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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순방일지1(대련-연태)

편집/기자: [ 김태국 전광훈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09-26 15:43:51 ] 클릭: [ ]

9월 23일~25일.

차창밖으로 단풍 든 가을이 스쳐지난다. 

9월 23일 오후 1시, 연길발 대련행 렬차는 《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 순방취재를 떠나는 우리를 싣고 서서히 연길역을 떠났다. 렬차가 안도역을 지나니 고향의 산야는 울긋불긋 단풍과 설레이는 황금물결로 곱게 단장되여 익어가는 가을빛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밖에서 추적거리는 가을비에도 불구하고 을씨년스럽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그러나 환경에 끌려 가벼워지는 마음은 결코 아니였다. 워낙 막중한 취재임무가 어깨를 지지누르는지라 그렇게 가볍게 흔들릴 계제가 없었다. 내내 거대한 의무감과 사명감에 마음의 탕개를 풀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래도 잠귀신은 어김없이 내 눈두덩이를 잡아당겼다. 저녁을 먹고나니 식곤증일가, 잠이 스르르 찾아온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먼 산의 륜곽이 어렴풋이 스쳐가는 신새벽이였고 차는 막 웅악성(熊岳城)역을 지나고 있었다.

대련역 북문출구에서 바라본 대련역

차는 덜커덩거리며 드디여 대련역에 이르렀다. 역에서는 대련동엽실업유한회사 박영호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거쿨진 체구의 멀쑥한 화룡 사나이-박영호사장은 늘 그렇듯이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고 있다.

《아침은 먹었어?》

《아니요.》

《대련 왔으니 해물맛을 봐야지.》

마침 친구들과 함께 금주에 나가있다가 련락을 받고 달려왔다는 박영호사장은 필자가 지난번 한국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도 대련공항까지 마중나와 주었고 기차표까지 끊어주었던 마음씨 고운 분이다. 우리에게 해산물을 대접한다며 자기집으로 향하는박영호사장 역시 고향을 떠나 연해도시에 진출한 수많은 조선족중의 한 사람이다.우리의 취재대상이 관내진출조선족이라면 박영호사장은 대련진출조선족이리라.

《먼 길을 오느라 배고프지? 빨리 먹어.》

어느 새 해물탕을 끓여놓은 박영호사장은 따끈따끈한 밥과 국을 우리 앞에 차려놓는다. 8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우리에게는 진수성찬이였다.

오후 2시. 연태로 가는 만영해호를 타고 우리는 대련을 떠났다. 동북3성의 마지막 역인 대련에서 박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관내의 첫역인 연태로 향한것이다.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푸르른 바다, 가끔씩 떠가는 유람선이나 어선들이 보일뿐 일망무제다. 2십여년전, 혹은 10여년전 또 혹은 3~4년전에 현재 우리가 탄 배로 남행길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저도모르게 바다와 함께 설레인다.

연태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반이 좀 넘었고 강만덕사장이 기다리는 개발구에 이르러 처음으로 만난 생면부지의 강만덕사장과 함께 그랜드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였다. 순방취재의 첫역에 도착했음에도 긴 려로의 피곤은 물리칠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깨에 놓인 사명때문에 느슨해질수도 없었다. 민족적인 사명감이랄가 아니면 직업에 대한 집념이랄가 하여간 오래동안 생각해온 일이라 한시도 소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9월 25일 아침 여덟시반, 강만덕사장이 약속대로 차를 보내 우리 일행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강사장은 우리의 취재일정과 취재대상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우리의 요구대로 오늘은 아무아무곳에 미리 련락을 해두었으니 취재가 순리롭기를 바란다고, 새로운 요구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련락하라고 말한다.

연태개발구 돈꼬레 앞에서 바라본 바다가.

이번 순방취재활동의 첫날에 강만덕사장과 부인 박월영녀사 그리고 연태옥타의 신승만회장의 도움으로 오전오후 취재가 순조롭게 진행되였다. 자기회사 일정만해도 빽빽한데 우리 일정까지 깐깐히 챙겨주는 강만덕사장을 비롯한 연태옥타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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