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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사회구역의 효부 며느리-배미화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3-26 11:35:29 ] 클릭: [ ]

문성사회구역의 효부로 불리우는 배미화부주임

화룡시 문화가 문성사회구역의 부주임인 배미화는 년로하신 시부모님에게 극진히 효도하고 사회구역의 불우이웃들을 따뜻이 보살펴 주어 문성사회구역의 효부로 불리고 있다.

배미화의 시부모님들인 정봉산(78세), 리월선(73세) 량주는 원래 화룡시 남평진 길지촌에서 살다가 화룡시가지에 있는 시동생네 집에 와서 애들을 키워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던 량주는 애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자 자식들에게 부담될가봐 자식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따로 나가 사셨다.

그런데 차츰 년세가 드시면서 할머니가 뇌혈전으로 앓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할아버지마저 경한 중풍을 맞다보니 년로한 량주의 생활은 자립하기가 어려워졌다. 뇌혈전으로 고생하던 할머니가 병이 자주 도져 병원치료를 하게 되면서부터 중풍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힘들게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였다. 정봉산, 리월선 량주는 슬하에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었지만 큰 아들은 어릴 때 자식이 없는 큰 집의 양자로 앞을 세우다보니 배미화씨의 남편이 둘째지만 맏이구실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따라서 배미화씨도 비록 둘째 아들한테 시집왔지만 줄곧 큰며느리 노릇을 했다. 더우기 요즘 세월에 자식들 거개가 모두 외지와 국외에 나가 있다보니 시부모님 옆에 있는 자식은 여러명이였지만 가까이 살고있는 며느리는 배미화씨 하나뿐이였다.

배미화씨는 종래로 자기가 둘째 며느리이고 또 자식이 여럿이여서 시부모를 모시는데 소홀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자식이라면 항렬을 가리지 말고 부모님을 모실 상황과 조건이 된다면 정성 다 해 로인들을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고 응당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더우기 배미화씨는 14살나던 소녀시절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고 시집와서 얼마 안되여 또 친정 아버지까지 돌아가셨기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들에게 못 드린 효도와 그리움이 항상 마음속깊이 남아있어 시부모님도 친정집 부모님처럼 공경하고 따뜻이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시부모님들이 늙고 병들어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나섰다.

배미화씨의 가족

가까이에서 시부모님들을 더욱 잘 돌보기 위해 배미화씨 부부는 지난 2015년 봄 살고 있는 아빠트 아래층에 부모를 모셔왔다. 마침 배미화씨네 아래층에 팔집이 생겨 그걸 구입해 로인들과 이웃하여 살수 있게 된것이였다. 처음에 시부모님들은 아들집과 이웃해서 사는걸 극구 반대하셨다. 아들 며느리와 너무 가까이에서 살게 되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끼칠가 우려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미화씨는 시부모님들이 옆에 있어야 돌보기 더욱 좋고 자식들도 그 만큼 발품을 적게 팔수 있다면서 로인들을 설득했고 마침내 동의를 얻어냈다.

년로한 로인들을 가까이 모시니 자주 보살필수 있고 또 음식도 그때그때 만들어서 따뜻하고 색 다르게 대접할수 있어서 좋았다. 명절이거나 로인절같은 때면 배미화씨는 시부모님은 물론 집안친척로인들을 모두 모시고 색다른 음식들을 장만하여 명절을 즐겁게 쇠드리군 했다. 로인들도 며느리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에 마음을 열고 친딸처럼 배미화씨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로인들은 기분상한 일이나 무슨 의논한 일이 있으면 배미화씨와 이야기하면서 속을 풀거나 상의하길 좋아하신다. 가정에서 시집온 녀자들이 화목하면 집안이 화목하다는 말이 있는데 배미화씨는 시집온후 지금까지 시집식구들과 얼굴 한번 붉힌 적이 없이 화목하게 살고 있다.

로인들을 가까이 모셔온후 가족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배미화씨는 “우로 로인들을 모시고 사니 아래로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로인들을 공대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날 문뜩 이제 11살밖에 안된 아들애가 “나두 이제 커서 집을 한채 큰걸 사가지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는것이다. 그때 배미화씨는 부모가 애들에게 본보기가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고 했다. 애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바로 부모가 이신작칙하면서 효의 모범을 보여주고 거울이 되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결국은 자식에 대한 교양이기도 하며 그래서 더욱더 부모님들에 대한 효도와 공대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군 한다고 배미화씨는 말했다.

할아버지에게 술잔을 부어올리는 배미화씨의 아들 정진성군

옆에서 부모님들이 로인들에게 하는 극진한 효도를 지켜본 애들도 색 다른 음식이 나지면 자기들보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먼저 드리려고 달려가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줄 아는 모습들을 보이더라고 배미화씨는 말했다. 현재 대학교 2학년에 다니는 큰 딸애도 방학에 집에 돌아와서 방학내내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돈을 벌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못한 것은 딸애가 그렇게 번 돈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아빠, 엄마, 삼촌, 조카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 성원들에게 속내의며 양말같은 작은 선물들을 해주는 배려깊은 모습을 보이더라고 배미화씨는 말했다. 이 같은 딸애의 배려심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며 항상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는 부모님의 영향이 모름지기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손3대가 단란히 모여앉아 오락을 즐기고있다

배미화씨는 가정에서 이렇게 현처량모와 효부일뿐만아니라 사업에서도 항상 타인을 따뜻이 배려하고 도움주기를 즐긴다. 사업특성상 사회구역의 부주임 직책을 맡고있는 배미화씨는 문성사회구역의 불우이웃들을 항상 친인처럼 생각하고 살뜰히 돌보아주어 사람들의 찬양을 받고 있다.

문성사회구역에는 홀로 사는 최저생활보장호인 최금란로인이 있었는데 배미화씨는 거동이 불편한 로인을 도와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일은 도맡아했다. 매일이다 싶이 약도 사다주고 남새며 쌀, 소금, 간장 등은 물론 전기세, 물세 같은 자질구레한 심부름까지 전담당하는 사회구역의 심부름군이였다. 로인이 무얼 먹고 싶다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가 사드리거나 만들어주는 따뜻한 인정의 사회구역간부였다. 의지가지할데 없던 최금란로인은 사회구역일군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다가 지난 1월달에 사망했다.

그러나 배미화주임의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회구역에는 아직도 매일매일 그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알콜중독환자를 비롯한 최저생활보장대상들이 남아있기때문이다.

“년로하신 부모님들이 오래오래 앉으시길 바라며 옆에서 작은 정성으로 나마 오래오래 효도하고 싶다”는 것이 배미화씨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바램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정에서는 현모량처, 효부이며 사회에서는 불우이웃들의 다정한 지기인 배미화씨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행복과 락이 아닐지 모르겠다.

/길림신문 안상근 김성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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