않은 인생을 써내려간’󰡓일부 영웅들을 찬양했다. 그중에는 청춘과 생명을 빈곤퇴치 사업에 바친 황문수도 들어있다. 이는 그녀에 대한 총서기의 처음으로 되는 찬양이 아니다. 이에 앞서 총서기는 황문수의 선진사적에 대해 중요한 지시를 내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황문수는 연구생 졸업 후 대도시에서의 사업 기회를 포기하고 결연히 고향에 돌아와 빈곤퇴치 난관공략의 제일선에 열성을 쏟아붓고 자기를 헌신했으며 아름다운 청춘으로 공산당원의 초심사명을 해석하고 새시대 청춘의 노래를 엮었다.

‘시대의 본보기’ 황문수(1989―2019)

황문수는 생전에 광서쫭족자치구 백색시당위 선전부 간부였다. 2016년 그녀는 북경사범대학 연구생 졸업 후 고향 백색에 돌아와 사업했다. 2018년 3월, 황문수는 조직의 호소에 적극 호응해 락업현 백니촌 제1서기를 담임하고 열성을 다해 일했다. 그녀는 88세대 418명에 달하는 빈곤군중들을 이끌어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이로부터 전 촌의 빈곤발생률을 20% 이상 낮추었다. 2019년 6월 16일, 황문수는 주말 시간을 빌어 전양현에 돌아가 중병으로 수술한 지 얼마 안되는 아버지를 찾아뵈였다. 쏟아지는 폭우에 주재 촌 군중들의 생명재산안전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당일 밤도와 차를 몰고 일터로 돌아오던 도중 산사태가 터져 불행하게 조난당했다. 그녀 나이 겨우 30세. 황문수는 습근평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의 교육과 인도하에 성장한 우수한 청년 대표이며 빈곤퇴치 난관공략 일선에서 피와 땀을 휘뿌리고 자기를 잊고 헌신한 기층 당원간부의 축소판이다. 2019년 7월 17일, 중화전국총공회는 황문수에게 전국 5.1로동메달을 추서했다.

맺는 말:

우리가 오늘 갖고 있는 모든 것들에는 로동자들의 총명재질이 응집되여있지 않는 것이 없고 로동자들의 신근한 땀방울이 스며있지 않는 것이 없으며 로동자들의 희생과 기여가 들어있지 않는 것이 없다. 습근평 총서기는  “광범한 근로대중들은 로력모범들을 본보기로 일터를 사랑하고 본업에 충실하며 신근하게 일하고 힘써 진취하며 용감히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새시대 로동자의 노래를 엮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모두 로력모범들을 본보기로 삼고 그들로부터 힘을 얻고 전력을 다해 전통을 이어나가며 분투로 래일을 열어나가자.

/구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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