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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치주 30 종결편]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2-15 10:13:28 ] 클릭: [ ]

연변조선족자치주ㅡ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에서 유일한 소수민족자치주로서 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4.27만 평방키로메터, 길림성 총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동쪽으로는 로씨야의 빈해변강구와 잇닿았으며 남쪽은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과 마주하고 있다. 변경선의 길이는 768.5키로메터에 달하는데 그중 중로 변경선이 246키로메터 그리고 중조 변경선의 길이가 522.5키로메터 된다.

■ 조선족의 집거지, 민족단결의 모범

새 중국이 건립된 후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세웠으며 1955년 12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이름을 고쳤다. 산하에 6개 시, 2개 현을 두고 있으며 자치주 수부는 연길시에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인구는 약 221만명에 달하는데 그중 소수민족인구가 39.3%를 차지한다. 조선족인구는 80만명을 좀 웃돌며 전체 인구의 36%를 좀 넘는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에서 조선족인구가 제일 많은 지역이다.

연변에는 조선족, 한족, 만족, 회족, 몽골족 등 25개의 형제민족들이 화목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당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오래전부터 “한족은 소수민족을 떠날 수 없고 소수민족은 한족을 떠날 수 없으며 여러 소수민족들도 서로를 떠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슴속 깊이 명기하고 있다. 민족단결을 중시한 보람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전국 30개 소수민족자치주 가운데서 유일하게 련속 5번이나 국무원으로부터 ‘전국소수민족단결진보모범집체’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 마을마다 렬사비, 선렬들의 넋이 어린 고장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영광스런 혁명전통을 자랑하는 로혁명근거지다. 가렬처절했던 항일전쟁,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서 연변의 무수한 우수한 아들딸들이 중화민족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위하여 피를 흘리면서 싸웠으며 보귀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쳤다. 관련 자료에 의하면 항일전쟁과 해방전쟁 그리고 항미원조전쟁에서 연변에서는 만 7,735명에 달하는 혁명렬사가 나왔으며 1,500여곳에 달하는 혁명력사유적지, 523개의 혁명력사 기념비가 있다. 이는 중국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1986년 8월 당시 중앙선전부 부부장이며 우리 나라 저명한 시인, 극작가인 하경지는 연변을 방문하고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2016년 1월 93세의 고령인 하경지는 연변에서 찾아간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시를 회억하며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항일전쟁에서 공헌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연변의 여러 민족 인민들이 항일전쟁에서 공헌을 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남녀로소와 함께 하는 축구의 고향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교육보급정도는 매우 높은바 길림성과 전국 평균 수준을 초과하고 있다. 조선족들은 오래전부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녀들의 교육을 중시하는 우수한 전통을 대대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교육의 고향’, ‘가무의 고향’, ‘축구의 고향’으로 유명한바 특히 중국축구계에 일찍부터 ‘남쪽에는 매현이요, 북쪽에는 연변’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백년의 오랜 력사를 갖고 있는 연변의 축구는 연변사람들의 최대의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연변에서는 40여명의 국가팀 축구선수를 배출하였으며 국내의 다른 구단에 400여명의 축구건아들을 수송했다.

국가 ‘211공정’ 중점건설대학에 속하는 연변대학은 1949년에 세워졌으며 중국공산당이 제일 먼저 소수민족지구에 설립한 대학교에 속한다. 지금 연변대학에는 대학 본과로부터 석사와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2만 3,000여명에 달하는 재교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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