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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재해구로인들을 찾아주신 주덕해동지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7-24 16:07:20 ] 클릭: [ ]

편집자의 말:

흘러간 세월속에 담겨져있었던 《추억》의 이야기들을 모집합니다. 우리들의 추억속 《그때 그사람 그일》모두가 가능합니다. 이야기는 반드시 비공개된 진실한 이야기들이여야 하며 일정한 시대력사적 특징과 전형인물 혹은 사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특히 력사적 가치가 있는 사진을 통해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면 더욱 좋습니다. 원고는 직접 작성하셔도 되고 기자대필도 가능합니다. 원고가 채용된분들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나 이야기제공 보수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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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림신문사

지난 50년대 항상 군중들속에서 고락을 함께하신 주덕해동지(자료사진)

나는 요즘 《길림신문》에 련재되여 나오는 최국철의 《주덕해평전》을 읽으면서 생각되는바가 있어 26년전의 취재수첩을 들춰보게 되였다.

나는 그때 지난세기 50년대 초반, 안도현 복흥향 부녀주임으로 사업하면서 특출한 공헌으로 전국소수민족참관단의 일원으로 북경에 가서 주덕, 진의, 하룡 등 국가 당정군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은 리직휴양간부 최채봉(현재 86세))의 주선하에 발재촌을 찾아가 취재한 일이 있었다.

1954년 11월초의 어느날, 당시 중공연변주위 서기이며 주장이였던 주덕해동지는 안도현에서도 자연재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복흥향으로 찾아왔다.

그날 오전 10시좌우, 그이는 먼저 청일색조선족집거구인 발재촌(당시는 초급사)에 이르자 즉시 마을의 로인님들을 모여놓고 좌담을 가지였다.

하여 촌정부사무실에는 산뜻한 민족복장을 차려입은 로인들 30여명이 모여왔다.

주덕해동지는 먼저 로인님들에게 뜨거운 인사를 올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로인님 여러분! 여러분들의 노력이 없었던들 어찌 이런 문전옥답을 일구어내고 걸구어낼수 있었으며 또 여러분들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이 없었다면 어찌 이 땅을 지켜낼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올해 우리는 큰 자연재해를 입었지만 이런 정신으로 손실을 재빨리 미봉하고 우리의 생활을 꽃피워갑시다.》

주장을 모시고 재해전승토론을 벌려가니 로인들은 저마다 신이 났다.

《주장어른, 옛말에 배는 파손된 곳에서 고치랬다고 재해를 입은 우리들이 의례 일떠나서야 하지요》

《아무렴, 동기부업을 벌립시다. 돈이 있으면 겨울나이 식량을 사고 새해 농사차비도 할수 있지요》

《그럼 이곳에선 무슨 부업이 가장 적합한가요?》

《하, 부업이야 쌔고 버렸지요. 목통도 해오고 목재실이도 하고 문만 나서면 돈벌이감인걸요》

한 로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렇게 주덕해동지는 로인들과 두시간 남짓이 구김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황을 료해하시고 전망을 담론하였다.

이윽고 주덕해동지는 30리 상거한 청구촌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주덕해동지를 바래고난 로인들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채 흥미가 도도하여 계속 이야기를 벌리였다.

《여보게들, 주장어른께 한끼 대접해야 할걸 잊고 너무 섭섭하게 보냈구려》

예순에 난 장성렬로인이 문득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옳수다. 그랬길래 속이 이처럼 내려가지 않지…》

그 이튿날 오전 10시, 주덕해동지가 방금 청구촌 로인님들과 좌담을 마치고 하숙을 정한 집에 이르자 로인 두분이 기다리고있었다.

《아니, 발재촌 로인님들이 아니십니까!》 주덕해동지는 몹시 반색하였다.

《예, 그렇수다. 어제 주장어른께 밥 한끼도 대접못해서 이렇게 주책머리없이…》 로인들은 이렇게 말하며 보자기를 풀었다.

그속에는 깨끗이 속을 들어내고 털까지 손질한 참새 70여마리와 먹음직한 노루 뒤다라 하나가 들어있었다.

전날에 마침 첫눈이 내렸는지라 로인들이 토론하고 저마끔 착고며 덫을 놓아 참새를 잡았던것이다. 한편 장성렬로인은 두고개 너머마을 왕포수네 집에 달려가 노루 뒤다리를 사왔던것이다.

(당시는 산노루와 참새를 마음대로 잡을수 있었다)

《로인님들, 제가 무슨 일을 한것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념려해주십니까…》 주덕해동지의 두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로부터 주덕해동지는 옹근 닷새나 청구촌에 머물면서 온 복흥향의 생산자구운동을 힘있게 지도하였다. 일에 지치고 식사가 좋지 않아 곤난이 많았지만 그는 사업을 계속하였다. 잇달아 청구 발재촌은 물론 전 향적으로 동기생산 열조가 불길처럼 일어났다. 새해농사차비도 빈틈없이 진척되여나갔다. 그 덕에 이듬해 이 향에서는 전례없던 농업의 대풍작을 안아왔다.

어언 그때로부터 59년 세월이 흘러지났고 내가 취재한지도 26년 세월이 흘러지났다.

하지만 이 일은 나의 평생에서 가장 의의있는 취재의 하나로 주덕해동지의 인민대중을 위하는 고매한 덕성과 그에 따라 그이를 그토록 신뢰하고 아까는 조선족대중들의 일언일행은 영원히 나의 맘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감격과 격동의 물결을 세차게 일으키고있다.

/리룡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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