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오기활] 신념이란 뭐길래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3-18 12:02:15 ] 클릭: [ ]

도문시 석현진향양촌달라자대대 토배기 김철송(69)은 20대부터 단지부서기,생산대대장을 20년간 해왔다. 그는 1983년 제1기 촌민위원회 선거부터 지금까지 기마다 95% 이상의 득표률을 확보한 《원로촌민위원》이다.

촌의 튼튼한 버팀목으로 열심히 뛰는 그를 촌민들은 촌주임사업을 하라고 권장해왔지만 김철송은 자신은 청각장애를 가지고있는데다 가방끈이 짧아서 못한다고 늘 거절하고는 계속 촌을 위해 발벗고 사업하였다. 하여 촌민들은 그를 《무관촌장(無冠村長)》이라 부른다.

그에게는 남모르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그토록 중국공산당에 입당할것을 갈망하였다. 46년 전 그의 입당을 심사하는 당지부회의에서 쏘련에 간 그의 조부가 행방불명이 된탓에 《사회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통과되지 못했다. 그후로부터 김철송은 자기 앞에는 당의 문이 닫혀있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당원의 자각으로 살기에 노력하였다.

김철송은 입당을 못한것에 불만이 있을 대신 사람에게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며 향양촌달라자로인협회 회장으로 사업하는 부인 박선녀 (64세)의 입당을 적극 지지해 나섰다.

그는 또 마음속으로 자기의 당령을 46년이라고한다. 그는 촌당지부서기를 찾아서 이런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나는 당원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였다. 내가 죽은후 당지부에서 김철송이 당원답게 살았다고 인정되면 나의 유골함에 당기를 덮어달라.》 물론 비당원의 유골에 당기를 덮을수 없다는것을 그도 알고있지만 그래도 당조직에 이런 유언을 남기고나니 마음이 거뜬하더라고 한다.

당에 대한 신념과 신망은 이토록 한 촌민의 가슴에 드팀이 없이 자리잡고있었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