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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온 제1서기 왕평당의 일본새

편집/기자: [ 김가혜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6-04 19:29:08 ] 클릭: [ ]

-- 안도현 명월진 룡천촌 제1서기 왕평당이 써내려가는 빈곤퇴치 성적표

왕평당:  올해 우리 촌민들은 빈곤모자를 벗을 수 있습니다 .

◎ 북경에서 온 제1서기

안도현 명월진 룡천촌은 호적인구 73세대, 210명에 빈곤인구가 24세대, 58명이던 산간마을 빈곤촌이였다. 촌당지부 성원들의 년령대가 높고 문화정도가 비교적 낮아 사업효률 또한 극히 떨어져있다보니 빈곤촌 이미지를 탈피할 수가 없었던 것. 거기에 촌당지부에 대한 촌민들의 의견도 많았다. 고발(上访)이 줄을 이어 고발빈곤촌(上访村)으로 불리우기까지 했다.

마침 2017년 8월, 중앙정책연구실 부순시원으로 있던 왕평당(1962년생)이 제1서기로 룡천촌에 부임해왔다. 왕평당은 “빈곤촌을 개변해보겠다”는 결심을 안고 북경에서 자진하여 안도현에 내려왔다. 북경에서 온 제1서기는 부임 후 급히 불호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촌민들 속으로 들어가 전방위적인 조사를 전개하면서 명확한 사업전략을 고안해냈다.

고투끝에 부임 1년 만에 락후하던 산골마을을 선진촌으로 개변, 왕평당은 2018년 10월 “길림 좋은 사람•빈곤해탈 난관공략전 선봉”으로 당선되였다.

◎ 빈곤촌에서 선진촌으로 역전하기까지…

“농촌이 부유해지려면 관건은 촌당지부에 있다.”

이런 리념을 세운 왕평당은 우선 《룡천촌간부관리규정》을 제정하였다. 매 당지부 위원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 초점을 두고 그는 매일, 매주, 매달, 매분기, 매반년, 매년의 사업을 세분화하여 라렬해놓고 엄격하게 락착하였다. 점진적이고도 구체적이며 강력한 제도의 집행하에 당지부 위원들은 점차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업작풍을 양성하게 되였다.

특히 왕평당은 귀향창업 대학생들에 대한 양성과 기용에 각별한 중시를 돌렸다. 1년 남짓한 사이에 두명의 귀향 대학생이 촌당지부에 편입되여 중요한 사업을 맡았다.

근 2년간 룡천촌에 머물면서 왕평당은 빈곤이라는 것은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더불어 정신적 빈곤이야말로 빈곤퇴치를 실시함에 있어서 핵심고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였다. 실제로 촌의 대다수 사람들이 빈곤호가 되는 걸 되려‘영광'으로 여기면서 점차 그릇된 가치관이 형성되여 있었고 순박한 농촌 민풍에 티가 섞이게 된 실정에 근거하여 왕평당은 영욕을 인지하고 바른 기풍을 알리며 량호한 발전환경을 마련해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었다.

“근로한 두손으로 일구어 낸 부는 영예롭지만 빈곤모자 쓰기에 앞장서는 행위는 되려 치욕”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7명의 근로치부 전형인물을 수립하였고, 빈곤호에 대한 “감은고무”교육을 진행했다. “좋은 가훈을 전승하고 좋은 가풍을 육성”할데 관한 활동을 적극 전개하여 집집마다 가풍 가훈을 대문에 걸어두게 하는 등 3가지 조치로 자기교육 자각성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연후에 왕평당은 꾸준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손이 가는 대로 함께 밭일을 하는가 하면 촌민들의 고민상담도 들어주고 부단히 촌민들과 깊은 소통을 이끌어냈다. 어느 순간 촌민들은 왕평당 서기를 마음속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경에서 온 청급 간부가 아무런 틀도 없이 일하는데 우리가 왕서기 사업을 협조하지 않을 리유가 뭔가?” 촌민들의 실토정이다.

상호 감정 기초가 생기자 촌민들도 곤난한 정황이나 고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왕평당을 찾아갔다. 왕평당 역시 촌민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크든작든 발벗고 해결에 나섰다. 따라서 차츰 마을 분위기도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촌이 나날이 깨끗해지고 줄을 잇던 고발이 어느 순간 사라졌으며 촌민들도 성심성의로 촌당지부 사업을 리해하고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 산업을 틀어쥐여 빈곤을 퇴치하고 다함께 치부의 길로.

정신적 빈곤퇴치와 더불어 왕서기는 산업 대상 빈곤퇴치에도 진력했다. 룡천촌의 전통산업은 식량, 채소, 목이버섯 등 재배였는데 경영방식이 단일하고 협동정신이 부족한 단점이 존재했다. 다방면의 조사연구와 의견청취 끝에 왕평당은 지역 자원우세에 근거하여 록색유기농재배를 돌출하게 내세우자는 발전전략을 확정하고 부추, 유기농쌀, 전병 등 3개 브랜드를 구축하였다. 이후 인맥자원 우세를 발휘하여 중앙정책연구실, 중앙직속기관관심사업위원회, 양광보험집단, 남경보천천기루우지능유한회사, 천안보험회사, 국가개발은행 길림성분행 등 단위들을 통해 520만원의 자금을 얻어와 670평방메터에 달하는 전병공장을 건설했다. 작년 11월에 생산에 투입된 전병공장은 일간 전병 생산량이 600키로그람에 달해 년간 순리윤액 50여만원 올리고 30여명의 일자리를 해결하였다.

또 면적이 8헥타르에 달하는 신축 생태입쌀농장은 고용일자리 10개를 견인했다. 25채 강철틀 비닐하우스도  신축하였는데 위탁경영 방식을 채택하여‘룡천부추’브랜드화의 길을 모색, 수요가 늘어나면서 농호들의 수익을 높여주었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향촌진흥정책의 힘을 입어 상급의 대상자금을 쟁취했다. 2년사이에 쟁취한 자금은 162만원, 태양광 가로등 42개를 가설하였고 300평방메터의 촌부를 신축했다.

왕평당은 룡천촌 뿐만 아니라 안도현 빈곤부축 사업에도 힘을 보탰다. 북경에서 다년간 사업한 우세를 빌어 사업회보, 조사연구 요청 등 방식을 리용하여 중앙정책연구실 등 관련 부문 령도에 안도현의 빈곤해탈 난관공략 정황과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결과 연구실 령도의 노력을 거쳐 안도현을 도와 국가개발은행으로부터 7926만원의 대출자금을 쟁취하게 했으며 중국의약집단의 정착 및 공장건설을 이끌어냈다.

“왕서기가 온 후 제일 큰 변화를 꼽으라면 사상이 변했다는거죠.”

“왕서기 같은 좋은 령도를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원래 수입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전병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어 매달 3000여원의 소득이 생겼다니까요.”

누가 더 많은‘리익'을 챙기나 촌민들끼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얼굴을 찡그리던 룡천촌은 활력으로 차넘치는 선진촌으로 거듭났다.

“원래 촌에 24세대 58명의 빈곤인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3세대 6명이 빈곤해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촌민들이 모두 빈곤모자를 벗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쁘지요.”

지난 3일 기자들과 만난 왕평당은 부임 2주년을 앞두고 묵직한 빈곤퇴치 성적표른 내놓았다.

/길림신문 김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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