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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감동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10-29 22:04:31 ] 클릭: [ ]

요즘 연길에서 조선영화상영주간활동이 있게 되면서 조선예술영화의 대표작의 하나인《꽃파는 처녀》와 만날수 있어 참 감회가 깊었다.

《꽃파는 처녀》가 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간 영화관,컴퓨터화면과 마주하면 통천하 세상물정을 다 접할수 있는듯 착각하고 살아오는 동안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다가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영화관에서《꽃파는 처녀》때문에 다년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의 절정을 절감하게 되였다.

70년대 여라문살되는 그때, 조선예술영화《꽃파는 처녀》를 보러 15리 산길을 걸어 시가지 영화관에 갔다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펑펑 얼마나 울었던지 모른다. 눈두덩이가 부어 눈도 뜰수 없을 정도로 많이도 울었던 기억,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여쁜 빨간꽃/ 향기롭고 빛갈 고운 아름다운 빨간꽃/앓는 엄마 약 구하러 정성다해 가꾼 꽃…》그 꽃을 팔아 겨우 어머니의 약을 지어갖고 꽃분이는 동생 순이와 함께 어머니한테로 달음박질쳐오건만 어머니는 약 한첩 입에 대보지도 못한채 원한을 품고 세상을 뜬다. 어머니를 부여잡고 한없이 울고울던 꽃분이, 《꽃 팔러 간 언니를 기다리며 홀로 서있는 눈먼 동생》순이, 그들이 가엾고 불쌍해서 …서럽고 슬프고 억울해서 울고울었던 그때 그 기억, 그 선률은 아직도 마음속 심처에 깊이 락인되여있다.

4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보는《꽃파는 처녀》는 여전히 그 대목 그 장면들에서 그토록 눈물샘을 자극하는 바람에 실로 눈뿌리 아플 정도로 또 울고 울었다. 그외에도 절규처럼 나의 마음을 끄당기는 서정적인 독백 한대목이 있었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하였건만 꽃분이의 정성이 아직도 모자랐던가. 애오라지 어머니의 병이 나아지라 간절한 희망과 념원과 기대를 안고 가시밭을 헤치며 츠령바위를 톱아 한송이 한송이 꺾어온 그 꽃들을… 어머니는 그 한송이 꽃도 받지 않고 갔으니 어머니가 딸의 심정을 몰라서일가. 야속하다 야속하다, 야속한 이 사연이 무슨 까닭인지 원한은 쌓여도 풀길 없는 이 사연이 그 무슨 까닭인지 그 누가 대답해주랴.》

나라 잃고 땅도 없는, 일제식민통치하의 착취받고 압박받는 주인공을 비롯한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여주고 당대의 사회적모순을 폭로하면서 주인공 꽃분이가 혁명적세계관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의 사상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잘 이끌어내고있는 대목이 아닐가.

1930년 가을, 중국 길림성 항일전적지 오가자일대에서 창작되고 공연된 이 작품을 1972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혁명영화로 각색하였으며 1972년 7월에는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서 열린 제18회 국제영화축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조선의 항일혁명문학예술의 대표작으로서 《피바다》,《한 자위단원의 운명》과 함께 3대 혁명대작으로 손꼽히게 된다.

명작은 전문가뿐아니라 문외한 모두를 감동시키는 마력이 있다. 이름할수 없는 감동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나니 어쩌면 개운함까지 느낄수 있었다. 참, 명작의 감동은 시절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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