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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독특한 개성이 삶을 빛낸다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17-02-28 09:35:10 ] 클릭: [ ]

옛날 공자의 학생 자공이 스승한테 물었다.

《온 마을에서 한 사람을 좋다 하면 그가 과연 좋은 사람입니까?》

《그러찮을걸세.》

《그럼 온 마을에서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두고봐야지.》

공자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평생 흐리터분하게 바른소리 한마디 할줄 모르는 사람을 꺼려하는 말투였다.

요즘 우리 사는 주변을 두루 살펴보면 대인관계를 유희처럼 그때그때 발라맞추며 눈치놀음에 능숙한 사람을 볼수 있다. 평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원칙은 팽개치고 두손 들어 찬송가만 불러온 사람들의 좌우명은 《왜 더운 밥 먹고 식은소리 하겠느냐》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인내력을 최대로 발휘한 정상에는 당나라 재상인 루사덕의 《타면자건(唾面自干)》 고사가 유명하다. 언젠가 루사덕이 집 떠나는 동생한테 처세술을 가르쳤는데 남이 나의 얼굴에 침을 뱉아도 즉시 닦으면 상대방의 오해를 살수 있어 되도록 천천히 바람에 말리우라는것이다.

인내심 키우다 못해 원초적 반항심까지 거세해버린 무골충의 전형이였다. 후날 《난득호도(难得糊涂)》란 사자류행어가 생기면서 어떤이들은 가훈 삼아 벽에 걸어놓고 증삼이 하루 세번 반성하듯 그 뜻을 익히느라 매일같이 읍소하며 자아단속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모 나면 정 맞는 관례가 두려워서 소심하고 의혹이 많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타입이다. 박수갈채를 보낼 때도 좌우동향을 살펴보며 성의를 조절한다. 교활성은 지혜가 아니라 나약성의 표현이다.

안데르쎈 동화처럼 왕은 알몸인데 권세에 억눌린 백성들은 황금빛옷을 입었다고 거짓 칭찬을 할 때 청맹과니의 슬픔이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연출한다. 바람 따라 돛을 달고 남의 불에 게 구워먹으려니 평생을 굽실거리며 주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리바바 창시인 마운은 몸매나 성격이 박달나무같이 탄탄하여 종래로 남에게 휩쓸려 떠돌지 않았다. 사업초창기 남들은 망연자실하여 도리머리질했지만 마운은 억척스레 달라붙어 미증유의 기적을 이뤄냈다.

마운은 정의감이 펄펄 끓는 사나이였다. 언제가 밤중에 길바닥의 맨홀뚜껑을 훔치는 도적을 혼자서 제지하는 과감성을 보여 텔레비죤프로에까지 등장한적이 있다.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면 마운의 성공은 필연적인것이였다. 살펴보면 로일대혁명가들도 매사에 립장이 견정하고 기치가 선명한 개성을 가졌다. 그들이 저마끔 지닌 호방하면서도 침착하고 섬세하면서도 유머감이 넘치는 스타일이 결국 당시 대중을 묶어세울수 있는 막강한 흡인력이였다.

중대한 사안을 놓고는 서로 얼굴을 붉히지만 일단 뜻을 합치면 일심단결, 관철집행했다. 혁명가의 정신적풍모와 인간성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 귀감이다. 개성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옳바른 주견이 없다. 찬반론난마저 남들의 의사에 따르다보니 《맹물》이란 폄하를 받기 일수다. 원칙을 떠난 유연성을 인간교제의 좌우명으로 적용한다면 그이상 단조롭고 슴슴하고 물렁물렁한 생활은 없을것이다.

옛날 공자진의 말대로 《만마리 말의 투레질을 한소리로》만 낸다면 톤이 높아도 무슨 의미가 있을가. 오히려 갖가지 산새 우짖는 생명체의 약동하는 소리가 유난히 정답고 산야를 물들인 울긋불긋한 화초가 눈부시게 아름다와진다. 인생은 연출이다. 화려한 무대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남김없이 연출할줄 아는 사람만이 훌륭한 캐릭터를 자랑하는 주인공이 된다.

남들과 사뭇 다른 맥박과 숨결로 자신만이 낼수 있는 목청을 뽑노라면 인간의 개성은 스스로 보석같이 다듬어져 눈부시게 빛난다. 세파에 부대껴도 쉽게 물들지 않고 꺾이지도 않는 도고한 개성을 지닌 인간은 성난 파도우에서 서프를 즐기는 지혜와 담력으로 수많은 감탄부호를 선사하는 귀중한 존재가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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