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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는 영원히 잊어서는 안되는 제전(祭奠)!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新华网 ] 발표시간: [ 2020-12-14 09:51:35 ] 클릭: [ ]

 
2019년 12월 13일, 남경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식 현장.
 

2020년 12월 13일은 일곱번째로 되는 남경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일이다. 

중국의 력사를 펼쳐보면 남경은 분명 극히 범상치 않은 편장임에는 틀림없다.

남경은 중국 력사상 중요한 문학, 예술 및 정치 수도로서 중국 고대의 서예와 회화에 능한 훌륭한 인물들을 배태했다. ‘6조(六朝)’ 사륙문(騈体文)의 청수함과 깊은 의미도 여기서 세상에 널리 퍼졌다.

 
사진은 2018년 12월 29일 찍은 남경장강대교 야경

흥망성쇠를 거쳐오고 세상의 갖은 풍파를 겪을 대로 겪으면서 이 도시의 력동과 수려함, 이 도시의 천태만상들은 첩첩산봉우리간에 자리한 사당의 루각과 함께, 정다운 회수(淮水)를 따라 문인묵객들의 필끝에서 기록되고 웅대한 청사에 기재되였다.

그런데 바로 83년전 이 모든 아름다움이 그렇게 처참하게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졌다.

1. 아픔―그 때 그 곳은 인간지옥이였다

1937년 12월 13일,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남경을 공략했다. 그 이후의 한달여 되는 동안에 남경 성내의 30만 이상 되는 중국인들이 일본군에 학살당했다.

 
한 일본군 병사가 남경 교외의 시체가 가득 쌓여있는 참살 현장에 서있다.

이 기간 강간 사건은 2만여건이나 일어났고 3분의 1 이상에 달하는 건물이 훼손되였으며 재산 손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총살, 칼부림, 생매장, ‘백명 참수(百人斩)’, ‘집단학살’까지 침략자들의 폭행은 말로는 다 형용키 어려웠다. 그들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량지와 도덕을 떠나 거의 광기에 가까운 행태로 학대와 도살과 인멸을 일삼았다.

 
일본군은 남경의 많은 청장년들을 묶어서 교외에 끌고 가서는 집단학살했다.
 
오늘에 와서 이 피비린 한페지를 읽을 때마다 당년 남경 백성들의 두려움에 찬 그 눈빛, 절망에 찬 그 울부짖음과 힘없는 몸부림, 침략자들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 선혈이 랑자한 백정의 칼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일본군이 살해된 남경 시민을 장강에 던져넣고 있다.

 
남경 시민이 일본군에 묶이운 채 찔려죽었다.

2. 호소(痛訴)―진상을 밝히고 용감히 직시하다

1937년 12월 13일, 하숙금 일가의 조손 9명중 당시 8세였던 그녀와 3세 나는 녀동생외 3명은 일본 병사한테 겁탈당한 후 살해되고 기타 4명은 모두 일본군의 총검에 목숨을 잃었다. 그녀도 총검에 세번이나 찔렸는데 혼절하는 바람에 그나마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하숙금

1994년 8월, 하숙금은 전쟁이 끝난 후 첫 사람으로 남경대학살 생존자의 신분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 민중들에게 자기가 몸소 겪은 일들을 통렬하게 진술하고 남경대학살의 력사 진상을 까밝혔다.

일본 우익분자들 앞에서 하숙금은 법률을 운용해 존엄을 수호하고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력사를 위해 정의를 지켜냈다.

1937년 12월 14일 아침, 도수화의 아버지 주만영은 일본군에 잡혀간 후로 감감무소식이였다. 그러나 도수화는 종래로 아버지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녀의 노력하에 사학가들의 여러모로 되는 검증을 거쳐‘주만영’은  ‘통곡의 벽(哭墻)’의 제10,665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한획 한획 새긴 것은 고난이고 회억이요, 애상이고 더우기는 명기였다.

2018년 12월 7일, 기은지, 류건지 로부부가 중국침략일본군남경대학살조난동포기념관을 찾아 그들이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찍은 1,008장에 달하는 필림 원판과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찍은 2만 2,286장에 달하는 디지털 사진을 기증했다.

 
기은지, 류건지 로부부.
 
 
 

20여성상, 비바람도 막지 못했다. 그들은 애도자와 추모 행사를 렌즈에 담는 것을 자기들의 사업으로 간주해왔던 것이다…

3. 명기―이는 중국인들마다 잊어서는 안되는 력사이다

선혈이 랑자한 침략자의 폭행 앞에서 중화의 아들딸들은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피 흘려 싸워 중국인민항일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취득했다.

이는 중화민족이 근대이래의 혹심한 위기로부터 위대한 부흥으로 나아가는 력사의 전환점이였고 세계 반파쑈전쟁 승리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서 중국인민들의 승리요 세계인민들의 승리이기도 했다.

 
2016년 12월 13일, 학생 대표가 남경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중화민족이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외래 침략에 맞서 싸운 비장한 사시는 정의 필승, 평화 필승, 인민 필승의 력사적 진리를 심각하게 명시했다. 몇십년이 흘렀다. ‘30만 망령들이 원한을 품고 일월이 참담하고 전세계가 경악’하는 피눈물 나는 비극은 이제 다시는 재연되여서는 안된다.

2017년 12월 13일, 남경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식 현장에서 평화의 비둘기를 날려보내고 있다.
 
피리소리, 노래소리가 다시금 산천에 울려퍼지고 진회(秦淮) 량안에 다시금 그제날의 번화함이 재현될 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돌아오고 차들이 실북 나들 듯하는 도시도 돌아왔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어떤 정신이, 그 어떤 도리가 시시각각 매개 중국인들을 일깨우고 있다.

 
2019년 12월 3일, 남경대학살 생존자 갈도영(앞줄 좌1), 하숙금(앞줄 좌2), 애의영(앞줄 우1)과 새로 확인한 희생자 주만영의 딸 도수화(앞줄 우2)가 제사(家祭) 행사 현장에서.
 
남경대학살은 우리들이 영원히 잊어서는 안되는 굴욕적인 력사이다. 치욕을 씻어버리려면 오로지 이를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두고 분발하여 강성을 도모하며 평화를 수호하고 부흥의 뜻을 세워야 한다. 민족의 부흥이 하루속히 실현되고 평화의 홰불이 대대로 전해지게 하는 것은 력사에 대한 최고의 존중이고 희생된 동포들에 대한 최선의 안위이기도 하다고.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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