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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실패의 의미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03-13 09:35:34 ] 클릭: [ ]

실패와 성공을 론하면 사람들은 흔히 성공쪽에 긍정적인 무게를 둔다. 성공해야만 할말이 있고 또 들어주는 사람이 장사진을 이루는것이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요즘 주변에서 진행되는 각종 강연회의 내용을 봐도 그렇다. 누구는 어떻게 짧은 시간내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데 비결이 무엇이고, 누구는 길옆의 간판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로 큰 기업의 업주가 되였다는식의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강연자나 청취자 모두가 성공하기전의 실패는 망각해버린채 감열과 흥분에 붕 들떠있는 실정이다.

물론 성공은 화려한 무지개마냥 사람을 무아몽중 도취시키지만 그 신기루같은 아름다움도 역시 사나운 폭풍취우를 거친뒤끝에 떠오른 희열의 감동이 아니던가. 세상사 순풍에 돛 단 식이라면 인생은 쓰나미 없는 바다처럼 고요하고 네온사인이 없는 무대처럼 컴컴할것이다. 실패란 곧바로 고요속에 풍랑을 일으키고 때 아닌 오뉴월에 된서리같은 그런 혹독한 존재이다.

프라이드 치킨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전파시킨 사람은 카넬 세더스다. 65세의 나이에 치킨의 레시피를 무료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소비자과 소통하는 과정에 1009번 거절을 당했다. 수모와 멸시는 형언할수 많았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삼켜버린 슬픔이 오늘날 오색령롱한 간판에 어려있지 않나 생각한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여 반드시 고진감래, 응과보응이 따를것이라 믿으면 오산이다.

옛날 공자가 3천명의 제자를 가르쳐서 성공한 사람이 별반 없었다. 력사의 흐름속의 상앙,왕안석,량계초 등 수많은 개혁파들도 반디불처럼 순간을 깜빡이다 실패로 영영 몰락했다. 성공이 피라미트의 정상이라면 실패는 그 정상을 떠받은 수천수만의 이름없는 고임돌이다. 지난 80년대 중국대륙에서 장해적사적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5살에 전신마비증에 걸려 너무 일찍 일생의 실패를 선고받은것 같은 절망을 딛고 그녀는 기적을 창조해냈다.

그녀는 자습으로 대학교는 물론 네가지 외국어까지 장악한 기초우에서 "회전의자의 꿈"을 비롯한 많은 서적을 창작 또는 번역했다. 그녀는 말했다. "인생이 잘 먹고 잘 입고 즐기는것만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완강한 의력과 노력으로 재부를 창조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다." 장해적의 성공신화는 종신불구자로 판명받은 날부터 시작되여 감각 잃은 육신에 불사조의 홰불을 지폈던 수십년의 눈물겨운 낮과 밤이 그녀의 생을 더 빛나게 장식했다.

누군가 인생의 성공을 미완성의 씨나리오라고 했다면 인생의 실패는 역시 미완성의 수기라고 해야겠다. 얼기설기 얽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옛날 알렉산더는 그 매듭을 풀어 승자가 되려했지만 모진 애를 써봐도 풀리지 않자 화김에 칼로 내리쳐 두동강 냈다. 분명 실패인데도 력사는 성공으로 둔갑시켜 미화했다. 성공한 이름앞에는 각종 수식어가 많이 붙여지지만 실패두글짜뒤에는 토도 아까워 안붙이는 랭혹한 현실이다.

실패가 두려워 에돌아가면 지름길로 찾아오는 더 큰 실패가 간혹 일생에 성공보다 값진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거듭되는 좌절로 달없는 사막에 주저앉아 텀벙텀벙 떨군 눈물이 항상 어렵고 힘들 때 소중한 마음의 길동무가 되여 편달하며 떠밀어준다. 실패는 기억속의 마를줄 모르는 늪처럼 퍼내고 또 퍼내도 무진장한 지혜의 원천이고 힘이다. 진주는 실패가 낳은 걸작이다. 여린 살속에 끼여든 모래알로 조개는 천천히 병들어 썩고 도륙이 나서 끝내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세상에 찬란한 진주의 빛발을 선사한다.

실패는 결코 령(零)이 아니다. 꿈꿔온 욕망을 일시 휘여잡지 못했을뿐 그래서 아직 할일이 많음을 일깨워주는 충언자이다. 대나무가 푸르싱싱 높이 자란 까닭은 상처로 맺혀진 굵은 마디가 받쳐주어 가능하듯이 인생은 실패의 고비가 있어 지혜의 눈빛이 한결 높아지고 실패를 뛰여넘은 긍지가 있어 한결 더 성숙되고 풍성해지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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