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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공모34]이붓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모신 안해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3-19 14:49:40 ] 클릭: [ ]

 

양상태(뒤줄 오른쪽 첫번째),신영순(앞줄 오른쪽 두번째) 일가

나의 안해 신영순은 올해 66세에 난다.15살 어린 나이에 반신불수로 된 친정어머니의 대소변시중을 3년동안이나 들다 결국은 눈물로 친정어머니를 저 세상에 보냈고 시집와서는 시부모를 모시느라 고생많았던 사람이다. 반백이 넘은 지금은 또 이붓어머니를 모시고있고...그런 안해에 대한 고마움을 표달하고자 오늘 이 글을 쓴다.

안해 신영순은 20살에 나와 결혼했다. 그때 우리 집은 길림시 교외의 김가툰에 있었다. 어려서 친정어머니 병시중을 들며 고생많았던 안해는 시집와서도 시부모,시동생에 세 아들까지 아홉식구를 먹여살려야 했다.

어려운 살림형편에서도 안해는 며느리노릇을 잘해 무던하고 착한 며느리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안해의 마음고생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만.

시간이 흘러 동생들이 커서 자립하게 되고 우리 부모들도 타계하시고 가정부담이 적어졌다싶었는데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안해가 시집오기전 친정어머니가 세상뜨자 장인은 후처를 맞아들였다.그후 장인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친혈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장모를 처남이 모셨는데 13년전 처남이 뇌혈전에 걸려 고생하다 나중에는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더는 처남네 집에 있을 형편이 못되였다.

《이붓어머니라지만 수년동안 아버지의 병시중을 드느라 많은 고생을 하신 분이얘요. 3년동안이나 대소변을 받아내고 한밤중에 일어나 기저귀 를 바꾸어드리고 …사실 내가 할 일을 어머니가 했잖아요. 그 은공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어머니를 모셔오면 어떨가요?》 장모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안해가 하는 말이였다.

당시 우리 집은 고리대로 수만원을 꾼 빚에 눌리워 숨쉬기조차 가쁜 형편이였다.

하지만 나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승낙했다. 《어찌 되였든 우리 집 어르신님이니까 우리가 모셔야지.사위도 반자식이라 하잖소?》

막상 장모를 모셔오고보니 곤난이 막심했다. 장모가 거처할 방이 없었다. 방 한칸을 따로 내 온돌을 놓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불을 땔 마다 쓸어져나오는 연기때문에 눈물코물을 짜야 했다. 아무리 온돌을 고쳐봐도 소용이 없었다. 할수 없이 장모를 우리 방에 모셨다. 그런데 장모가 어찌나 코를 고는지 식구들이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다.

장모는 떡을 좋아한다. 떡이 있으면 하루 세끼 떡만 자신다. 안해는 귀찮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떡을 자주 해드렸다. 또 장모가 술을 좋아하기에 우리 집에는 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집 식구들은 육류를 좋아하지 않으나 장모는 반대로 육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사다 따로 해드린다.

둘다 농민인 우리는 수입이 적어 외지에서 돈 버는 아들들이 보내는 생활비로 살고있다. 우리 량주가 장모한테 효도하니 자식들도 따라서 외할머니에 대한 효성을 아끼지 않는다. 외할머니 생활비까지 보내오고 전화올 때마다 외할머니께 문안드리는것을 잊지 않으며 철따라 외할머니께 옷도 사보내고 맛있는 먹거리도 자주 사보낸다.

장모의 틀니가 헐망해지자 우리는 자식들과 상론해서 1000원도 넘는 틀니를 해드렸다. 백내장수술후에도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써야 하는 장모, 안경이 부러질 때마다 잠시라도 답답해할가봐 나는 불이 나게 안경방에 달려가 안경을 수리해드린다.안경을 받아낀 장모가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 나의 마음도 따라서 훤히 밝아지는 느낌이다.

지난해 여름 장모가 페염으로 입원하게 되자 안해는 대소변을 받아내며 정성스레 간호했고 병원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하자 그 나이에 집에서 음식을 해날랐다.

퇴원은 했으나 몸이 허약해져 영양제주사를 열흘동안 놔드렸더니 장모의 몸이 많이 회복되였다.

우리 량주와 장모,손녀 네식구가 사는 우리는 손녀공부때문에 농촌에서 시내로 이사왔다. 5층집에서 사는데 장모는 년세도 많고 눈도 좋지 않아 혼자서 바깥출입을 못한다. 우리는 날씨가 좋을 때면 장모를 모시고 산보를 한다.

2000년에 장모를 모셔왔으니 우리가 장모와 함께 생활한지도 벌써 13년이 된다. 우리 집에 모셔올 당시에는 피골이 상접했던 장모가 지금은 86세 고령임에도 희색이 만면하고 매우 정정하시다.

네식구서 화목하게 살고있는 지금이 즐겁기만 하다.

/길림 양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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