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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새 터전 새 삶 찾아 》순방일지8 (의오-광주-심수)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9-11-05 10:03:42 ] 클릭: [ ]

25일부터 31일까지 세계최대 소상품집산지인 의오에서 각 업종에 종사하는 조선족들을 만나보았다. 의오에는 한국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조선족들이 많았는데 무역업을 하다가 힘이 크면 자영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또 무역때문에 의오에 오는 한국사람들이 많고 거기다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점차 많아지다보니 그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이나 노래방, 마사지 등 서비스업종들도 비교적 구전히 갖추어져 있었다.

2만여명의 조선족들이 동주화원, 강남구역, 배촌 등 구역에 조선족동네를 이룰 정도로 조선족사회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청도나 상해, 연태, 위해 등 지역에 비해볼 때 뭔가 좀 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족활동이 주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를 증명해준다. 고려끝에 교회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의오조선족교회

리영복목사

장춘 쌍양구태생인 리영복(42)목사가 설교하고 있는 의오조선어교회는 200여명의 성도들이 찾는 비교적 큰 교회였는데 의오시조선족운동회, 5.8경로잔치 등 행사들을 조직 진행해오고 있었다. 의오에 온지 10년철을 잡는 리영복씨는 한국에서 신학원을 다니고 다시 중국에 돌아와 동북신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의오에 와 한국과 조선족교민들을 상대로 《한국요리강습반》, 《컴퓨터반》, 《중국어교육반》, 《사랑방》 등을 꾸리면서 지반을 다진 리영복씨는 2004 10 1일에 제1회조선족운동회를 개최, 올해까지 6회를 이어왔으며 해년마다 2~3만원씩 들어가는 운동회경비는 교회에서 부담했다고 한다. 2006년부터는 5 8일에 경로잔치를 베풀었는데 로인들에게 통일복장을 선물하고 음식도 대접하였다고 한다의오에 있는 다른 조선족교회인 염광교회에서도 여러가지 활동을 조직하고 거기에 조선족유치원도 꾸리고 있어 일정하게 조선족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고 화제를 조선족사회에 돌리자 리영복씨는 《의오에 사는 조선족분들은 대부분 무역업에 종사하거나 가게를 경영하다보니 함께 모일 시간이 적은가 봐요.》하고 서두를 떼면서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한둘씩, 서너씩 모이기는 쉽지만 여럿이 모여서 기업인협회나 무역인협회같은것을 꾸릴 시간이 없고 상인들이다보니 정보를 교류하고 원활한 교제를 하기가 좀 어렵다는것이다.

그 어떤 리유에서든지 의오시조선족사회는 교회조직을 중심으로 한 맹아단계의 비규모 지역사회인것만큼은 의심할바 없다.

광주로 광주로...

상해남역에서 발차한 광주행 렬차에 오른것은 31일 오후 2 45, 기차표를 늦게 끊다보니 좌석이 없었다. 기차에 올라보니 요즘 있는 광주교역회때문에 발을 옮길 자리도 없다. 짐을 끌고 메고 간신히 차바곤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숨을 돌리면서 1770여키로메터, 17시간을 이렇게 갈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렬차원을 찾아 사정을 이야기 하고 침대표가 나면 련락해달라고 명함장을 건넸다. 세시간이 지나도 련락이 없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이 천근무게로 내려온다. 하지만 짐을 챙기고 수시로 좀도적이 없나 주위를 살펴야 했기에 불편하게라도 눈을 부칠수 없다. 다섯시간이 지나 다리가 마비되기 일보직전에 반갑게도 렬차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석침대표는 없고 그냥 침대표가 하나 있는데 좀 비싸지만 사겠는가 물어왔다. 얼마인가도 묻지 않고 그냥 내가 그리가마하고 말하고 짐을 끌고 5호차간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응담역에서 125원으로 침대표를 구입하고 침대차간에 들어가니 숨이 활 나왔다. 2호차간에서 9호차간으로 이동하는데만 자그만치 1시간이 걸렸으니 그 정경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풍부한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무너지는 몸을 그대로 침대에 맡기고 늘씬하게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밝아오는데 기차가 두시간가량 연착된다는 안내방송이 방송되고있었다. 연착되더라도 마중나올 사람이 있을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교사시절 함께 있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7시반쯤에 도착할것같다고 말하니 그럼 집에서 떠나겠단다.

광주역에 도착하여 두리번두리번 친구의 그림자를 찾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속에서 찾을수가 있는가?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니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는것이다. 허허 웃고 몇시쯤 도착할수 있는가고 되물으니 10시쯤에는 도착할거란다. 도대체 어디서 마중오길래 이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될가 광주가 크긴 크구나 이렇게 혼자서 생각하면서 또다시 역전광장에서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친구가 있는 벽계원 일각, 여름이 한창이다.

후에 알았지만 친구가 있는 곳은 불산시 순덕구, 광주에 오는 뻐스가 한시간에 한번씩 있다보니 제시간에 도착할수 없었다는것이다. 이전에 광주에 있다고 하기에 그냥 광주에 있는가 했더니 불산에 있는줄은 생각도 못했던 터다. 울며겨자먹기로 친구가 있는 불산으로 짐을 끌고 따라갈수밖에 없었다. 편벽한 곳이였는데 그곳 사립학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며칠전에 사직하였다고 한다.

하여튼 어려운 시기에 멀리서 친구가 와서 반갑다고 식당으로 끌었지만 내가 부자연스럽게 된것은 두말할것 없다.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지 않느냐, 여기서 죽치고 앉아있으면 어쩌는가고 물었더니 주해, 심수, 무석 등지의 외국어학교들에 메일을 보냈으니 소식이 올거란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소식은 한곳도 없다. 학기도중에 교원초빙하는것을 봤냐며 다른 곳에 알아보라고 말했더니 이 나이에 기업같은 곳에서는 들어가기 어렵고 그냥 학원에 나갈가고도 생각해보았지만 광주나 심수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 적어서 불가능할것같다고 말한다.

심수행

심수시 보안구 사정가두판사처

2일 오전 심수 태강(TAIKO)전자유한회사에서 일하는 량성춘(41)씨와 취재의향을 밝히고 오후에 만나기로 하였다. 화룡에서 일어교원으로 있다가 일본어반이 취소되면서 하해를 선택한 량성춘씨는 관내진출 10년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후 6시까지 회사를 방문하고 량성춘씨가 심수구경을 시킨다며 태강회사의 차로를 내여 심수를 다녀왔다. 밤이여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최초의 경제특구인 심수야경을 독자들에게 선물할수 있어 량성춘씨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동료직원들과 함께 있는 량성춘씨(앞줄 우)

심수시 대표성 건물인 68층 지왕빌딩

라호해관 출입경통로

심수역 야경

량성춘씨에 따르면 심수시 보안구 사정가두는 인구가 80여만에 달하는 초대형 가두란다. 하지만 가두 원주민은 3만명에 불과하단다, 연길시보다도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고 경제력도 연길시의 몇배는 될거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4일 길에서 지치고 다시 심수까지 200키로를 왕복하고나니 온 몸이 해나른하다. 그사이 쓰지 못한 글도 보충하고 휴식도 할겸 하루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하기로 하였다. 5일에 광주로 가서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3원리와 회교일대를 돌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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