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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제침문등분사에서 만난 사람들

편집/기자: [ 김태국 전광훈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09-30 10:24:46 ] 클릭: [ ]

-삼성제침문등분사 김영기 부총경리를 만나

대구 태생인 한국사람 김영기를 만난것은 한국회사에서 일하는 조선족들을 만나기위해 문등에 간 28일 오전, 늘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말 한마디 토 하나까지 빈틈없는 50대중반의 김부총경리는 기자의 이번 순방취재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무척 반가워하면서 참 좋은 일을 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문등에 온지 7년이 되지만 회사를 집으로 삼고 열심히 일해가는 김영기를 두고 회사의 직원들은 한사람처럼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일에서는 요구가 높고 원칙적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부모처럼 잘 생각해준다는것이 그들의 리유다. 아침 제일 첫사람으로 회사에 나가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것이 인젠 몸에 배인 습관이 되였다고 한다.

조선족직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마다 관점은 다 틀리겠지만 나는 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형제라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중국 와서 오래 있으니 생활이나 하는 일은 한국에서와 꼭 같지만 가족들과의 생리별이 힘들다. 교포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같이 생활하면 덜하겠지만 머나먼 동북에서 오신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온 사람과 다를바가 없다.》

생산을 관리하는 부총경리라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을 면접할때가 많다. 조선족직원을 채용할때면 그는 늘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특별한 대우는 궁리하지 말라, 회사에서 급여를 많이 주지 않나를 고민하지 말고 회사를 내집처럼 사랑하면 되려 회사에서 고민하게 되는법이다. 회사를 고민하게 만들어보라.》

조선족직원을 채용해보면 지역별로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더니 《한국사람들 사회나 교포사이에서 연변사람들 평가는 좀 별로다, 좋은 평가는 안 나온다. 다 그런것은 아니고 몇몇 때문에 그렇게 평가가 전도된다. 좋은 사람도 같은 취급을 받지 않나 생각된다.》

한국업체에 취직하러 오는 조선족들은 통역이라면 그냥 사장이나 따라다니며 번역을 해주면 다인줄 안다고 한다. 사실 통역은 회사의 현장일에 대해 잘 알아야 잘 할수 있는데 그래서 일을 배우라면 내가 통역이지 직원이냐고 의아해하는 조선족들을 많이 보았다고 말한다.

이제 관내진출을 할 조선족들도 많은데 그들에게는 어떤 요구가 없는가하는 물음에 김영기는 이렇게 말한다.

《같은 민족이지만 생활환경이 다르기에 습관자체가 많이 틀릴수 있다. 처음부터 한국습관대로 하자면 힘들겠지만, 한국 기업에서 근무할라치면 한국의 습관을 받아들이면서 회사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한국문화를 빨리 익혀 적응되여야 한국기업에서 일하기 쉽다. 능력만큼 일하면 알아주기때문에 회사가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전에 내가 회사를 위해 얼마만큼 해줄것인가를 생각하라. 회사는 절대 몰인정하지 않을것이다.》

지방정부, 회사, 직원, 안해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변경리

이 회사에는 설립초기부터 회사를 도와 당지정부와 담판하고 직원을 모집하고 로임을 정하고 하는 자질구레하지만 회사의 리익과 개인의 리익, 그리고 지방정부의 리익에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면서 회사와 직원 그리고 정부로부 인정을 받는 조선족경리가 있는데 그가 바로 흑룡강태생의 변승환(42세)씨이다. 의학원을 나와 의사로 있다가 친구의 소개로 문등에 발을 들여놓은 변승환은 중등키에 서생티가 다분히 풍기는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두 딸의 아버지인 변승환은 한국회사에 근무하면서 모든 일들을 깨끗하게 처리한다는 평을 받은 사람이다. 모든것이 제도화된 한국회사에서는 자그마한 소홀함도 용납하지 않는다는것을 함께 일하면서 터득하고 몸으로 실천해온 변승환은 인젠 모든 업무에 능한 고참이 되였다.

맡은바 직무에 힘을 다하여 회사와 직원사이, 직원과 직원사이 일부 복잡한 문제들을 령활하게 처리하여 회사내의 불필요한 마찰이나 모순을 감소시키고 삼성제침이 문등에 튼튼히 발을 붙이게 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그는 가정에서도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다. 문등에 오면서 무직업자가 된 안해에게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마련해주었지만 가게를 운영하느라 고생하는 안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한다. 큰 딸은 어쩔수 없이 한족학교에 보냈고 둘째도 또 그렇게 되지 않을가 하면서 서글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번 순방취재활동정황을 료해하고 문등에서의 일정을 안배해준 장본인이기도 한 변승환씨는 조선족의 마음속에 수도처럼 자리잡은 연변에 가서 사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한 회사에 근무하는 조선족친구들

(주)삼성제침 문등분사에는 길림 반석이 고향인 두 친구가 있다. 그들이 바로 라인 관리를 맡아보고 있는 선장 장문호(37세)와 생산반장을 맡아보는 그의 짜개바지 친구 리성철(37세)이다.

관내에 먼저 들어온 리문호는 1999년 집을 떠나 위해, 청도 등지를 돌다가 2003년 문등 (주)삼성제침 문등분사에 입사하였다. 처음에 입사하였을 때, 문호씨는 언어상의 장애와 생활방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타향살이에 길들여진 그는 이듬해 친구 리성철을 회사에 소개한다.

