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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취자, 우리는 누구인가?(7)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8-03-31 10:30:24 ] 클릭: [ ]

음력설이 지나자 모두들 자기가 갈곳으로 떠난다. 집구석에 홀로 앉아 텔레비죤과 동무하거나 피씨방에 들어박혀 이런저런 소식이나 시사를 들춰보는것도 인젠 좀 눈치가 보이게 되였다. 한국에 온지 두달이 가까워오도록 일자리 하나 찾아보지 않고 누님한테 신세만 지는것이 낯이 두터운 나로서도 좀 별로였다.

여기저기 전화질도 해보고 인터넷으로 일자리도 찾아봤지만 마땅한곳이 없었다. 중국에서 가지고 온 소비돈도 거덜이 나고 친구들이 넣어준 경비도 인젠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자리 소개해준다고 하던 사람들로부터 한달 혹은 두달만 기다리라는 기별도 왔다. 그렇다고 집에 죽치고 앉아있을수도 없고 그래서 11일 아침에는 큰 마음 먹고 다섯시반에 일어나 매형이 준비해둔(일이 없을 때 집에 돌아와 용역을 뛰기 위해 준비해둔것임) 작업복에 안전화를 받쳐신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용역사무소에 찾아갔다.

처음으로 간 용역사무소가 얼마나 낯설고 긴장했던지는 말하고도 싶지 않다. 뒤구석에 앉아 혹 안면있는 사람 없나고 목을 빼들고 살폈지만 50여명이 모여앉은 가운데 알만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아침밥은 일 시키는 사람이 사준다고 해서 밥도 안먹고 나온 자신이 미울 정도로 배속에서는 꼬르륵소리가 수시로 튕겨나올듯 준비완료상태다. 이전에는 아침이 아니라 점심까지 안 먹어도 저녁까지 버텨내던 나였는데 왜 이럴가? 간신히 일 안배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렸다기보다 버텼다고나 할가?

《충주에 가셨던 분 일곱명 나오세요! 》,  《온양에 가셨던 3명은 xx씨의 차에 앉으세요!》... 사장이 일 안배를 척척 해나가면서 방안에 모였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나의 바로 앞줄에 앉은 사람들까지 일감이 생겨서 둘 혹 서넛씩 짝을 무어 일하러 떠났다. 일할줄 모르는 내가 숨이 한줌만해서 어떤 일이 차려질가 근심하는데 사장의 일 안배대신 생뚱같은 말을 하는것이였다. 《오늘 저하구 여행 가실분 없으십니까?》 내가 무슨 말씀인지 몰라서 어안이 벙벙해질 때 옆에 앉았던 사람들은 벌써 툴툴거리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난다. 눈치를 보니, 오늘은 다른 일감이 없는 모양이다. 나오면서 옆자리에 앉았던 50대의 사나이와 물었다. 《요즘 매일 이렇습니까?》 《정상적이죠. 요즘은 일감이 잘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춥기도 하고 아직 때가 아니라서...》 그는 12월 말부터 보름도 일을 못했다고 말했다. 솔깃해난 내가 오늘 일 나간 사람들가운데 조선족이 있는가고 넌지시 물었다. 《아까 첫패로 나간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늦게 나온 꺽다리가 조선족이라고 하더구만. 그외는 잘 모르고...》그의 말을 들어보면 조선족들은 건장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로 묶는 팀에 합류하여 노가다판을 뛰기때문에 여기서는 보기 힘들다고 한다.  여기 와서 한두달씩 일하다가 서로 손이 맞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일감을 맡아하면 하루에 10여만씩 버는데 7만원짜리 일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법도 하다. 매형도 천안에 세집을 두었지만 대구에서 일하지 않는가? 서울에 있는 친구도 평택이나 수원에서 일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매형의 친구들이나 친척들도 대부분 세집부근에서 일하는 사람이 없다. 멀리 나가서 한달에 한두번 혹은 일년에 한두번씩 집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나의 용역근무계획은 슴슴하게 끝났다. 벼르고 벼른 계획이였지만, 정작 일감이 생겼더라면 어찌했을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할줄 모르는 내가 같이 나간 분한테 부담이라도 되지 않았을가?

하여간 그후로는 아예 나가지도 않았고 경남 통영 어느 조선소에서 일하는 친구한테서 일자리 구했는가 하는 전화가 오자, 그쪽의 일이 힘드냐가 아닌 하루에 몇시간씩 일하는가부터 물었다. 4천여명 근로자들이 일하는 비교적 큰 조선회사라고 하니, 두말없이 일자리를 부탁하고 서류를 보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해도 한번은 정규적인 회사에서 일해보고싶은 마음에서였으리라~

며칠후 18일에 통영 광도면 황리에 있는 모 회사에 와서 면접을 받으라는 전화통지가 왔다. 난생처음 가는 길이라 물어물어 겨우 그곳에 도착해 보니 어마어마한 조선공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전에 중국에서는 물우에서 배를 만들고 한국에서는 땅우에서 배를 만든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바다와는 몇키로메터 떨어진 곳에 높이가 50여메터 되는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산골짜기에 고층건물이 웅기중기 서있는것 같았다. 한반도 남쪽 남해에 잇닿은 곳이라 기후가 서울이나 천안보다 많이 따스했고 길가의 채소밭에 벌써 파란 마늘이 자라고 있었다. 

