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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터의 로당원 그 이름은 김춘섭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12-31 14:41:43 ] 클릭: [ ]

퇴직을 앞둔 사람들 대개는 《성 쌓고 남은 돌》라는 낱말을 떠올리며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기 일쑤다. 그러나 왕청현당위 부서기로 사업하던 김춘섭씨(68세)는 2002년 퇴직전부터 사업의 수요로 새일대관심사업위원에서 사업하게 되면서 줄곧 공산당원의 자각과 사명을 잊어본적이 없다. 그는 일심정력으로 후대를 위한 사업에 정진해오면서 2014년 11월 6일 중공조직부에서 조직한 《전국리퇴직간부 선진집체,선진개인 표창대회》에서 연변의 유일한 대표로 영광스럽게 선진개인명록에 올랐다.

《오래동안 당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로당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따름입니다. 이런 국가급 영예를 안고보니 하는 일에 더 큰 신심과 힘을 얻게 됩니다.》소감삼아 터놓는 속심말이다.

왕청현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직을 맡아오면서 그는 부주임들인 최금철, 류지신의 협조하에 10년간 왕청현내의 항일유적지와 전적지를 답사하고 혁명사적을 발굴해내면서 영웅렬사 기념비 72개를 세우고 100만자에 달하는 각종 력사문화자료를 발간하였다.

올해만도 연변의 첫 항일전쟁기념관을 설치하였고 소왕청항일근거지에 대한 대대적인 복구와 수건을 진행하였다. 《동장영렬사기념관》을 비롯하여 항일지휘부밀영, 제2쏘베트정부 등 건물들을 재현하였고 근거지내에 2.5키로메터에 달하는 교통로(150만원투자)와 영구성다리 4개를 수건함으로써 소왕청(마촌)항일근거지에로의 원할한 소통을 이룰수 있게 하였다.

현재 소왕청항일근거지는 연변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로, 공청단연변대학애국주의기지, 길림성문화유물보호단위, 길림성당학교청년간부훈련기지로 되여 이곳을 찾아 선렬들을 기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지고있다. 이 기지에서는 늘《다시 항전길 따라 민족혼 고양하고 중국꿈 이루자!》(重走抗战路 宏扬民族魂 实现中国梦!)는 함성이 산야에 쩌렁쩌렁 울리군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그는 학계로부터 강렬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30년대초 《민생단사건》으로 무고한 혁명동지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한 력사적착오의 배후에는 당시 동만특위서기였던 동장영의 책임도 크다는 목소리가 높았던것이다.

여기서 그는 력사적 착오를 어느 한 개인에게 덮어씌우는것은 극히 객관적이지 못하며 력사인물의 위업과 착오는 반드시 구분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년의 동만특위 유적지에 동장영렬사릉원과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올 8월 29일 국가민정부에서 발표한 《중국의 첫기 300명 저명한 항일영웅렬사명록》에 동장영렬사의 이름도 기입되여있어 그는 남모르는 자긍심을 느끼게 되였다.

그는 《실사구시》라는 사상로선을 시종 견지하고있다. 그는 결손가정어린이들이 급증함에 따라 엄중한 사회문제를 초래하고있는 현실에 립각하여 기층 위원회를 동원하여 1600여명 빈곤학생들의 실제곤난을 해결해주었고 《3시반학교》(아동의 집)를 개설하여 결손가정어린이들이 방과후에도 사회의 관심을 받을수 있도록 보살펴주었다.

최근 미성년범죄방지사업의 수요로 그는 호구가 없는 극빈가정 15명(16세이하) 어린이들에게 호구를 해결해주여 그들이 정상궤도에 따른 정상생활을 할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국가호적관리규정과 나라의 기본국책사이에서 죄없는 아이들만 해를 보고 범죄의 길로 또는 죽음의 길로 갈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며 이런 문제는 《전 사회적으로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숙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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