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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리촌시장의 조선족상인들을 만나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10-07 16:17:20 ] 클릭: [ ]

청도시 리창구 리촌시장 전경

3~4년전까지만도 청도시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방으로 불리였던 리촌에는 10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리촌시장이 있다.

1892년에 형성된 리촌시장은 청도시무형문화재명록에 오른 유명한 시장인데 리촌하 동교와 서교를 중심으로 동서길이가 약 1000메터, 넓이가 약 90메터 구간의 강바닥에 위치해있다. 서교서쪽은 주로 농부산품, 량식, 화훼 등을, 동서교사이는 주로 남새, 해산물, 육류와 고기제품 등을, 동교이동은 주로 소상품과 중고상품을 경영하고 있다. 음력으로 2, 7일에 큰 장을 보는데 사방구와 리창구의 주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들끓는다고 한다. 

이 리촌시장의 동서교사이 소식품류매대에 가면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가요?》하는 귀에 익은 우리말을 들을수가 있다. 오미자, 감초, 홍화씨 등 조미료와 민들레, 고구마줄기, 마른 명태, 취나물, 도라지, 마른 더덕, 미꾸라지, 조선족김치, 된장, 고추장 등 조선족들이 즐겨찾는 식품을 경영하는 30~40여개의 매대가 집중된 소식품거리를 거니느라면 연길 어느 시장거리에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착각을 가질 정도다.

이 시장에서 가장 일찍 장사를 시작한 조선족분을 찾았더니 룡정시개산툰에서 왔다는 박복순(56)녀성을 꼽는다. 박씨에 의하면 그가 청도에 온것은 개산툰종이공장에서 퇴직한 1998년도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회사에 출근하였는데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선택한것이 바로 지금 하는 장사란다.

연변에서는 장사란 아예 몰랐던 박씨는 개방도시에 온 한국인과 한국회사, 그리고 그 회사때문에 이 도시에 오는 조선족들을 상대로 적으마한 밑천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란것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같아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차츰 돈이 만들어지고 단골손님이 많아지니까 부끄럽다는 생각은 깡그리 없어지더군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손님을 끌겠는가를 고심하게 되고 고객이 수요하는 품종을 구입하느라 신경을 쓰게 되더란다. 마침 한족손님이 무우장아찌와 마늘짠지같은것을 사가기에 한족들도 조선족음식을 먹는가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잘 사가지 않았는데 인젠 적잖은 한족들이 사먹는다고 말한다.

《한국인과 한국회사가 많던 2~3년전까지만 해도 장사는 꽤 잘되였습니다. 그런데 리촌에 있던 많은 회사들이 성양구로 옮겨가고 또 금융위기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귀국하면서 조선족들도 눈에 뜨이게 줄어들더군요.》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회사에 출근하는 조선족들은 회사가 옮기면 회사를 따라 움직이기에 성양구로 많이 갔을것이며 또 한국방문취업제가 실행되면서 적지 않은 조선족들은 시험을 치고 한국에 갔을것이라고 한다.

10여년간 장사하여 모은 돈으로 지난해에는 래서시에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박씨는 아들(28)이 상반기실무한국어시험에 추첨되여 한국에 가게 되였다면서 무척 기뻐했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박씨까지 세 식구가 다 한국어시험을 쳤으나 아들이 혼자 추첨되여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기회가 있을테니 한국에 가는것은 조만간의 일이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리촌시장에서 최소년령의 조선족을 찾았더니 소고기매대를 경영하는 흑룡강성 가목사 탕원 태생의 박진화(남 25)씨라며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내든다. 《장사 참 잘해요.》

고중을 졸업하던 2004년에 아버지를 따라 청도에 온 박진화씨는 청도에 올때의 목적은 지금의 소고기장사가 아니였다고 한다. 고향에서 쌀가공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고향의 쌀을 청도에 진출시켜보려고 노력하던 참이였었다. 하지만 정작 청도에 와보니 사정은 달라졌고 소고기장사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되였다고 한다.

소고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 한족에 비해 소고기를 선호하는 조선족들이 대거 청도땅에 밀려들면서 소고기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것을 보아낸 박씨의 아버지가 소고기장사를 선택한것.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수밖에 없었습니다.》박씨는 그때의 정경을 회고하면서 얼굴에 울상을 지어보이더니 빙그레 웃는다. 고중을 갓 졸업하고 남앞에 나서기도 부끄러워 할 젊은 나이에 소고기장사를 하라니 정말 싫었다고 한다. 지금에 와보면 그게 다 경험이 되고 재산이 되였단다.

리촌시장의 육류매대는 고기에 물을 많이 주입하는것으로 소문높은 곳이다. 박씨는 자기한테서 소고기를 사가는 대부분 손님이 조선족들이나 한국인인데 한족장사군들처럼 물을 탈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매일 한마리씩 소를 잡지만 다른 매대들보다 더 빨리 팔수가 있었다. 그것을 아니꼽게 본 한족장사군들이 가만둘리 없었다. 한번은 소고기를 운반해오는 도중에 누군가 그의 소고기에 페인트를 쏟아 소고기를 버리게 한적도 있었는데 그것이 지방신문에 실리면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소고기는 더 잘 팔리게 되였다고 한다. 리촌부근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조선족들 대부분은 그의 단골로 되였고 그의 소고기를 사야 시름놓을수 있다고 말한다.

성양구시장에도 소고기매대를 하나 장만하고 아버지가 직접 경영한다는 박씨네를 두고 주변 상인들은 참으로 장사속이 빠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한 아줌마는 기자에게 이런 말도 들려준다. 《우리 조선족들은 뭉쳐야 되는데 잘 뭉쳐지지 않아요. 이전에 제각기 널려서 물건을 팔때는 한곳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같이 했어요. 하지만 정작 한곳에 집중하여 장사를 하게 되니 또 지방에 따라 패가 갈라지더군요. 흑룡강이니 길림이니, 연변이니 하면서 참 왜 이럴가요?》

동북3성 부동한 지역에서 부동한 직업에 종사하다가 거세찬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청도땅에 남하하여 리촌시장이라는 자그마한 울타리안에 또 하나의 조선족거리를 형성한 이들은 저마끔 자기의 노력으로 새로운 부를 창조하고있다. 조선족이여서 반갑고 조선족이여서 형제처럼 생각되더니 정작 여럿이 모이니 또 지방에 따라 따로따로라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가슴이 아플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단다. 9월 28일에 발포된 《청도시하도관리조례(초안)》에는 강바닥에 집시무역활동을 엄금한다고 명확히 규정해놓았다. 이제 이 조례가 통과되면 10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리촌시장도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될것이고 또 그러면 그곳에서 명태, 고추장, 된장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나가던 조선족상인들도 어데론가 발길을 돌려야 하기때문이다.

이제 여기저기 헤여지면 또 서로 그리워할 그들을 뒤로 하고 기자는 무겁게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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