면접을 보는 소장이 마침 회의에 참가하고 박총무라는 분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고 한국에 언제 나왔으며 어떤 일을 할수있는가 등등 묻는 말에 조심스레 대답을 하였더니, 주요하게 용접일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조공을 하면서 기술을 배워야 할것이라고 하면서 내일부터 출근하란다. 내주는 작업복과 안전화 등을 가지고 회사에서 안배해주는 숙소에 도착했는데 마침 중국에서 함께 온 친구와 한칸을 사용하게 되였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근무하게 되는 회사는 세계에서 5위권에 드는 조선회사인데 우리처럼 일하는 조선족이 백여명 된다고 한다. 중국에서 용접을 해보던 사람도 여기 와서는 새롭게 심부름을 하는것부터 시작해야 되며 적어서 두달 많아서 석달후에라야 용접사 자격시험을 치는데 거기에 합격되여야 용접봉을 사용하게 된다는거이다.

원래 일이라면 깜깜이던 나는 잘 됐다 싶어 《그럼 좋구나! 천천히 자리잡음하면서 착실하게 배워보자~》 이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석달동안 용접일을 배워주지 않으면 그냥 이꼴로 세월을 보내야 하는데 짬짬이 시간을 내서 용접련습을 해야 할것같다는것이다. 초보자는 아무리 일 잘해도 기본 시급 4000밖에 못받으며 심부름이나 열심히 해야 하지만 용접사자격증을 따면 적어도 6000원 시급에 옆에 조공을 달고 다닐수있고 거기에 다달이 시급이 오른다는것이다. 들어보니 하루빨리 기술을 익혀야 남보다 돈도 빨리 벌고 일도 쉽게 할수있다는 말이다.

일할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쇠덩어리를 다루는 일을 할가 궁리하느라 저녁늦게까지 뒤치닥거리다가 19일 아침 7시에 세수를 대강하고 첫 출근을 하는데, 한 숙사에 있는 한국친구의 차에 앉아 회사식당까지 가서 아침을 먹었다. 일하는 작업장에 가니 아침 체조가 시작되고 다시 작업지시가 하달되였다. 강태공(가명)이라는 기술공이 일하는 옆에서 용접일을 돕는 조공직이였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야 깜깜이라 그저 눈가림으로 들여다보는데 강씨가 웃으면서 《처음 하는 일이죠?》 묻는것이였다. 《녜, 참 신기합니다.》 대답했더니 차차 습관되면 저절로 될것이라면서 많이 보고 모를것이 있으면 수시로 물으라고 한다. 참으로 마음씨 고운 분이였고 일도 얼마나 까근하게 하는지 저도 몰래 존경심까지 가는 분이였다.

육체로동을 처음으로 하는 지라 남들에겐 어줍짢은 일이지만 참으로 힘들때가 많다. 땡볕에 무거운 용접선을 끌고 다니기도 지겹고 용접기를 들고 여기저기 시키는대로 오갈닐때는 정말 이까짓것하고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난다. 하지만 일에 뼈를 굳혀온 친구는 아무런 일도 아니란다. 이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너, 마작놀기 좋아하지? 마작놀아서 매일마다 400원씩 딴다고 생각해라~》 친구의 우스개섞인 농담이다. 《하루 일하면 개한마리 살수있다고 생각하고 머리 수그뜨리고 참고 견디기요~》 친구의 동생이 말한다. 《눈동냥이라도 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열심히 하면 노가다보다 훨씬 많은 돈도 벌수있을거요!》 그들의 말에는 자아위안과 할수없는 처지에서라도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이 사회에 살아남고 떳떳하게 살아가려는 의지와 태도가 엿보이는것이다. 이제 시급 만원씩 받을때까지 열심히 일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배로 벌수 있을거라며 서로를 위안하면서  세사람중 꽁무니빼는 사람이 없기를 약속했다.

오늘까지 엿새째로 일했다. 용접반이라지만 용접봉 한번 제대로 쥐여보지 못했고 청소나 징크칠하기 등 자질구레하고 어지러운 일들만 하면서 참고 견딘다. 중국에서 안고온 부자의 꿈을 꼭 실현하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일 모르던 놈이라도 정작 마음을 먹으면 못할일이 없나보다. 인젠 제법 자기절로 시키지 않는 일도 찾아할줄 알고 전기용접이나 수동용접순서에 맞게 척척 공구들을 가져다 놓을줄도 알고 기공과 손맞추어서 제딴에는 비슷하게 일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강씨도 일이 바쁘지 않으니까 쯤쯤이 담배도 태우라면서 나에게 배려를 돌려주고 가끔 들리는 반장도 쉬면서 하라고 격려를 해준다.

그러나저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이제 강태공씨와 같은 이들처럼 혼자서도 여러가지 용접기계를 다루고 부동한 자세, 부동한 위치에서 나름대로 용접일을 할수있게 되려면 얼마만한 시간이 수요될지 모른다.

견지하는 자, 마음먹은 자, 용기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사회에서 그보다 더 큰 결심이 없다면 절대로 발붙이고 살아남을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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