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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할 때 더 많은 일 하지 못해 후회됩니다”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29 14:00:56 ] 클릭: [ ]

로당원 로영애의 이야기

지난 4월 27일, 필자는 도문시 월청진 집중촌(원 홍광향 농안촌)의 로영애가 무한보위전 영웅들에게 만원을 헌금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중촌 전임 당지부서기 한진길(74세)의 안내 하에 파가이주로 전기도 없고 물도 없는 두 가구만 살고 있는 동네에서 로영애(73세)를 만났다.

 

집중촌 전임 당지부서기 한진길과 사업 토론을 하는 로영애(오른쪽) 

혁명렬사의 유복녀

22년만에 만난 당년의 ‘꼬리 없는 암소’가 ‘앉은뱅이’가 될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2급 지체장애자에 심장병으로 입원치료를 받다가 금방 퇴원했습니다.”, “병자에게는 약보다도 사람이 귀합니다.” 반갑게 손님을 맞는 로영애는 너부죽한 얼굴에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로영애의 아버지 로동률은 도문 일광산기슭에 자리한 중개지팡에서 살다 결혼해서 10일 만에 참군하여 항미원조 전선에서 장렬히 희생되다 보니 로영애는 유복녀로 세상에 태여났다.

로영애의 할아버지는 두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가슴을 앓다가 로영애의 이름을 지어 얼마 안 돼 저세상으로 갔다. 그러다 보니 헐망한 초가삼간 한구들에서 할머니, 큰엄마, 엄마 세 과부와 유복녀 로영애 넷이서 살아야 했다.

성질이 과격한 할머니는 제일 나어린 로영애의 어머니 태옥순을 억지로 개가를 보냈고 엄마와 생리별을 한 로영애는 차차 철이 들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학교에서 조직하는 영화가 ‘전투편’이라 하면 아버지의 자그마한 사진을 손에 들고 영화에서 나오는 군대 속의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찾느라고 눈정신을 팔았다고 한다.

“나에게 소학교 졸업증이 없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로영애에 따르면 륵막염에 걸린 로영애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망돌이’로 지냈다. 그러다 룡정고아원에 있다가 14살에 도문으로 돌아 왔지만 학습성적이 따라가지 못해 전일제 중학교는 가지 못하고 렬사후대라는 조건으로 반공반독(半工半读) 학교인 도문진중에 입학하게 되였다.

도문진중은 학생들을 내내 일만 시켰고 학교건물도 학생들로 운영되는 학교벽돌공장에서 생산한 벽돌로 학생들이 지은 것이다.

그 때 로영애는 학교 단지부 선전위원에 벽돌공장 공장장이라는 책임을 3년간을 맡으면서 열심히 했다. 심지어 학교 부업으로 왕청현 하마탕에 가서 3개월 동안 길닦이도 해봤다.

로영애는 “일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 공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90년대의 ‘신문인물’

1973년에 촌 부녀주임을 맡은 로영애는 해마다《연변일보》, 《동북과학기술보》, 《가정신문》등 신문잡지를 주문했는데 농촌간부들이 신문을 안보면 머리가 텅비여서 군중들과 얘기를 할 밑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문잡지를 통해 농업기술을 배웠고 광범한 부녀들을 치부의 길로 이끄는 선두자로 되였다.

로영애는 1988년 8월 28일에 입당했고 1989년에 전 주에서 제일 처음으로 도문시축목국과 손 잡고 ‘농안촌양돈협회’를 조직해 과학양돈을 농안촌의 기둥 치부산업으로 부상시켰다.

하여 그는 선후 ‘연변조선족자치주 10대 녀걸’, ‘길림성 3.8 홍기수’, ‘길림성로동모범’ 등 영예를 지녔다.

당원은 정년이 없다

22살에 결혼한 로영애는 과원 기술원, 대장, 회계 등을 책임진 남편 배동섭의 “한집에서 둘이 다 나돌면 안된다”는 엄포로 남편 몰래 촌에서 맡기는 일을 했다. 1988년 입당한 후로 남편의 ‘허락’을 받고 가물에 단비를 맞은듯 사업에서 ‘안된다’, ‘못한다’가 없이 일을 추진해왔다.

지금 로영애는 비록 ‘앉은뱅이’신세로 되였지만 “당원은 정년이 없다”며 당소조장 책임을 맡고 로당원을 방문하고 적극분자를 배양하고 당원서류를 정리하는 등 당무 사업으로 무척 다망하다.

그의 노력으로 로영애는 지난해 3월 24일까지 7명의 당원을 발전시켰고 올해 ‘7.1’에 또 새로운 당원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올해 년초 텔레비죤방송을 통해 코로나19와 사투하는 무명영웅들의 형상에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고 로영애는 말한다.

“우리 아버지 년대는 전쟁년대여서 총을 들고 적들과 싸우며 나라를 보위하고 가정을 지켰습니다. 평화시대에 가정을 떠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한보위전에 나선 의무일군들의 정신이 얼마나 보귀합니까?”

로영애는 불편한 신체때문에 다니면서 방독물품을 사서 보낼 수 없어서 지난 2월 27일에 만원을 도문시적십자협회 책임자에게 맡겨 무한에 보내도록 했다.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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