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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생명이다

편집/기자: [ 오기활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0-12-10 16:59:56 ] 클릭: [ ]

일전에 도문시인대 박룡수전임부주임의 회혼례에 참가하였다.

회혼례란 결혼 60주년을 맞는 <<결혼환갑>>이다.

그러나 결혼 60주년이라고 하여 회혼례를 다 올리는것이 아니다. 회혼례를 올리려면 첫째는 부부의 만남이 처녀 총각의 만남이여여야 하고 다음은 요절한 자식이 없어야 한단다. 이밖에 연변에서 <<자식들중 위법행위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더 보탰다고 한다..

이로보아 회혼례를 부부사랑, 자식사랑, 사회사랑 성공의 대명사라 하겠다.

박룡수(85), 전보옥(80)의 부부사랑은 <<늘 푸른 사랑>>이다. 지금도 이들 로부는 손을 잡고 산책하면서 <<젊어서는 남편이 늘 하향을 해서 싸움을 못했고 늙어서는 서로를 아끼다보니 싸울수 없다>>며 <<한뉘 부부싸움을 못했다>>고 전녀사가 <<후회>>한다.

<<지금도 우리들(1남4녀)에게는 전통교양을 하고 80고령 어머니를 입당하랍니다>>

아버지에 대한 큰 아들(박일무)의 <<불만>>이라 할가?!

자식들의 <<효심은?>> 물음에는 <<늘 곁에 와준다>>는 단마디 대답이다.

박룡수의 사회사랑 또한 그지없었다.

필자는 그의 사회사랑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와의 첫 만남은 1965년 9월 어느날, 그때 박룡수는 도문시 홍광공사 당위서기였고 필자는 홍광향수남7대(달라자마을)의 정치대장과 공천단지부서기를 담임하였다. 그날 박서기는 수재조사로 우리 마을에 왔었다.

그 후의 일들이다.

필자는 조실부모로 하여 10살부터 큰집에 얹혀 살았다. 그러다가 <<문화혁명>>때 백부님이 <<조선특무>>라는 루명을 쓰고 억울하게 망나니들한테 타살되였다. 백부님의 타살로 하여 필자는 모든 정치권리를 박탈당하고 생산대회의마저 참가할수 없었다. 그래서 21살나이에 생산대양돈장에 몸을 잠그고 5년간 돼지를 열성을 다해 사양하였다. 그때 박서기는 이 <<총각주골(猪官)>>을 공사, 시 <<모택동저작학습활용열성분자대표대회>>에 출석하여 강용(讲用)까지 하게 했고 대학입시제도가 회복되자 연변농학원에 추천하였다. 필자가 농학원서 입당, 졸업하니 또 홍광향수의소 소장으로 임직시켰다. 너무나도 과분한 대접이였다.

2002년의 4월의 어느날, 뻐스에서 우연히 필자를 만난 그이는 필자의 두손을 꼭 잡아주며 <<그때 돼지굴에서 고생하던 오동무가 명기자로 되였구만! 나는 오기자를 자녀교양의 산 교재로 삼쏘>>하며 대단히 반가워하셨다.

박룡수의 사랑은 필자인생행로의 분수령이였다. 친아버지와 같은 그의 사랑이 없었다면 필자의 오늘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3년 전에 내심속에 간직했던 <<사랑은 생명입니다, 상사님의 사랑이 이몸을 지켰습니다>>는 족자를 그의한테 드렸고 이번 회혼례의 선물로 그때 찍었던 사진을 확대해서 드렸다. 그의 두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 눈물은 정녕 사랑의 눈물이며 생명의 감로수로 필자의 마음을 흠뻑 적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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