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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지원군에 지원한 첫사람 ㅡ 모안영

편집/기자: [ 쩐청 특약기자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10-09-01 10:30:40 ] 클릭: [ ]

 

모택동과 그의 아들 모안영

 

모안영은 모택동주석이 자식 중 가장 아꼈고 희망을 기대했던것로 알려지고 있다. 모안영은 모택동의 두번째 부인인 양개혜와의 자식으로 모택동주석의 맏아들이다. 1922년 10월 24일 호남성 장사시에서 태여났고 어린 시절은 외가집과 친척들의 보살핌속에 자랐다.

 

1936년 장학량의 부하 리두장군의 알선으로 프랑스로 가게 되였고 얼마후 전 쏘련으로 이동하여 1946년까지 생활하였다. 18세나던해인 1946년 귀국한 모안영은 중공중앙 선전부등 부서에서 사업했었고 1950년부터는 북경시 기계공장 당총지부서기를 담임하였다.

 

1950년 모택동을 비롯한 중공중앙에서 항미원조를 결정한후 모안영은 첫번째로 중국인민지원군에 탄원해 나섰다.

 

 

모안영이 조선으로 나가기 전 단동금강산 공원에서 찍은 사진, 모안영이 국내에서 남긴 마지막 사진

 

10월 19일 모안영은 혼례를 치른지 한주일도 안되는 신혼부인 류사기를 떠나 팽덕회를 따라 비밀리에 심양을 거쳐 단동으로 왔다. 모안영은 28살 생일을 하루 앞둔 10월 23일 지원군사령부와 함께 료녕성 단동시 관전현 하구촌에 놓인 중조륙로교인 청성교를 지나 조선의 전방으로 나갔다.

 

1950년 11월 25일 모안영은 평안북도 대우동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 작전실에서 미군의 폭격에 뜻밖에 희생되였다.

 

 

모안영희생과 관련하여 팽덕회사령원이 주은래 총리에게 보낸 전보문

 

 

평양조중우의탑 전시실, 지원군 고급지휘관 희생자로 표기된 모안영 렬사

 

 

평양 조중우의탑에 새겨진 글

 

 

평양 조중우의탑 전시실, 중국인민지원군 고급지휘관 희생자 명록

 

모안영의 유골은 조선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렬사릉원에 모셔져 있다. 모안영의 비문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모안영은 모택동의 맏아들이다.

모안영은 중국인민의 믿음직한 아들이며

영운적 기개를 지닌 사내대장부며

우리 후세 사람들이 따라배울 본보기다.

모안영의 일생은 짧았지만

평범하고도 위대한 일생이며 영예로운 일생이다.

 

 

단동시 관전현 하구촌(河口村)의 모안영학교, 1950년 10월 23일 모안영은 이 학교앞의 청성교를 지나 조선으로 나갔다.

 

 

해마다 단동시 관전현 하구촌의 모안영학교에서는 《항미원조》관련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단동시 금강산공원의 료동해방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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