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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인물에게 올리는 뒤늦은 글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7-26 10:42:44 ] 클릭: [ ]

지난 7월 13일, 필자는《길림신문》에서 《청렴의 대명사,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다》는 제목으로 된 길림성인대 전임 부주임 리정문동지의 사적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즉석에서 내가 읽고 듣고 보고 한 감동사실들로 리정문에게 올리는 글을 쓰려고 작심했다.그러나 지난 19일 인터넷길림신문에서 윤수범의 《고 리정문동지를 추모하여》란 글를 읽고 리정문이 애석하게도 타계한것을 알게 되였다. 실로 너무 비통하고 안타까운 비문이였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 글을 《감동인물에게 올리는 뒤늦은 글》로 쓰게 됨을 밝힌다.

내가 읽은 리정문

《청렴의 대명사,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럽없다》와 《고 리정문동지를 추모하여》란 글을 읽고 필자는 리정문동지야말로 우리 민족의 감동인물, 감동간부임을 더욱 깊이 느꼈다.

두편의 글에는 이런 몇단락의 글이 있다.

- 리정문주임은 촌사업을 시찰할 때면 먼저 생활이 제일 어려운 집 3가구를 알려달라 하고는 그들을 한집한집 찾아서 돈 200원씩 건네면서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나중에야 촌지부서기를 찾아 마을의 정황을 알아봤다. 장춘에 돌아온후 우평이 그 600원을 계산해주려고 하니 그는 《나 개인의 명의로 드렸는데 그럼 안되지.》라고 하면서 되려 우평이를 교육하였다.

- 한번은 리주임이 눈병때문에 치료하러 혼자서 북경으로 떠났다. 그만한 직위에서 다른 간부들 같으면 앞뒤에서 수행인원들이 모시고 전용차나 비행기로 가련만 그는 침대표는 고사하고 좌석표도 없이 서서 가는 표를 겨우 사서 홀몸으로 렬차에 올랐다.

- 리주임은 성인대에 간후 아침운동을 하기 위하여 50원짜리 눅거리 자전거를 샀다. 그는 아침전에는 그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고 퇴근후는 그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을 보고 그 자전거를 타고 출근도 하였다. 이 일이 행정관할 판공청 부청장에게 발각되여서야 그에게 전용차와 운전기사가 배치되였다.

- 성인대 상무위원회의 부주임으로 선거된후 뭇사람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을 때면 리정문은 여러차례 이렇게 말했다.《나보다 덕재를 구비한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소수민족〉이라는 덕을 봤을뿐입니다.》

- 그의 딸 리해단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무슨 일이 그렇게도 많으신지 새벽에 제가 일어날 때마다 탁상등을 켜놓고 앉아서 뭘 쓰기도 하고 조용히 사색에 잠겨있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글을 다 써놓고 가끔 어린 저와 〈해단아, 제목을 이렇게 달면 좋을가, 아니면 바꾸는것이 나을가, 네가 생각하기엔 어떠냐 라며 물어보시기도 했습니다. 어린 제가 뭘 안다고... 》

부인 한금옥은 이렇게 말한다. 《6남매중 맏이인 그는 관직이 어느 위치에 있든 자녀와 부모, 동생들을 위해 조직과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번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남의 일에는 발벗고 나서는 그였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일가친척들외 소식을 알고 부랴부랴 찾아온 문상객들까지 합해 20여명 정도였다. 그는 생일도 안해와 자식들끼리 조용히 한끼 식사로 끝내는것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읽을수록 감동된 나머지 그 직위에서 진짜 그렇게 했을가 하는 의혹까지 들 정도였다. 이에 비춰 너무나 인상이 깊었던 김봉관의 풍자만화《세대주가 국장이면…》라는 만화가 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내용인즉 남편이 국장이면 안해가 안하무인으로 온 동네에서 우쭐대고 아들, 딸들은 물론 그 집 개까지 으르렁거리며 으시대는 만화였다.

