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吉林朝鲜文报-吉林省委朝鲜文机关报
● 国内统一刊号: CN22-0030 邮发代号: 11-13
길림신문 > 국제

미국 청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이버 폭력 받고 있어

박명화      발표시간: 2024-12-15 11:19       출처: 중앙방송-조선어 选择字号【

에반은 시카고 주재 중국총령사관에 사진첩을 기증했다. /인민일보

“전쟁 죄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물품은 박물관에 들어가지야 개인이 수장해서는 안된다. 이는 나의 원칙이다.”

2년전, 미국의 한 전당포 사장인 에반 카일은 일본침략군의 범죄 증거를 기록한 제2차 세계대전 사진첩을 무상으로 중국에 기증했다.

올 11월, 에반은 첫 중국 관광을 시작했다. 그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열정에 감동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공항에 마중가고 어떤 사람들은 꽃다발을 선물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고향으로 초청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줬다. 또 어떤 네티즌들은 댓글에 환영과 사의를 표했다.

제2차세계대전 사진첩을 기증한 리유로 에반은 미국에서 장기간 사이버 폭력을 받았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에반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중국행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01

“진상은 영원히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에반은 미국에서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다. 2022년, 모 판매자는 그에게 제2차 세계대전시기의 사진첩을 택배로 보냈다. 사진첩 속의 내용은 에반을 놀라케 했다. “사진 속의 ‘남경로’를 보고 섬뜩했다. 악명이 높은 ‘남경대학살’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살 사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진속 의 내용을 본 후 에반은 깊은 불안에 빠졌고 심지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사진첩을 처리할 방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가장 고통스러운 력사를 밝힐 수 있는 물품이다.” 만약 사진첩을 다시 판매자에게 돌려주면 진상은 영원히 매장될 것이다.

에반의 가족에는 제2차 세계대전 피해자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군의 총에 맞아 뇌전증에 걸렸고 일생동안 전쟁의 그늘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대학교에 진학한 후 에반은 이 력사를 체계적으로 학습했고 전쟁과 평화에 대해 더 깊은 사고를 하게 되였다.

최종 에반은 사진첩을 구매하고 인터넷에 영상을 올려 더 많은 단서와 건의를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생각지 못하게 큰 론쟁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이 결정의 후과에 대해 무서웠었다. 망할 뻔 했다.”

“저녁 7시에 발표한 영상은 새벽 1시에 전세계에 퍼졌다.” 에반의 회억에 따르면 사진첩 속의 내용이 너무나도 큰 주목을 받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부 사람들은 사진첩이 위조되였다고 주장하고 일부 사람들은 에반을 “전쟁 죄행으로 이름을 알리겠다.”고 겁박했다…

더 무서운 것은 수많은 위협 메시지가 애반에게 날아들었고 수상한 자동차 한대가 한주일 내내 그의 전당포 맞은 켠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이 저를 삼켜먹을 것 같았다.” 그는 부득이 방탄조끼를 입게 되였으며 장사도 잠시 그만두었다. 이로 인해 그는 심각한 심리 문제까지 생겼다.

02

“폭풍을 헤쳐나오다”

에반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수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그를 지지해줬다. “당신은 우리의 력사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 같은 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미국에서 류학하고 있는 한 남경의 류학생은 에반에게 편지를 썼다. “남경에서 온 사람으로서 사진첩을 보호하고 전세계에 우리가 겪었던 고난을 밝힌 당신에게 사의를 드린다.” 그외에도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그의 가게를 찾아 에반을 포옹해주고 그에게 편지를 쓰고 생화를 선물하며 지지를 표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소행이 틀림없음을 인정했다.

사진첩에 대한 고증을 거쳐 에반은 사진 속의 “남경로”가 남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해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록 남경대학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에반은 사진첩이 여전히 일본침략군의 죄행을 반영한 증거물이라고 생각해 전세계에 보여주려고 했다.

한 변호사의 도움을 통해 에반은 시카고 주재 중국총령사관과 련락을 취했다. 그는 사진첩을 중국측 대표에게 정중히 건네줬다. “평화, 조화, 우정의 명의로 이 사진첩을 기증할 수 있어 영광이다.”

이날 에반은 답례로 준 령사관의 편지 한통과 소중한 우정을 상징하는 중국 도자기를 받았다. 에반은 늘 두 선물을 간직하고 있다. “제가 정확한 일을 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물품들이다.”

사진첩을 기증한 1년 후인 2023년11월, 에반은 개인 사이트에 글을 올려 지난 한해 동안의 소감을 적었다—“폭풍을 헤쳐나왔다”. 그는 글의 말단에 령사관이 보내준 편지 속의 한마디를 인용했다. “력사를 귀감으로 삼은 당신의 기증은 세인들을 격려할 것이고 선량한 마음으로 평화를 수호하게 할 것이다.”

지금도 그에 대한 일부 미국 블로거의 공격과 욕설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에반은 다시 돌이킨다 해도 여전히 자신의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고 표했다.

03

“평화는 유일한 답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사진첩을 기증한 것으로 에반은 중국과 깊은 우정을 맺었다. 그도 중국에 와 중국의 풍경과 력사, 문화를 느끼고 싶었다.

올 11월 16일, 사진첩을 기증한 2년 만에 에반은 소원 대로 첫 중국행을 시작했다. 그는 첫 려행지를 북경으로 택했다. 착륙한 후 그는 한시간만 자고 바로 천안문광장으로 가 국기 게양식을 관람했다.

에반은 새벽 첫 해살을 맞으며 서서히 오르는 오성붉은기를 주시했다. “현장의 의식감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한 아저씨는 얇은 옷을 입은 에반을 보고 자기의 군복 외투(军大衣)를 에반에게 선물해줬다. “너무나 따뜻했다.” 이 외투는 에반의 새 일상복이 되여 그를 따라 여러 북경 관광지를 다녔다.

그는 만리장성, 원명원, 천단을 참관하고 중국 전통복장을 입고 세계 평화를 기원했다. 그는 또 각종 중국 음식을 맛보고 어린 친구들에게서 태극권을 배웠다…

려행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에반을 알아보고 그와 사진을 남겼다. “내가 어디 가든 환영을 받았다. 너무 열정적이였다.” 비록 에반을 향한 사이버 폭력은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 그는 차츰차츰 무시할 수 있게 되였다. “중국인민의 열정이 나를 치유해주었다.”

에반은 중국에 대한 부분적 서방 매체의 묘사가 편파적이라며 직접 중국에 와 보니 중국의 발전은 이미 그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스마트 로보트가 음식을 문 앞까지 배달해주고 발달한 고속철도는 많은 도시간의 거리를 반시간 내로 좁혀주었다. “북경은 마치 기원 3000년의 미래도시 같다.”

에반은 이번 중국행에 천진, 상해, 남경 등 도시에 가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남경대학살 조난동포 기념관을 참관하고 침통한 력사를 깊이있게 료해했다. 현재 열심히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에반은 중국이 “두번째 고향”으로 되길 기대하고 있다.

“평화는 유일한 답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줄 수 없고 진정으로 어떤 문제도 해결해줄 수 없을 뿐더러 더 많은 고통만 가져다준다.”

“나는 계속하여 평화와 교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에반과의 교류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평화’였다. 에반은 사진첩을 통해 사람들이 침략 폭행을 반성하고 현재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일로 하여 평화의 ‘다리’를 놓았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이 같은 소중한 경력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중국조선어방송넷


编辑:박명화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