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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순방일지(3 위해, 문등)

편집/기자: [ 김태국 전광훈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09-29 08:38:57 ] 클릭: [ ]

9월 28일~29일 오전.

연태시교는 한창 우후죽순처럼 일어서는 고층빌딩들이다.

27일 오후 4시에 연태를 떠나 순방취재 로선의 제2역인 문등으로 향했다. 도로수건때문에 덜커덩거리는 소형뻐스는 취재팀을 싣고 키질하며 50여분이면 도착한다는 거리를 2시간 넘게 달려 6시반이 되여서야 문등에 도착하였다. 문등에서는 (주)삼성제침(三星制针)의 김영기(한국측)부총경리와 변승환(중국측)경리가 우리를 반겨맞아주었다.

깐깐한 기질과 후더분한 성정이 확 돋보이는 김영기 부총경리도 마음에 와닿았고, 가는 곳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어엿한 삶의 모습을 변경리의 느긋한 자세에서 읽으며 기자는 내심 기쁨을 느끼였다. 인간이란 각각 자기 삶의 양상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여유있게 살아가는 자세는 누가 보아도 즐거운 모습이리라. 이런 조선족들의 모습이 가는 곳마다 속속 우리 눈뿌리를 뽑는다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우려가 없을것이라는 념주알도 굴려보았다.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김영기 부총경리가 마련해준 아침밥을 먹고 그와 더불어 그가 보는 조선족과 조선족이 갖춰야 할 최저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쁜 시간임에도 김영기 부총경리는 민족애로 끓는 마음을 안고 우리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어주어 여간 감사하지 않았다. 살벌한 경쟁을 념두에 둔 기업인이 아니라 인간애로 넘치는 그런 자상하고도 후더운 인정을 가진 분임을 대화를 통해 넉넉히 읽을수 있었다.

다음에 만난 사람은 문등경제개발구외자유치5팀 외국인서비스센터 주임 조광호씨였다. 31세의 혈기와 패기가 돋보이는 젊은이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성제침의 변승환경리의 안내를 받으며 달려간 곳은 문등시인민정부 주한국판사처 옥문덕 수석대표가 기다리고 있는 그의 사무실(인민정부청사 3층)이였다. 37세의 옥문덕은 문등시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이며 주 한국판사처 수석대표로 몹시 바쁜 공무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견해는 독특하고 예리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관내에서 공무원으로 사업하는 조선족들 가운데서 얻기 힘든 재목이라는 감이 짙게 안겨왔다.

옥문덕수석대표 취재를 마치고 취재팀은 옥문덕 수석대표와 변성환 경리의 안내로 문등 골프연습장이 있는 남양농장으로 가서 문등한인상공회 회장이며 남양농장 동사장인 리용한(한국인)을 만났다. 리용한 회장이 자신에게는 이곳 문등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해서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워낙 한국 시골에서 잔뼈를 굳혔다는 리용한 회장은 웬간한 어려움은 난관으로 여기지도 않는 끈질긴 의력의 소유자였다. 그 어떤 틀이나 이질감을 찾아볼수 없는 수더분한 리용한 회장이 꾸며가는 남양농장이 록색농장으로 늘 푸른 정기를 방방곡곡에 자랑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남양농장을 내려왔다.

문등한인상공회 회장이며 남양농장 동사장인 리용한

삼성제침으로 돌아온 우리는 삼성제침에서 가장 오래동안 드팀없이 일해온 조선족 청년 장문호와 리성철을 만나보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보았다. 그밖에 우리 조선족에 대한 인상을 알아보고저 이 회사에서 근무년한이 가장 긴 한족아가씨 왕소화와 시원원을 만났다. 언어가 다르고 모든 습관이 다른 민족의 눈에 비낀 우리 민족의 얼굴을 찾아보기 위한 탐방에서 두 아가씨의 대답은 우리에게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하였고, 민족의 긍지를 느끼게 하였다.

문등에서의 취재를 마감하고 취재팀은 변승환 경리가 불러준 승용차에 앉아 제3역인 위해를 향해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것은 오후 4시가 지난 시간이였다. 위해에 도착한 기자는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또 시정부 광장으로 카메라를 메고 야간취재를 떠났다.

산언덕우에 높이 자리잡은 위해시정부청사.

아쉬운것은 매일마다 저녁이 되면 시정부광장에 모여 록음기를 켜놓고 우리춤과 사교무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던 조선족분들은 보이지 않고 위해시선전부에서 조직한 대형문예공연이 한창인 가운데 한족들이 사교무를 추고 있었다. 광장주위를 돌면서 수소문했지만 조선족분들은 만날수 없었다.

아홉시가 넘도록 기다렸지만 가망이 없었다. 막무가내로 귀가를 작정하고 내려오는데 문득 《현민아~》하는 우리말이 귀를 때린다. 돌아서 보니 30대의 조선족녀성이 아이한테 뭔가 사주는데 지갑을 꺼내들고 있었다. 무작정《안녕하세요?》인사를 올리니 놀란 모습이다. 그녀의 맞은켠에 있던 할머니가 손으로 돈지갑을 막으며 조심하라고 눈짓하기에 실례했음을 느끼고 《죄송합니다. 저는 취재차로 위해에 온 길림신문의 기자입니다.》하고 자아소개를 했다. 길림신문이란 말을 듣고 30대의 녀성은 《아, 그래요?》하면서 반가워하는것이였다.

시정부청사문앞에서 굽어본 위해의 밤거리.

알아보니 정씨성의 녀성은 훈춘에서 위해에 와 무역을 하는 분이란다. 어머님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광장에 나왔는데 오늘따라 조선족분들이 춤을 추지 않는단다. 무슨 일이 있는거같다며 래일 산동대학위해분교 운동장에서 운동대회를 한다던데 아마 그래서 나오지 않은것은 아닐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귀가 뜨이는 소식에 구체적인 내용을 좀 알아봐줄수 없냐고 다잡아 물으니 전화번호 남기면 래일 아침 알려주겠다고 한다. 마침 갖고 간 명함이 없어서 그냥 전화번호만 알려주고 가벼운 심정으로 호텔에 돌아왔다. 밤깊도록 취재기록을 정리하고 나니 새벽 4시가 다 되였다.

아침 7시26분에 전화벨소리에 놀라깨니 문등에서 만났던 한동철씨가 부모의 고향이 화룡시 서성진명암촌이라면서 부모의 성함을 물어왔다. 잠이 덜깬 목소리로 대답하고 다시 눈을 붙이려했지만 운동회가 몇시에 어디서 열리는지 근심되여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었다.

위해시지왕궁 부근의 상가들에는 우리글로 된 간판이 많다.(처가집치킨호프집은 할빈에서 온 조선족녀성 최명희가 남편과 함께 차린 가게고 그옆의 남양농장은 문등에서 만났던 리용한회장의 남양농장직영위해1호점이란다. 세상은 좁고도 너른가보다.)

대충 씻고 장비들을 점검하니 아홉시가 되여온다. 그래도 전화가 없어 정씨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실망스럽게도 오늘은 운동회를 하지 않고 10월 1일에 한단다.

일정을 따져보면 청도에서 열리는 조선족민속축제와 겹칠것같아 오리무중에 빠졌다. 위해에서는 그때까지 기다릴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당장 위해를 떠날수도 없다. 길떠난지 7일이 되였고 그새 쌓여둔 옷가지들을 빨았는데 습윤한 위해의 기후에 하나도 마르지 않았다. 하루동안 호텔에서 그동안 빠뜨렸던 기사도 정리할겸 하루 휴식하는것도 좋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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