내가 들은 리정문

리정문의 처형 딸 김향단의 말이다. 《우리 이모부는 자식들이 글을 읽고 베낄수 있게 되자 이모부가 먼저 읽고 선정한 가지가지 자료들을 늘 자식들에게 맡겨 필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이 아버지의 비서였지요..》

지난 80년대에 나는 리정문의 이런 《부친상》을 구전(口傳)으로 듣고 한때 리정문을 본따 그 시늉을 하기도 했다. 《부친상(父親像)》이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배움의 자세다. 이미 례로 든 리정문의 딸 리해단의 말이 아버지가 남긴 《부친상》을 증명한다.

유태인의 우수성은 《책의 민족》으로 불리는 유태민족이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 따라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어린이 천재교육》과 아버지의 《부친상》과 관련된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유태인으로 첫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기신거박사는 《어릴 때부터 보아온 책에 파묻혀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리정문의 아들(리무림), 딸(리해단)의 오늘의 모습과 그들의 성장사가 그들의 《부친상》을 썩 잘 설명한다.

내가 만난 리정문

《리주임은 성인대에서 자신을 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낮췄습니다. 그는 언제나 찾아온 사람들에게 여러 부문에 련결해주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는 늘 자기는 인대임직원들의 뒤근심을 덜어주는 복무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에게 일이 생기면 언제나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도와줬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더욱 존경하였으며 우러러 봤습니다.》

이는 길림성인대상무위원회 판공청 부주임, 래신래방사업 국장을 지낸 정년퇴직간부 왕국의가 리정문을 회포하며 하는 말이다.

바로 필자가 리정문의 《자기의 일처럼 남을 위해 여러 부문을 련결해주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덕목을 직접 수혜한 사람중의 하나다.

2001년 9월 하순에 필자는 출국을 했다가 돌아오니 해당 부문으로부터 오기자가 연변자치주정부 일본고찰방문 수행기자로 출국수속을 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때 고찰방문단의 다른 단원들은 이미 일본비자를 받은 뒤였다.

이에 필자는 관련 부문의 특별취급으로 주에서 당일에 출국수속을 끝내고 이튿날에 장춘에 가서 성외사판공실을 찾아 출국수속을 하려고 하니 국경절공휴가 당금이여서 정상공무출국수속을 접수하지 않았다. 이에 안달아난 필자는 이리저리 고려하던중 떠오르는분이 성인대 리정문비서장이였다.

그래서 사처에 수소문하여 리비서장과 겨우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리비서장은 지금은 손님접대중이니 15분후에 다시 전화를 하란다. 하여 꼭 15분후에 전화를 했더니 그는 이미 성외사판공실의 아무개와 련계를 했으니 그를 찾아가란다. 그래서 그분을 찾아갔더니 그는 방금 리비서장한테서 전화가 왔더라며 그렇게도 열성것 도와주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또 다른 도울 일이 없는가고 물었다. 그 시각 필자는 리비서장이 얼마나 감사한지 일구난언이였다.

모든 수속을 가급으로 끝내고나서 《후- 》하고 시름을 놓는데 리비서장한테서 또 전화가 왔다. 일이 원만하게 잘 끝났는가, 도와드릴 일이 더 없는가, 일본에 다녀온 뒤 연변을 위해 좋은 글을 많이 써달라고 부탁하는외 국경휴가를 잘 보내라는 인사까지 잊지 않았다.

그번 일은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깊고 가장 감동을 받은 잊을수 없는 일로서 필자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만약 모든 당, 정 간부들이 리정문처럼 인민의 공복이 된다면 우리의 당은 백성들이 따르는 당, 우리의 정부는 백성들이 시름을 놓는 정부로 될것임에 의심없다.

리정문은 명실공히 일생을 《정문(正文)》에 바쳤고 한생을 바를 《正》을 지킨 우리 민족의 감동인물이라 하겠다.

그래서 인테넷길림신문에서 《[백년백인 38]우수한 조선족간부 리정문의 감동 이야기》를 쓴 저자는 리정문을 《청렴의 대명사와 같은 사나이, 한점 부끄럼 없는 사나이》,《민족을 불문하고 탄복하고 존경한다. 》 《청렴하고 정직하며 렴결봉사하는 당의 훌륭한 간부이며 훌륭한 민족간부이기에 손색이 없다.》로 종필했을것이라고 필자는 생각된다.

리정문, 그는 우리 민족 간부의 훌륭한 감동인물이다.

필자는 고 리정문동지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오기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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