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순방일지(4 위해,청도)

편집/기자: [ 김태국 전광훈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10-02 10:01:34 ] 클릭: [ ]

9월 30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지왕궁 종합시장부근을 두루 돌아다니며 위해의 눅눅한 아침공기를 맛보았다. 내 마음도 누긋이 젖어드는 그런 느낌이 와닿는 아침 산보였다. 새벽안개속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우리 글로 된 간판들, 그 줄느런히 나붙어있는 우리 글 간판을 보며 기자는 우리 민족의 끈기와 생명력을 심심히 느끼였다.

국경절을 맞는 위해 고신경제개발구 거리모습

우리 글로 된 간판이 있다는것은 우리 민족이 여기에 살고 있고 이 구역에 타운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연태, 문등을 거쳐 위해까지 오며 우리 민족이 그 어디를 가나 완강한 정신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것 같아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게 되였다.

간판은 우리 글인데, 들어가면 한족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나 려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양대가리 걸고 개고기를 판다고 편협하게 판단하거나 한족들이 우리 문자를 리용해 우리 민족 소비자를 《낚시질》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시대에 아주 뒤떨어진 편면적인 관념에서 파생된 산물이리라. 한족들이 우리 글로 된 간판을 번듯이 내붙인다는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긍정이며 우리 민족의 언어에 대한 존중이며 우리 민족의 문화와 우리민족에 대한 수용이다.

이런 바탕은 그 누가 만들어준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 개혁, 개방의 《선두주자》들이 20여년에 거쳐 애써 만들어놓은 결과이며, 그들의 위망에서 우러나온 위상이라고 생각하는것이 옳을것 같다. 위해의 길가에 서있는 택시기사거나 길을 가는 한족분들을 불러 조선족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아주 훌륭한 민족이라고 칭찬해마지 않는다. 이 얼마나 긍지로 차넘치는 평판인가! 지왕궁부근과 고신경제개발구, 경제개발구 등지를 오가며 흑룡강, 길림성, 료녕성 등지에서 온 조선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4~2006년까지는 위해에 조선족들이 비교적 많았는데 그뒤로 한국방문취업제, 국제발금융위기 등 영향으로 조선족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따라서 음식점이나 기타 한국인과 조선족을 상대로 한 상가들의 손님이 줄고 문을 닫은 상가들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위해 조선족축구팀들에서 일요일이면 산동대학위해분교운동장에 모여 경기를 진행한다.

위해의 조선족들은 천지축구팀을 비롯해 여러 축구팀을 구성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경색을 벌린다고도 한다. 그리고 로인회 활동도 아주 활발하게 진행된다는데, 박할아버지(부회장)가 일때문인지 만나주지 않아 우리 취재팀은 아쉬운대로 청도로 향발하였다. 뻐스역으로 오는 12번 공중뻐스를 타고 창밖을 보니, 위해의 한 거리에는 무공해 가로등이 설치되여 있었다. 바람에너지와 태양에너지를 리용하여 발전하고 그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가로등이였다. 기자가 사진기를 들고 셔터를 누르려 했는데 멈출듯 했던 차가 그냥 내닫는통에 맹랑하게도 그 아까운 챤스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전국 어느 도시나 다 그러하겠지만 국경 60돐을 맞아 위해시의 거리마다에 내건 오성붉은기는 참 이채로운 가관이였다.

위해에서 본 우리글로 된 광고지들

공중뻐스를 타고 위해뻐스역에 이르니, 시꺼멓게 생긴 20~30대의 젊은이가 우리를 자기네 뻐스에 앉으라고 야단이였다. 길 건너에 있는 뻐스가 당금 떠난다는것이였다. 우리는 제 마음처럼 믿고 급한 김에 그 차에 타기로 하고 길을 가로질러 건너갔다. 점심도 먹지 못한 취재팀은 차에 올라 요기를 할 요량으로 물맛뿐인 배 두알을 샀다. 그런데 막상 차앞에 가보니 차는 낡은 차이고, 손님은 둘도 되지 않았다. 우리는 쫓아오며 권장하는 그 검둥이 젊은이들에게 대꾸 한마디 남기지 않고 발걸음을 돌려 뻐스역에서 티켓을 끊고 차시간을 기다렸다.

청도시교가로등.

창밖으로 바라본 청도뻐스북역

오후 1시 45분, 배를 촐촐 굶은 기자를 싣고 뻐스는 청도를 향해 떠났다. 3시간 25분을 부대끼며 청도에 이른 취재팀은 취재목적지로 가기 위하여 303번 공중뻐스를 갈아탔다. 이 무슨 봉변인가! 뻐스는 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이 손님을 만재했고, 에어컨은 작동도 되지 않는 상황이였다. 국경절을 하루 앞둔 9월의 마지막 날이고, 거기에 추석까지 겸해져서 손님들이 각별히 붐비는 모양이였다. 가만히 서있는데도 땀이 창창 흘러내렸다.

기자는 중간역에서 내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끌고 천여메터를 도보로 《행진》했다. 마음속에는 오직 빠른 시간내에 취재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였다. 그러나 우리가 타야 하는 공중뻐스는 오지 않고 생뚱같은 뻐스만이 기자를 휙휙 스쳐지났다. 러시 아워라 택시는 잡을 가망도 없었다. 걷자, 목적지와의 거리를 줄이자! 기자는 땀을 훔치며 계속하여 도보로 《행진》해나갔다.

기자가 취재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청도뻐스역에 내린지 3시간 반도 훨씬 지나버린 저녁 8시였다. 위해에서 청도로 오는데 걸린 시간이 3시간 25분, 청도 사방역에서 취재 목적지까지 3시간 30여분! 어이가 없지 않으신가, 제씨들은?

참으로 중국은 넓고도 크고 가깝고도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적 공간의 차이가 격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서 시공(时空)개념을 다시 들춰봐야 할것 같은 느낌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