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리호천옹 60년전 배달로정 답사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리호천옹 60년전 배달로정 답사 ] 발표시간: [ 2015-11-05 15:31:37 ] 클릭: [ ]

남양령에서 저 멀리 호천령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리호천옹(오른쪽 첫 사람).

11월 4일 오전, 1950년대 전국로동모범으로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인 모택동, 류소기, 주은래, 주덕 등의 접견을 받았던 리호천(83세)옹이 고향 덕신을 떠난지 34년만에 다시 고향을 찾아 당시 그가 걸었던 배달로정을 답사하였다.

이날 70년대와 80년대 덕신향당위서기로 사업하였던 김창영과 김재범, 덕신향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주청룡 등이 로정을 같이하였다.

80을 넘긴 리호천옹은 50년대로부터 근 30여년간 80여근의 우편물을 메고 다닌 탓으로 척추가 압력을 받아 다리가 좀 불편한외 별다른 병이 없으며 시력이나 기억력이 매우 좋았다.

촌촌통건설로 곧게 뻗은 포장도로가 촌마다 련결되다보니 당시 그가 두발로 온 하루 걸어야 했던 오불꼬불 80리 길을 달리는데는 불과 반시간밖에 안 걸렸다.

나팔소리는 여전하지만 마을마다 달려나오던 조무래기들은 하나도 없었다.

덕신향우전국에서 시작된 답사는 덕신향중소학교를 거쳐 남양촌, 영동촌, 금곡 등 10여개 부락을 경과해 다시 덕신향 숭민촌으로 이어졌다. 김재범서기가 운전하는 차에 앉은 리호천옹은 마을이 나타날때마다 당시 그 마을에서 발생했던 이야기며 이미 집과 마을이 없어져 허허벌판이 된 고장이며 그때 나팔을 불면 마을밖까지 달려나왔던 조무래기들도 인젠 60이 넘었을것이라는 등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많이 변했어, 몰라보겠네.》를 련발했다.

《그때 저기, 저 골안에 두 집이 있었어요.》가는 곳마다 이야기가 묻어났다.

1952년 아버지가 일하다가 척추를 상하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하고 덕신우전국의 배달원으로 된 리호천옹은 왜소한 체구에 매일 80여근, 많을 때에는 100여근의 우편물을 메고 7개 대대의 49개 생산소대를 도보로 배달해야 했다. 로정이 길고 우편물이 많아 우전국에서는 이틀에 한번씩 배달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신문과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린 그는 매일 11갈래 하천을 건너고 4개의 령을 넘으면서 왕복 80리길을 걷고 또 걸었다.

《덕신골에서 안해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살지.》 리호천옹은 진흙이 위주인 덕신에 비가 오면 길은 온통 진창길로 변한다고 하면서 그때 한쪽발에 흙을 반근씩 묻히고 다녔기에 오늘도 신체가 건강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우스개를 했다. 길림성우전국에서 말을 보내주었고 말이 지쳐 걷지 못하니 오토바이로 바꾸어주었지만 진흙길인 덕신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때 연변일보만 500부였지요. 문맹이 아니면 모두 신문을 주문하게끔 선전을 했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고 당의 정책을 알고 국내외 시사를 알게 하는것이 얼마나 뜻있는 일인지 그 시기를 지나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물론 신문발행부수가 늘때마다 저의 우편가방은 더 무거워졌지요.》 관내 많은 지역들의 한개 향 신문발행량이 10여부밖에 안 되였던 당시 13,000명 인구의 덕신향의 신문발행부수가 천부를 넘겼다는것은 실로 대단한 성과가 아닐수 없었다. 그는 길림성우전계통과 전국우전계통의 선진은 물론 1956년 5월 1일에는 전국로동모범의 영예까지 받아안고 위대한 수령 모주석의 접견까지 받았다.

지나가는 마을들을 가리키면서 이야기꼭지를 푸는 리호천옹.

《그때 우편배달원의 신분은 그냥 동네 심부름꾼 정도로 비천하였지요. 누구도 하려 하지 않은 직업이였지요. 아이들이 숨바꼭질 할 때에 <배달쟁이 꽁꽁>하면서 놀려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던 리호천이 전국로동모범이 되고 그의 사적이 영사막에 오르자 그는 일약 덕신의 영웅으로, 룡정의 명인으로, 연변의 자랑으로 되였다. 그의 사적은 신문잡지와 영화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1978년이였던가, 우리 향에서 상해지식청년들을 위문하러 갔다가 텔레비죤을 사온것이. 그것이 덕신향의 첫 텔레비죤이였지요.》 70년대 덕신향서기로 사업하였던 김창현의 말이다. 사업환경이 가장 렬악했던 시기를 덕신에서 보낸 이들의 이번 자가용답사는 현재 룡정에서 서로 친척처럼 가까이 지내는 덕신출신 모임에서 리호천옹이 《당년의 로정을 한번 가보고싶다》고 말한것이 계기가 되였다.

1980년에 룡정시우전국 부국장으로 승진되여 룡정에 이사온후 자식들의 일자리 때문에 1982년 50세 되는 해에 퇴직한 리호천옹, 퇴직후에도 용남촌의 신문발행과 배달을 도맡아 10여년간 의무배달원으로 된 리호천옹은 로공산당원, 전국로동모범으로서 오직 인민을 위해 복무하여야 한다고 늘 말하고있다.

답사팀 일행. 좌로부터 주청룡, 김창영, 리호천, 김재범, 정종광.

리호천옹을 비롯한 일행은 이번 답사를 통해 당년에 그들이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고 그러한 노력으로 오늘의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졌음을 더욱 실감하게 되였다고 감개무량해 하였다.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