성정이 어질고 말수가 적은 리성철은 친구의 소개로 회사에 입사하기는 했으나 신입사원과 고참의 차이를 실감하며 불안과 불만의 나날을 잠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삶임을 직감한 리성철은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도리를 깨우친다. 지금 리성철이는 작업반장으로 큰 어려움이나 고민이 별로 없이 회사에서 착실하게 일하고 있다.

장문호네는 안해가 외국 나갔고 아이(12세)는 반석 부모집에서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다. 고향에 있던 촌 조선족소학교가 폐교되였기때문이다. 조선족 젊은이들이 죄다 밖으로 나오다보니 마을에는 늙은이들과 몇 안되는 아이들뿐이더라고 얼마전 고향에 다녀왔다는 리성철이가 보탰다. 조선족 학생래원이 없어 학교는 폐교되고 몇이 안되는 애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족학교에 다녀야 한단다.

장문호는 가끔 집에 학비와 용돈을 부쳐보내기는 하지만 늘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대신 리성철이는 큰 가정적 부담이 없이 초동때를 벗지 못한 로총각이다.

장문호나 리성철은 당지 사람들에게 업수임 당할 때마다 서러움을 느꼈지만 억울함을 느끼기보다는 삶의 과정이라 여기고 입술을 깨물고 참아왔다.

보통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불량품 한눈에 척척 골라낼수 있는 선장과 반장은 서로 친구의 정과 의를 지키며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처음에는 봉급에 많이 집착했는데 이제는 봉급보다는 취미로 일한다면서 오직 돈만 생각한다면 짜증나서 일을 못한다는 타입이다. 일은 재미로 해야 한다는것이 반석이 고향인 두 친구의 한결같은 견해다.

둘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부모가 있어서 그렇지, 친구 하나 고향에 남아있지 않기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같은것은 잊고 산단다.

회사란 자기집과 다름없죠뭐》

이 회사에는 한국인들과 조선족직원들의 식사를 책임진 조선족아줌마가 한분 있었다. 올해 43세나는 서란태생의 김명숙이라는 분이였는데 남편과 함께 청도 성양에 있다가 지난해에 문등에 집을 장만하고 이 회사에 들어왔단다.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닌 연고로 한어는 잘하나 우리말은 좀 서툴다고 하면서 자식도 이곳 한족학교에 다닌다고 덧붙였다. 집에서도 대부분 한어를 사용하다보니 자식은 우리 글은 물론 말도 별로 못한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하는데 꽤 힘들때가 많다고 한다. 기자가 찾았을때는 마침 채소구입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휴식실에서 쉬는 참이였는데 방안에 들어가보니 한창 마늘을 바르는 중이였다. 쉼시간에도 마늘을 바르는가고 물으니 밝게 웃으면서 회사일이나 집일이나 모두 마찬가지예요. 항상 미리미리 해놓고 정성스레 해야 시름이 놓인답니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녀는 이제 몇달 지나면 회사에 들어온지 일년이 되는데 그동안 이 회사 한국사람들이나 조선족들이 모두 잘 대해주어서 어려움같은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한족직원들이 바라보는 한국인과 조선족

좌 시원원(24) 우 왕소화(30)

장문호나 리성철과 같이 일선에서 일하는 조선족은 물론 변승환과 같은 조선족 간부들에 대한 일가견을 알아보고저 기자는 (주)삼성제침 문등분사에서 가장 오래동안 함께 일해온 왕소화(30세) 작업조장과 시원원(23세) 작업조장을 만나보았다.

18살에 집을 떠나 5년간 회사에 근무한 시원원과 회사에 근무하는 6년 사이에 한국 본사에 가서 2년간 연수한 경력을 갖고 있는 왕소화는 한국 생산라인 총책임을 맡고 있는 김영기 부총경리(한국측)와 변승환 경리(중국측)에 대해 얘기할 때 눈물이 글썽해졌다.

《너무 좋은 분들이죠. 간부라기보다 그냥 친인같아요.》

해산을 할 때 5달동안 기본로임을 받으면서 편하게 집에서 몸조리를 했다는 왕소화는 그 감회가 더욱 깊다.

《아주 좋아요. 삼성제침 회사에 출근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고 그냥 농촌에 있었으면 이런 혜택은 꿈도 못꾸죠.》

조선족들에 대해서도 눈에 거슬리는것이 하나 없단다. 회사에서 조선족을 중용하는것 같은 감이 들기도 하지만 조선족을 흠모해마지 않는다고 했다.

《두가지 언어를 장악하고 있다는것이 얼마나 우월한 조건인가요? 한국어공부를 했지만 어디 마음처럼 돼요? 정력과 시간이 전혀 따라가지 않아요. 사전을 뒤져볼 시간마저 없어요.》

왕소화는 몇해전에 연수를 가기 위해 한국어공부를 했고, 한국어능력시험에도 통과했었다. 그러나 일상화되지 않은 타민족의 언어는 쉽게 잊혀지게 마련인것이다. 그의 소개에 따르면 이전에 한국어공부도 했고 한국연수를 갔다온 직원들중 결혼하거나 임신하면 사직하고 회사를 나간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왕소화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장기간 한가지 일을 하다보니 일에 미립이 생겨 일하는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왕소화와 시원원은 입을 모은다.

《한국에 연수갈 기회가 다시 차례진다 해도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왕소화와 같은 한족들앞에 가장 큰 벽은 바로 언어장애다. 언어의 장애라는 벽을 넘어 한국 기업에 취직하여 끝까지 버티며 스스로를 전승해 나가는 한족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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